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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 경전’ 음식 그대로…진짜 청요릿집 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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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청나라 대표 미식 조리서로 꼽히는 『수원식단(隨園食單)』(1787년) 조리법으로 요리한 해삼족발(红燒海蔘肘子). 신인섭 기자

청나라 대표 미식 조리서로 꼽히는 『수원식단(隨園食單)』(1787년) 조리법으로 요리한 해삼족발(红燒海蔘肘子). 신인섭 기자

진짜 청요릿집이 탄생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중식당을 청요릿집이라고 했다. 요즘은 중식당이 간편식당 개념이 크지만, 그 시절에는 별실에서 코스 음식을 즐기는 고급 요릿집이었다.

지난 성탄절 이틀 전 영업을 개시한 대학로 ‘계향각’은 청나라 대표 미식 조리서로 꼽히는 『수원식단(隨園食單)』(1787년) 전문 청요릿집이다. 점주 겸 조리장으로 음식점을 연 사람은 ‘꽃중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계숙(59) 배화여대 조리학과 교수다.

정식 개업 이틀 전, 주인의 가까운 지인들 틈에 끼어 4인이 음식점 첫 외부 손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판에 있는 31가지 중 13가지와 메뉴판에 없는 것 1가지 등 모두 14가지를 맛봤다. 기존 중식당에서 먹던 음식은 거의 없다. 일부는 이름이 같아도 음식은 달랐다. 맛본 음식만으로도 ‘진짜 청요릿집’의 면모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소흥주를 넣고 매우 약한 불에 장시간 뭉근히 끓여 만든 삼겹살 요리인 동파육. 신인섭 기자

소흥주를 넣고 매우 약한 불에 장시간 뭉근히 끓여 만든 삼겹살 요리인 동파육. 신인섭 기자

①닭다리냉채[口水鷄]: 화자오가 들어간 새콤달콤한 소스를 얹은 닭다리냉채. ②고수무침[拌香菜]: 매콤 새콤한 소스에 무친 고수냉채. ③오이냉채[麻辣黃瓜]: 절여서 달콤 새콤하게 만든 오이냉채. ④해삼족발[红燒海蔘肘子]: 삶고 튀기고 뭉근히 끓인 돼지족에 불린 해삼을 곁들인 요리. ⑤다진홍고추생선찜[剁椒魚]: 숙성한 청양고추를 얹어 찐 매콤한 생선찜. ⑥편두(扁豆; 제비콩)꼬투리볶음(메뉴에 없음). ⑦라즈지[辣子鷄]: 고추·화자오를 넣어 얼얼한 맛이 나는 닭날개 볶음. ⑧동파육(東坡肉): 소흥주를 넣고 약한 불에 장시간 뭉근하게 끓여 만든 삼겹살 요리. ⑨초염새우[椒盐蝦]: 소금과 후추로 맛을 낸 통새우튀김. ⑩불도장(佛跳墙): 8가지 재료를 긴 시간 푹 곤 산해진미 요리. ⑪팔보오리[蒸鴨]: 국가정상급 연회에 내는 고급 요리로 오리 몸통뼈를 빼낸 자리에 각종 귀한 재료를 채워 쪄낸 오리찜. ⑫해선볶음밥[海鲜炒飯]: 신선한 패주·새우 등 해물을 듬뿍 넣은 볶음밥. ⑬연근디저트[熟藕]: 연근 구멍에 찹쌀을 채워 뭉근히 끓여낸 달콤한 디저트. ⑭고구마빠스(拔絲地瓜) 튀긴 고구마를 설탕 시럽에 섞어 실을 만들어 낸 달콤한 디저트.

오리 몸통뼈를 빼낸 뒤 각종 재료를 넣어 쪄낸 팔보오리. 신인섭 기자

오리 몸통뼈를 빼낸 뒤 각종 재료를 넣어 쪄낸 팔보오리. 신인섭 기자

음식마다 향으로 먼저 미각을 일깨우고, 간이나 익힌 정도나 맛의 짜임새가 두루 맞춤했다. 특히 ‘해삼주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진 해삼족발은 불린 해삼도, 삶은 돼지 사태살 족도 알맞게 졸깃하고 기대한 만큼 부드러웠다. 생선찜에 올린 삭힌 고추의 발효미는 모든 음식의 모든 맛을 압도했다. 두 가지 음식 요리법을 꼬치꼬치 물었다.

▶해삼족발 재료: 건해삼 불린 것 4개, 돼지 앞다리 허벅지 1개, 어슷하게 썬 파 40g, 얇게 썬 생강 30g, 간장·청주 각 3큰술, 육수 2컵, 물녹말 2큰술.

족에 색 내는 재료: 식용유 1큰술, 설탕 1컵.

족 삶는 재료: 물 3L, 파 1대, 생강 50g, 간장·술 각 1컵.

