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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도 줄선다"...미식가 핫플 '군산짬뽕' 181곳 탄생 비화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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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영화 세트장…'짬뽕의 성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쌀과 물자를 수탈해 간 항구 도시였다. 1899년 개항 후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를 중심으로 중화요리를 파는 중국집이 생겨났다. 현재 인구는 26만5000명, 중국집은 181곳이 영업 중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짬뽕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이름 난 중국집은 손님들이 가게 밖까지 줄서기 일쑤다. '짬뽕의 성지'로 불리는 전북 군산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윤호성(27) '중화반점' 장미동 분점 대표가 센 불에 달군 웍(wok)을 이용해 짬뽕 재료인 채소 등을 볶고 있다. 의경 출신인 그는 경찰 준비를 하다가 중국집 사장이 됐다고 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윤호성(27) '중화반점' 장미동 분점 대표가 센 불에 달군 웍(wok)을 이용해 짬뽕 재료인 채소 등을 볶고 있다. 의경 출신인 그는 경찰 준비를 하다가 중국집 사장이 됐다고 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역사성·풍부한 농수산물·전라도 손맛 '3박자' 

군산은 어쩌다가 '먹방(먹는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미식가들이 꼭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가 됐을까. 문다해 군산시 위생행정계장은 2일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군산은 어느 중국집을 가든 짬뽕 맛이 평균 이상"이라고 말했다.

①일제 강점기·산업화 등을 거친 역사성 ②농수산물이 풍부한 지리적 이점 ③전라도 손맛 등 3박자가 어우러져 군산만의 독보적인 짬뽕이 탄생했다는 게 문 계장의 설명이다.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올 법한 '빈해원' 건물. '근대기 군산에 정착한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인정받아 2018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군산=김준희 기자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올 법한 '빈해원' 건물. '근대기 군산에 정착한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인정받아 2018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군산=김준희 기자

지난달 22일 낮 12시쯤 군산시 장미동 '빈해원'. 동짓날인데도 팥죽 대신 짬뽕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방에서는 화교 3명이 센 불로 뜨겁게 달군 웍(wok)을 이용해 해산물과 채소 등을 볶느라 손놀림이 분주했다. 웍은 중국요리를 할 때 쓰는 우묵한 프라이팬을 말한다.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 1953년 4월 1일 문을 열어 7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 집에서 태어난 화교 2세 소란정(67) 대표는 "30여 년 전 아버지로부터 중국집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올 법한 건물은 2018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일제 강점기 상점들이 즐비한 번화가였던 군산 영화동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등이 걷고 있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 상점들이 즐비한 번화가였던 군산 영화동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등이 걷고 있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SNS 게시물만 수만 개…'평범하다' 냉정한 평가도

군산 짬뽕은 백종원을 비롯해 각종 TV 예능·맛집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타짜', '남자가 사랑할 때', '싸움의 기술', '장군의 아들', '사랑의 불시착' 등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는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에는 '군산 짬뽕'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만 수만 개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기대보다 맛없다', '평범하다' 등 냉정한 평가도 있다.

지난달 22일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빈해원' 소란정(67)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군산시

지난달 22일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빈해원' 소란정(67)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군산시

"중국 '초마면'에 고춧가루 넣어…짬뽕 유래"    

짬뽕은 짜장면과 더불어 한국에서 진화한 중국음식이다.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중국 산둥성 지방 음식인 '초마면'이 변형됐다는 게 통설이다. 학계에 따르면 한국 화교의 90% 이상은 중국 산둥성 출신이다.

초마면은 채소·돼지고기·해물 등을 기름에 볶아 닭이나 돼지 뼈로 만든 육수를 넣고 끓인 국물에 삶은 국수를 말아서 먹는 중국음식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인 기호에 맞게 고춧가루를 이용한 붉은 초마면을 만들었고, 1970년 이후 손님들이 짬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호남평야 등에서 가져온 미곡(쌀)을 인부들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일제 강점기 호남평야 등에서 가져온 미곡(쌀)을 인부들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961년 '외국인토지법' 제정…중국집 급증

군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동해루·평화원·태화루·쌍설루 등 대규모 중화요릿집이 있었고, 주요 고객은 일본인과 조선의 특권층이었다고 한다. 군산부(群山府, 현 군산시)가 1935년 발간한 『군산부사』 등에 따르면 화교가 한국에 들어온 건 조선 시대 말부터지만, 군산에는 공식적으로 1899년 개항 때 거주하기 시작했다. 군산에 자리 잡은 화교는 1910년 499명이었고, 일제 강점기(1941년 기준)에는 최고 1200여 명에 달했다.

중국집이 급격히 늘어난 건 1960년대 이후다. 1961년 제정된 '외국인토지법'으로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금지되자 화교들은 적은 자본으로도 할 수 있는 중국집을 열었다고 한다.

군산시 장미동 조선은행 군산지점. 1923년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의 설계로 지은 벽돌 건물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금융시설로 2008년 7월 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로 지정됐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시 장미동 조선은행 군산지점. 1923년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의 설계로 지은 벽돌 건물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금융시설로 2008년 7월 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로 지정됐다.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수탈 과정서 물류·상업·공업 중심지 성장

군산은 근대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돼 '도시 전체가 영화 세트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일제 강점기 수탈 과정에서 물류·상업·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08년 당시 군산항의 수출품 중 80%가 쌀이었고, 99%가 대일 수출품이었다고 한다.

