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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캅’ 같은 기술에 의존 휴먼증강, 인간 정체성이 관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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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호 26면

코딩 휴머니즘

영화 ‘로보캅(2014)’.

영화 ‘로보캅(2014)’.

아침에 눈을 뜨면 비타민과 몇 가지 몸에 좋은 약부터 챙긴다. 가능하다면 더 일찍 일어나 운동을 했으면 좋겠지만 항상 현실은 나의 의지와 괴리감이 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그나마 위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아지길 갈망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인위적인 노력을 한다. 간단하게는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든지 특정 약물을 통해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라식수술을 통해 시력을 향상시킨다든지 노화로 생긴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기도한다. 때론 의학적인 이유로 임플란트나 인공관절을 삽입하기도 하고 미학적인 이유로 실리콘 보형물을 다양한 크기로 넣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두뇌 임플란트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손상되는 기억을 방지하기 위해 뇌에 칩을 이식하는 치료법인데,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메모리칩처럼 보조기억장치를 뇌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른바 ‘신경 모방(neuromorphic) 칩’이라고 하는 것인데 덕분에 기억의 영구 손상이라든지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 특정 기억을 걸러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아픈 상처나 트라우마와 같은 나쁜 기억이 회상되는 순간, 칩이 우리의 두뇌 연상 작용에 개입해 이를 차단할 수도 있다고 한다.

머스크, 뇌에 칩 이식 실험 진행키로

물론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이고 상용화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에 앞서 몇 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치아를 임플란트하는 것과 기억을 임플란트하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이다. 기억은 인간의 존재를 관장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컴퓨터의 마이크로칩과 연동되어 인위적인 전기 자극으로 제어가 된다면 어디까지가 컴퓨터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일까? 이러한 두뇌 임플란트를 시술받은 사람에게 인간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일론 머스크는 뇌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컴퓨터 탁구 게임을 하는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와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설립한 뇌신경 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통해 2022년부터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일론 머스크는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수단으로 인간의 지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진보가 인간의 질병과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피할 수는 없다. 이처럼 개량화된 인간, 다른 말로 ‘휴먼증강(human augmentation)’이 현실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상상에 가장 근접한 영화가 ‘로보캅(RoboCop, 2014)’이다. 이젠 추억으로 자리 잡은 최초의 로보캅(1987년)과 동일한 이름으로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생각보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인공 알렉스 형사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깨어났을 때 자신의 몸이 마치 아이언맨 슈트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을 수술한 노턴 박사에게 묻는다. “이 옷은 대체 뭐요?” 인공 수족 분야의 전문가인 노턴 박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옷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코딩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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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예기치 못한 폭탄 테러에 의해 온몸에 치명상을 입었다. 노턴 박사가 그를 수술하여 최첨단 하이테크 슈트를 입은 모습으로 살려냈다. 그 슈트는 알렉스에게 기동성과 막강한 힘을 부여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로봇이나 다름없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인공 팔과 인공 다리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뇌의 전기적 자극이 완벽하게 변환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감정의 기복 없이 마치 기계처럼 진정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움직임에 문제가 생긴다.

알렉스는 로봇 슈트를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 아내가 수술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새롭게 변한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알렉스와 같은 휴먼증강은 다른 순수한 로봇에 비해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른 로봇들이 망설임 없이 사격을 개시할 때, 알렉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를 숙고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사격 타이밍을 놓치거나 다른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결함을 없애기 위해 노턴 박사는 알렉스에게 헬멧의 일종인 ‘바이저(Visor)’를 장착해 준다. 이 바이저는 전투 상황이 되면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그의 몸에서 로봇으로 된 부분들을 모두 통제하게 된다. 알렉스의 몸에 부착된 비밀 병기는 노턴 박사가 그의 뇌에 이식한 칩이다. 이 칩은 알렉스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자기 자신의 결정인 것처럼 믿게 한다. 알렉스는 바이저를 장착한 이후 점차 냉담해지고 감정이 사라진다. 결국 그의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영화 로보캅은 어디서부터 로봇이 시작되고 어디서부터 인간이 중지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누가 이러한 기술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가를 보여 준다. 로보캅에서 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한 기업은 단 한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알렉스는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지만 로봇으로 치환된 그의 신체와 그것을 어떻게 프로그램화시킬지에 대해 결정하는 주체는 옴니코프라고 하는 기업이었다. 기업은 국가의 독재 권력과는 다르게 작동하는데 궁극적으로 인간의 오랜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죽음의 극복, 영원한 젊음,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초월과 같은 욕망의 실현이 곧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 능력 증강하는 ‘트랜스휴머니즘’

로보캅과 같은 휴먼증강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간단하게는 안경 역시 시력을 개선하기 위한 인공 보조수단이다. 의족이나 보청기 또한 이에 속한다. 어쩌면 늘 휴대하고 다니는 스마트폰 역시 인간의 정보 습득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휴먼증강이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마이크로칩으로 만들어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것은 어떨까? 휴대하고 다닐 바엔 차라리 몸에 이식하는 게 훨씬 편리하지 않을까?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명공학, 유전공학, 로봇기술 등의 활용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가리켜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마이크로칩을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기술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어쩌면 태곳적부터 인간이 품은 꿈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을 뛰어넘는 것이고, 인간 본성의 모든 한계를 부숴 버리는 것이며,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연적인 인간을 초월하려는 의미에서 진화적 인본주의라고도 하지만 여기서 진화란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 인위적 진화이며 기술을 통한 인간 초월을 의미한다. 그래서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자연적 인간을 점점 더 업그레이드하여 완벽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근본적인 ‘휴머니즘’과도 큰 차이가 있다. 휴머니즘 역시 인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대의명분은 같지만 그 수단은 ‘교육’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다운 인간’이란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스스로 향상시킨 인간, 자율성을 가진 윤리적이고 건강한 인간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을 통한 인간의 한계 극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율성을 가지고 자기계발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하여 자신을 향상시킨 인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인간상은 자율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기에 십상이다.

휴먼증강 또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우리는 그동안 생명의 유한함과 육체적 제약 그리고 인간의 한계 속에서 존엄성을 밝히고 인간성의 가치를 실현해 왔다. 그 역사의 여정이 바로 인간의 정체성이었다. 앞으로 기술로 인해 수많은 제약이 사라진다면 가장 궁극적인 문제점은 ‘인간의 조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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