맑고 차분하게 내마음을 쓸겠습니다··· 강미선의 속깊은 수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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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관심(觀心)-세심(洗心)', 2021, 한지에 수묵, 139x191cm.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세심(洗心)', 2021, 한지에 수묵, 139x191cm.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연(蓮)', 2021, 한지에 수묵, 141x198cm.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연(蓮)', 2021, 한지에 수묵, 141x198cm.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파초' 2021, 한지에 수묵, 192x286cm.[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파초' 2021, 한지에 수묵, 192x286cm.[사진 금호미술관]

큰 한지 화면에 싸리 빗자루 하나가 담겼다. 차분한 먹빛, 섬세한 붓질이 함께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일까.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빗자루로 훌훌 쓸어낼 것은 마당이 아니라 마음의 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한국화가 강미선(60)이 그린 '관심(觀心)-세심(洗心)'이다. 강미선 작가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수묵화가 중 누구보다도 담묵(淡墨·옅은 먹빛)의 힘을 잘 아는 작가로 꼽을 만하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과 사물을 담담한 먹빛으로 그려내며 관람객에게 고요한 사색의 순간을 선사한다.

'금강경' 대형 설치작업부터 #'관심''한옥' 연작까지 총35점 #금호미술관서 2월 6일까지

강미선의 개인전 '水墨(수묵), 쓰고 그리다 '가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금호미술관이 기획한 대규모 초대전으로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총 7개 전시실에 그의 작품이 걸렸다. 수묵화 35점으로만 큰 공간을 가득 채운 보기 드문 전시다.

수묵으로 다독인 종이의 힘 

강미선이 쓴 글씨 '수정월담(水定月湛)'. 물이 고요하면 달이 잠긴다는 뜻이다.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이 쓴 글씨 '수정월담(水定月湛)'. 물이 고요하면 달이 잠긴다는 뜻이다. [사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뜻밖의 놀라움은 그림의 바탕이 되는 종이, 즉 한지의 강력한 존재감이다. 수묵화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겠지만, 그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관람객은 글씨와 그림을 품은 한지의 다채로운 색상에 놀라고, 또 부드러운 것부터 바위 표면처럼 우툴두툴한 것까지 한지의 풍부한 질감에 다시 놀란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바탕지 만드는 일이 내 작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바탕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겹의 한지를 쌓아 올리고 표면을 두드리는 것. 그 과정에서 두텁고 단단해진 종이에 엷은 먹물을 입히는 것으로 그림을 시작한다. 오광수 미술평론가의 표현을 빌면 "화면을 수묵으로 다독이는 작업"이다.

"종이를 겹쳐 붙이고 두드리면 찢어질 것 같은데 실제론 그 반대로 굉장히 단단해져요. 거기에 담묵을 올리면 종이는 그걸 다 받아냅니다. 매끈한 것보단 고목의 표면이나 바위 같은 거친 질감이 나는 게 좋아서 꼭 이렇게 작업합니다."

오 평론가는 이런 작업을 가리켜 "여러 겹을 발라올린 한지의 표면은 그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태어난다. 화면에 나타나는 풍경이나 정물이 어떤 기대감으로 설레게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22m길이 설치 '금강경-지혜의 숲'  

강미선의 '금강경-지혜의 숲' 작품의 일부. 5149자를 한글자씩 써서 완성했다.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의 '금강경-지혜의 숲' 작품의 일부. 5149자를 한글자씩 써서 완성했다. [사진 금호미술관]

금호미술관 3층 수묵설치 '금강경-지혜의 숲' 작품 앞의 강미선 작가. [사진 금호미술관]

금호미술관 3층 수묵설치 '금강경-지혜의 숲' 작품 앞의 강미선 작가. [사진 금호미술관]

이번 전시에서 한지의 다양한 색감과 먹빛의 매력을 웅장한 풍경처럼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이 3층 전시실 3개면을 세로 3.5m, 가로 22m 크기로 덮은 수묵 설치 '금강경(金剛經)-지혜의 숲'이다. 불경서 '금강경'에 나오는 글씨를 넉 달에 걸쳐 세로·가로 11㎝의 작은 한지 조각에 한 글자씩 총 5149자를 썼다.

글씨로 완성한 이 작품에 대해 강씨는 "그림화된 글자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일 밤 적게는 몇장, 많게는 몇십장을 썼다"는 그는 "정형화된 글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썼다.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봐달라"고 했다. 언뜻 보면 마치 색종이를 쓴 듯이 한지 색이 저마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10여년간 모아온 종이를 모두 꺼내 작업했기 때문"이라며 "원래 각 종이가 그렇게 다 다르다. 며 "정작 한 번에 펼치면 어떨지 몰랐는데 전시장에 설치하고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금강경'은 짧고 매우 함축적인 내용의 대승불교 경전으로 공(空)사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작가는 '금강경'을 택했을까. "1998년부터 전국 사찰을 순례했고, 본격적으로 매일 금강경 읽기 시작한지 5~6년 됐다"는 강씨는 "종교를 떠나 내게 금강경은 지혜를 주는 책이다. 아침에 맑은 정신에 읽고 나면 하루가 든든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수행(修行)이 곧 작업 과정이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시간이 작품이 됐다.

한없이 아늑하고 부드러운 

 강미선, '관심(觀心)-그림자(影)', 2021, 한지에 수묵, 185x136cm. 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 '관심(觀心)-그림자(影)', 2021, 한지에 수묵, 185x136cm. 사진 금호미술관]

 명상을 주제로 감을 이용한 회화 설치 '무언가(無言歌)'연작. [사진 금호미술관]

명상을 주제로 감을 이용한 회화 설치 '무언가(無言歌)'연작. [사진 금호미술관]

담쟁이 덩굴과 나무, 빗자루와 의자, 파초 등 소소한 풍경과 정물을 차분하게 표현한 '관심(觀心)' 연작도 눈길을 끈다. 희미한 그림자만으로 한 그루 나무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그림자(影)'가 대표적이다. 오 평론가는 "(강미선의) 사물들은 조심스럽게 아니 담담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서서히 걷히는 운무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화 같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밖에 명상을 주제로 감을 이용한 회화 설치 '무언가(無言歌)' 연작과 강한 묵의 필선으로 현대적인 조형미를 구현한 '한옥' 연작, 전통 서가도 형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서가도(書架圖)' 등은 전통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꾸준하게 탐구해온 작가의 여정을 보여준다.

강미선의 '한옥' 연작이 전시된 금호미술관 지하 전시장. 강한 먹의 필선이 돋보인다.[사진 금호미술관]

강미선의 '한옥' 연작이 전시된 금호미술관 지하 전시장. 강한 먹의 필선이 돋보인다.[사진 금호미술관]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강씨는 중앙미술대전 대상(1998)을 수상하고 중국남경예술학원에서 수학(박사과정)했다. 그는 "수묵화가로서 이런 규모의 초대전을 통해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관람객이 제 그림 보면서 잠시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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