『군산부사』에 따르면 1899년 개항 직후 군산에 이주한 일본인은 77명, 조선인은 511명이었다. 1934년에는 일본인 9408명, 조선인 2만7144명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군산에 조선은행 지점과 군산세관 등 당시 일제가 만든 건축물이 즐비한 이유다.

박형제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각에서는 일제가 만든 건축물은 모두 부수고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후대에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 옛 건축물을 보존해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926년 군산항 축항 기공식을 기념하기 위해 쌀가마니로 만든 탑.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926년 군산항 축항 기공식을 기념하기 위해 쌀가마니로 만든 탑. 사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중국집 경쟁…수준 높아지고 종류 다양"

김태일 군산시 공보담당관실 주무관은 "중국집끼리 경쟁하면서 짬뽕 수준이 높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돼지고기를 따로 볶아 고명으로 올린 짬뽕(복성루), 콩나물을 듬뿍 넣고 낙지 한 마리를 얹은 짬뽕(왕산중화요리), 달걀 프라이를 얹은 짬뽕(영화원), 동죽과 바지락으로 육수를 낸 짬뽕(쌍용반점) 등이다.

'지린성'은 고추짜장, '서원반점'은 잡채밥, '홍영장'·'영화원'은 물짜장 등 다른 요리도 인기다.

3대째 가업을 잇는 중국집 '중화반점' 윤종오(52) 대표와 지난해 10월 군산시 장미동 짬뽕특화거리에 분점을 낸 아들 윤호성(27)씨가 지난달 22일 분점 주방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3대째 가업을 잇는 중국집 '중화반점' 윤종오(52) 대표와 지난해 10월 군산시 장미동 짬뽕특화거리에 분점을 낸 아들 윤호성(27)씨가 지난달 22일 분점 주방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피난민 출신…3대째 가업 잇는 '중화반점'

'중화반점'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째 가업을 잇는 중국집이다. 윤종오(52) 대표의 부친인 고(故) 윤정남씨가 군산 대야면에서 1968년 개업했다. 윤 대표의 아들 윤호성(27)씨도 지난해 10월 짬뽕특화거리에 '중화반점' 분점을 냈다. 윤 대표 형제와 친척도 전주·익산·김제·마산 등에서 중국집 10여 곳을 운영 중이다.

윤 대표의 아버지는 '빈해원' 주방장 출신이다. 윤 대표에 따르면 부친은 10살 무렵인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자 이북에서 조부모와 함께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당시 화교들은 노천(露天)에서 손으로 면을 빼고 장작불을 때 짬뽕을 만들었다고 한다. 윤 대표는 "부둣가에서 짬뽕을 만들던 화교 중 '빈해원' 할아버지도 있었다"며 "아버지가 '저것을 배워야 먹고 산다'고 생각해 '가르쳐 달라'고 매달려 중화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군산에서 화교에게 중화요리를 배워 중국집을 연 한국인 1호"라며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아버지에게 손으로 면을 뽑는 '수타'를 배웠다"고 했다.

전북 군산의 한 중국집에서 주방장이 센 불로 뜨겁게 달군 웍(wok)을 이용해 짬뽕 재료인 채소를 볶고 있다. 웍은 중국요리를 할 때 쓰는 우묵한 프라이팬을 말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전북 군산의 한 중국집에서 주방장이 센 불로 뜨겁게 달군 웍(wok)을 이용해 짬뽕 재료인 채소를 볶고 있다. 웍은 중국요리를 할 때 쓰는 우묵한 프라이팬을 말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복성루' 대표 "싱싱한 재료가 비결"

군산 짬뽕의 대표 격인 '복성루' 정우덕(74)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군산 토박이로 중국집 경력만 40년이라는 정 대표는 2016년부터 '복성루'를 운영해 왔다.

복성루의 인기 비결로는 '싱싱한 재료'를 꼽았다. 그는 "매일 아침 해망동에서 좋은 해물을 공수하고, 야채와 반죽도 그날그날 만들어 소진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5월 군산 짬뽕의 대표 격인 군산시 미원동 '복성루' 주변으로 손님들이 가게 밖까지 길게 줄서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5월 군산 짬뽕의 대표 격인 군산시 미원동 '복성루' 주변으로 손님들이 가게 밖까지 길게 줄서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강임준 시장 "짬뽕특화거리 전국적 명소 키울 것"  

군산시는 2018년 말부터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인근 장미동에 17억3000만원을 들여 짬뽕특화거리를 조성 중이다. 현재 '빈해원'을 비롯해 '홍영장', '군산점보짬뽕', '중화반점', '중화객잔' 등 5곳이 영업 중이고, 오는 3월 '오성황제해물짬뽕'이 문을 열 예정이다. 군산시는 올해 말까지 10곳까지 채울 계획이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짬뽕특화거리를 전국적인 명소로 키워 침체된 골목 상권과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산 해물짬뽕. 군산=김준희 기자

지난달 22일 전북 군산시 장미동 짬뽕특화거리. 군산시는 2018년 말부터 17억3000만원을 들여 짬뽕특화거리를 조성 중이다. 이곳에 입점하면 군산시에서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씩 지원해 준다. 임대료 및 식재료 구입비 일부 지원, 상수도 사용료 30% 감면 등의 혜택도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군산 짬뽕특화거리 조형물. 군산=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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