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여야, 보수 통합이냐 분열이냐 촉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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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호 04면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삼성서울병원 인근에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환영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화환이 늘어서 있다. [뉴시스]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삼성서울병원 인근에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환영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화환이 늘어서 있다. [뉴시스]

31일 0시 석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정치권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여야의 셈법과 시각이 판이하다. 국정농단 수사의 당사자였던 전직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선후보가 돼 있는 역설적 상황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이 윤석열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결과적으로 보수 진영의 통합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반면 여권은 보수 분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가둔 자’(윤 후보)와 ‘풀어준 자’(문재인 대통령)의 이분법도 부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예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정’격인 국민의힘은 겉으론 덤덤한 모습이다. 공식 반응도 박 전 대통령 사면이 결정된 지난달 24일 “사면을 환영한다. 국민 대통합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이양수 수석대변인 논평이 전부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 지지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펴낸 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 출간된 뒤엔 더욱 그렇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책에서 윤 후보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해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이 사람들을, 그것도 일부의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책에는 “누구를 위해 이권을 챙겨주는 그런 추한 일은 한 적이 없다”거나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부패와 더러움에 찌든 삶은 아니었다”며 국정농단 수사나 탄핵에 대해 항변한 대목도 많다.

2017년 10월 국정농단 사건 재판 도중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는 ‘정해진 결론을 향한 요식행위’라는 생각에 이후 재판을 거부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이 대목을 두고 일각에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후보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공직자 신분으로 법을 집행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크게 기여한 분들에 대한 평가와 국민 통합 등을 생각하는 입장”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빠른 쾌유를 빈다”고 말했다.

윤 후보 측에는 향후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 조심스럽지만 낙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결국 정권 교체가 대의인 만큼 정치적 지위 회복을 위해서라도 윤 후보를 직접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경우 과거 자신의 정치적 기반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만큼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이는 우리공화당 등 박 전 대통령을 계속 지지해 온 인사들 사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윤 후보가 꽃다발을 보내도 안 받으실 것”이란 말이 나오는 것과는 꽤 온도 차가 있다.

이와 관련, 여권에서는 야권 내부의 분열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 보수가 분열될 경우 고향이 경북 안동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잖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설령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내더라도 윤 후보에겐 이로울 게 없을 것”이라며 “서간집에서도 윤 후보 주변 인물에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탄핵에 긍정적이었던 권성동·장제원 의원을 비판하는 지지자 편지에 “거짓말로 속이고 선동한 자들은 누구라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답한 것을 두고서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진영에서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싶더라도 윤 후보를 위해 뛰지는 못할 것”이라며 “친박 지지층 일부는 애초부터 윤 후보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진단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환영한다’는 윤 후보 발언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측이 볼 때는 상당히 이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며 “본인을 구속한 사람의 이중성은 신뢰할 수 없을 것이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허언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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