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고소득 필요없다…지구위기의 탈성장 해법이 몰고올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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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93)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북극곰이 작은 얼음조각 위에 불안하게 서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눈이 내리고, 모스크바에 40도 넘는 더위가 찾아온다. 일자리 찾기가 힘든 MZ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이 커진다. 1 대 99 의 사회와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이 점점 심각해진다.

지구 온난화와 양극화의 대표적인 징후들이다. 지구의 위기이자 인간의 위기이다. 이런 현상의 뒤에는 무서운 인간의 탐욕, 바로 인류가 지금까지 집착해온 ‘성장 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닥치고 성장’의 부작용이 제어 불가능한 수준에 달하여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쯤 되자, 그 해법으로 탈성장(Degrowth)이 제시된다. 시작은 1970년대 일단의 프랑스 학자들의 발상에서 비롯된다. 더 이상 ‘무한 성장, 더 많은 소비’는 불가능하니, 양적인 성장을 중단하고 질적인 그 무엇을 찾아 나서자는 것.

그 방법은 경제성장으로부터 환경을 디커플링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환경 생태 파괴를 최소화하는 대신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본질적인 것만 생산하자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촉발하는 생산과 소비는 대폭 줄이고, 생태주의, 공생공존, 삶의 질 추구로 전환하는 것이다. 성장 중단이 아니라 공유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양적 성장’의 부작용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 해법으로 탈성장이 제시되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줄이고 공생공존, 즉 공유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사진 pxhere]

‘양적 성장’의 부작용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 해법으로 탈성장이 제시되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줄이고 공생공존, 즉 공유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사진 pxhere]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그린뉴딜 자문위원, 제이슨 히켈의 『적을 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매년 세계 경제는 2~3%의 성장을 당연시하지만, 3% 성장이 지속되면 23년마다 세계 경제규모가 두 배로 늘어난다. 그 결과 쓰레기를 양산하고, 지구 토양의 40%가 침식되어 농작물 수확이 50~60년이면 끝나고, 해양자원 85%가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탈성장을 하여 원시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한 성장 추구보다는 우리가 성장시켜야 하는 것(청정에너지, 공중보건, 필수 서비스, 재생 농업 등)과 시급하게 탈성장해야 할 분야(화석연료, 무기, 이산화탄소의 주범 SUV 등)를 결정하라고 주장한다. 상품 수명을 늘리고, 소비 조장 광고를 금지하고, 다양한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공유하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을 줄이라고 제안한다.

이러한 탈성장은 타인과의 공유를 촉진하고 광고가 자극하는 욕망에 시달리지 않아야 가능하다. 그리하면 문화 예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될 것이다. 보편적 의료보장, 교육, 실업보험, 연금, 유급휴가,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 등이 가능해진다면 소득이 꼭 높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일상의 기본적인 필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끊임없는 경쟁 대신 사회적인 유대감이 형성된다. 미친 듯 질주하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공존을 위한 절제는 함께 사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실천이다. 각자가 불편을 감수하고 '모자라고 아쉬운 듯' 살려 노력해야 이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사진 pxhere]

공존을 위한 절제는 함께 사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실천이다. 각자가 불편을 감수하고 '모자라고 아쉬운 듯' 살려 노력해야 이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사진 pxhere]

지금 지구는 과부하로 폭발 직전에 있다. 독일 경제학자 마야 괴펠은 생계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인 이윤만 따지는 인간(호모 이코노쿠스)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인간에게 불행과 스트레스를 불러왔다는 아이러니를 상기시키며, 불평등의 심화와 지구의 파괴를 더 이상 성장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빵과 장미’는 원래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제목이다. 이것이 여성 노동운동의 슬로건이 되었다. "마음도 굶주리고 몸도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도 달라"고 한다. ‘빵’은 생존에 필요한 필수 양식이고, ‘장미’는 정서적 허기를 채워줄 마음의 양식이다. 그런 빵은 맛이 있어야 하고, 장미는 우선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겉모습이 아름다울지라도 저개발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하며 길러진 장미는 안된다. 우리가 즐기는 향이 독특한 커피가 에티오피아·콜롬비아 ·브라질 등 지구 저편 어딘가에서 어린 노동자나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원두는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선진국에서 저개발국에 이르기까지 더욱 커지는 불평등과 무질서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북반구의 풍요가 남반구의 희생을, 도시의 풍요가 농촌의 희생을, 건물주의 풍요에 세입자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 과잉소비와 자원낭비 대신 절제, 빈곤 대신 풍요를 위해서 성장 중심 사회의 부작용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존을 위한 절제’는 함께 사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가치이다. 재활용, 재사용, 공유경제의 실천이 지구 파괴를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조금 모자라고 아쉬운 듯이’ 좀 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할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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