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내몰던 적도 감화시켰다…한국도 절실한 '힐링의 지도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2.31 22:04

업데이트 2021.12.3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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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 그의 지지자들이 들고 나온 그의 초상화. AP=연합뉴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 그의 지지자들이 들고 나온 그의 초상화. AP=연합뉴스

이제 곧 ‘지난해’가 될 2021년. 수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한국의 두 명의 전직 대통령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을 발표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던 지난 26일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설적 인물,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청와대에 새롭게 5년간 전세살이를 시작할 주인공을 뽑는 선거를 앞둔 지금, 투투 대주교가 남긴 말은 한국 사회에도 울림이 큽니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생입니다.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이 극심했던 시기에 성장하면서 단지 피부색만으로 경찰에게 매를 맞거나 교육권을 박탈 당했습니다. 교사였던 그가 29세에 성공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국 유학을 떠난 것도 인종 차별 정책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그는 백인 경찰관에게 길을 물어도 곤봉으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일부러 아는 길인데도 길을 여러 번 물어보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그런 그가 귀국했을 땐 인종 차별 정책, 즉 아파르트헤이드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고 합니다. 투투는 아파르트헤이드 철폐 운동에 앞장섰는데, 논리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차별 정책이 흑인에게 불리하기에 잘못됐다는 것을 넘어, 이런 정책을 계속 실행한다면 백인들의 인간성이 후퇴하는 것이기에 결국 백인에게도 손해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흑인의 권리만을 소리높여 주장하기 보단, 흑인과 백인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1996년 달라이 라마와 만난 투투 대주교. AFP=연합뉴스

1996년 달라이 라마와 만난 투투 대주교. AFP=연합뉴스

백인들에겐 이런 주장이 더 무서웠나 봅니다. BBC에 따르면 당시 저명한 백인 언론인이었던 존 앨런은 “투투는 악마”라면서 “투투가 백인에 대해 갖는 감정은 정상이 아니며, 그는 악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세월이 지난 뒤 존 앨런이 투투 대주교의 공식 자서전을 집필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적까지도 감화시킨 투투 대주교의 인간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투투 대주교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용서의 중요성’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엔 이런 게 있다고 합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용서를 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더욱 특별하고 가치있게 만든다.”  

이런 투투 대주교의 특별한 리더십은 남아공 모두의 마음을 결국 움직입니다. 고(故)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보다도 더 먼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죠. 투투 대주교를 두고 “그깟 검둥이 하나 죽어봐야 감기 걸린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울 게 없다”는 막말까지 했던 당시 법무장관 지미 크루거에 대해 “나는 크루거 장관이 참 불쌍하다”고 응수하기도 했죠.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장례식 중 그의 명언이 배경에 전시돼있다. "나의 행복은 남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것이다. 행복은 고요하고 평화로울 때 찾아온다" 정도로 해석된다. 로이터=연합뉴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장례식 중 그의 명언이 배경에 전시돼있다. "나의 행복은 남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것이다. 행복은 고요하고 평화로울 때 찾아온다" 정도로 해석된다. 로이터=연합뉴스

피부색만 같을뿐 서로의 편을 가르고, 차별하고, 거친 언행으로 공격하기에 바쁜 지금의 우리들에게 투투 주교의 용서의 리더십은 함의가 크지 않을까요. BBC가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달았던 헤드라인은 “국가의 상처를 힐링한 지도자” 였습니다. 분열을 부추겨 득표를 노리는 이들 대신 상처투성이 분열의 한국에도 힐링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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