만드는 방법: ①건해삼을 미리 불린다. 물에 삶다가 끓으면 불을 끄고, 식으면 다시 삶는다. 하루 3회씩 4~5일 반복한다. ②족은 살짝 삶아서 핏물을 뺀다. ③불린 해삼은 4㎝ 길이로 저민다. ④색 내는 재료를 끓여서 족의 색을 낸 다음, 족 삶는 물에 넣어 100분 정도 다시 삶아 그릇에 담는다. ⑤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어슷하게 썬 파와 생강으로 향을 내고, 간장·청주를 넣고 해삼을 넣는다. ⑥육수를 넣고 물녹말을 풀어 해삼에 곁들인다.

숙성된 청양고추를 얹어 찐 매콤한 다진 홍고추 생선찜. 신인섭 기자

숙성된 청양고추를 얹어 찐 매콤한 다진 홍고추 생선찜. 신인섭 기자

▶다진 홍고추 생선찜 재료: 우럭 활어 1마리(1kg), 분량의 다진 고추 소스, 식용유(콩기름) 2큰술.

만드는 방법: ①다진 고추 소스는 신선한 홍고추를 칼로 거칠게 다지고, 고추 무게 대비 마늘 20%, 생강·소금·이과두주(없으면 소주) 각 5%를 넣어 숙성(몇 달~몇 년)하면서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우럭 1마리 찜에는 고추 200g 해당 분량을 준비한다. ②우럭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차림 접시에 담고, 생선 위에 다진 고추 소스를 얹어 찜통에 20분간 찐다. ③찐 생선 위에 송송 썬 파를 얹고 식용유를 끓여 붓는다.

이 집에는 중국집에서 흔히 먹는 짜장면이나 탕수육·팔보채 같은 음식은 없다. 메뉴가 색다른 것 말고도 몇 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 간단히 준비되는 메뉴가 많지 않아 100% 예약제 원칙으로 손님을 받는다. 양념부터 중간재료까지 기성품 안 쓰고 직접 준비하는 수제품이기 때문에 음식 가격대가 높다. 주문 없이 나오는 반찬은 없다. 따라서 재활용도 없다. 제대로 만드는 청요리이니 예약해 제값 치르고 즐기라는 말이다.

신계숙 셰프가 웍에 재료를 넣고 볶아 해삼족발을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신계숙 셰프가 웍에 재료를 넣고 볶아 해삼족발을 만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수원식단』은 청나라 최고 전성기인 강희·옹정·건륭제 시대(1661∼1796)를 살았던 저장성 항저우 출신 시인 원매(袁枚, 1716~1797)가 33세 이후 난징에 살면서 40년 동안 즐긴 음식 360가지 조리법과 요리사의 자세를 정리한 책이다. 필자는 서문에 “배움의 정신을 매우 존중하여 매번 다른 사람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되면 우리집 요리사를 그 집 주방에 들여보내 제자의 예를 갖추고 배우게 하여 40년 동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맛있는 요리를 많이 모으게 되었다. 그중 어떤 요리는 배워서 완전히 알게 된 것이 있고, 어떤 요리는 60~70%, 어떤 요리는 20~30% 정도만 알게 된 것이 있으며, 어떤 요리는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묻고 모아서 보존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신 교수는 『수원식단』을 1997년 상해음식복무학교(上海飮食服務學校)에서 중국요리 단기 과정을  공부할 때 중국 학생이 선물해서 처음 접했다. 중국에서 요리계의 성경처럼 여기는 이 책은 읽어보니 단순 조리서가 아니라 당시 문화·철학을 아우르는 종합 음식 교과서였다. 내용이 소중해 손에 쥔 후로 연구를 거듭했다. 2015년에는 한글 번역본을 냈고, 요즘도 자기 전에 읽고 아침에 눈 뜨면 또 읽는다. 그 내용을 공부하고 실습하는 6명 5개반 요리교실도 진행 중인데, 2년 과정으로 시작한 걸 5년째 계속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무턱대고 수업을 더 하자면서 졸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신 교수가 그 요리로 교실이 아닌 실전 주방에서 웍을 달구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하는 배화학교 창립 123년, 배화여대 개교 43년 역사에서 교수 창업 1호라고 한다. 대학교수는 영리활동을 위한 겸직을 제한받는다. 특별한 경우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총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일단 하고 보는’(저서 제목의 일부) 직진인생 신 교수는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한 다음 총장실로 찾아가 강력하게 호소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승낙을 받았다.

하필 요즘 같은 시기에 음식점을 여는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또한 직진이다. “1987년 ‘향원’에 취업한 이래 35년째 품어온 꿈이었다. 하루도 잊지 않고 원하고 생각해온 일이다. 새해에 육순에 접어드는데, 50대를 일주일 남기고 그 꿈을 이뤘다. 중국사람들이 진짜 청나라 때 음식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음식점을 만들려고 한다. 나도 원매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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