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파리 닮은 남프랑스 도시, ‘노스트라무스 소나무’로 유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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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연경의 유럽 자동차여행(20)


남 프랑스의 작은 파리, 몽펠리에

프랑스 남부에서 이제 스페인으로 가는 여정이다.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몽펠리에는 역사가 1000년에 이르는 오래된 도시이지만 대학 도시로도 명성이 높아 인구의 50%가 35세 이하이고, 그중 25%는 유학생이라는 젊음의 도시다. 우리나라 유학생도 상당히 많아 도심에 평이 좋은 한국 식당도 있다.

몽펠리에는 12~14세기 항구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17세기 신교와 구교 간의 위그노 전쟁을 거친 후에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유입되며 도시 전성기를 구가했다.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 장자크 루소, 앙드레 지드 같은 사람들도 몽펠리에에 거주한 적이 있고,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적당한 몽펠리에 대학 의대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몽펠리에 ‘개선문 앞 망루의 소나무가 죽으면 몽펠리에는 망한다’는 예언을 남겼는데 몽펠리에 시민들이 그 소나무를 정성껏 잘 살리고 있다는 후일담이 재밌다. 몽펠리에를 잠깐 들러 보려는 사람들은 중심 광장인 코메디 광장과 페이루 광장 사이를 오가며 그 주변을 돌아보면 되겠다.

주차장

Parkinn Comedy /좌표 43.608927, 3.880047
개선문 쪽에도 여러 주차장들이 보인다.

코메디 광장 아래 주차하고 코메디 광장 주변을 보고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 에쿠송(Ecusson)이라 부르는 옛 도심을 보고 개선문으로 간다. 개선문에서 일직선 상에 있는 페이루 왕실 정원과 수도교를 보고 몽펠리에 대성당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되겠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파브레 뮤지엄과 신시가의 아름다운 건축물까지 본다.

몽펠리에 여행지도. [자료 연경 제공]

몽펠리에 여행지도. [자료 연경 제공]

코메디 광장과 트램

몽펠리에 코메디 광장과 트램. [사진 pixabay]

몽펠리에 코메디 광장과 트램. [사진 pixabay]

1888년에 파리 코메디 하우스를 본 따 만든 코메디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광장이다. 타원형 모양이라 달걀광장이라고도 불린다. 1773년 에티엔 당트완이 만든 삼미신 분수 근처에 앉아 잠시 몽펠리에 사람되어 보고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다는 몽펠리에의 트램 구경을 해 보자. 몽펠리에 도심은 소매치기 극성인 지역이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중세 거리 에쿠송

코메디 광장에서 에쿠송이라 부르는 서쪽 구시가지로 들어가 본다. 구도심에서는 발길 가는 대로 다녀도 좋다. 좁은 골목, 아치형 천정을 가지고 있는 상점, 골동품 가게, 찻집 등을 구경하며 중세 몽펠리에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저택이 80여 개가 남아 있는데 개인 소유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고 몇 곳은 관광안내소의 가이드 투어로 내부를 볼 수 있다.

개선문, 페이루 광장, 수도교

1692년에 만든 개선문과 페이루 왕실 정원, 로마시대 수도교가 일직선상에 있다. 개선문 앞으로 쭉 뻗은 대로가 포슈 가인데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본 따 만든 거리이다. 파리가 되고 싶었던 몽펠리에의 소망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이제 가까이 있는 몽펠리에 대성당으로 가보자.

석양의 몽펠리에 개선문. [사진 연경 제공]

석양의 몽펠리에 개선문. [사진 연경 제공]

몽펠리에 대성당

몽펠리에 대성당. [사진 Sokoljan on wikimedia commons]

몽펠리에 대성당. [사진 Sokoljan on wikimedia commons]

14세기에 건축된 웅장한 고딕 성당은 16세기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으로 파괴되었다. 현재 모습은 17세기에 복구된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짧은 시간을 가진 여행자는 몽펠리에 구경 서운하지 않을 만큼 한 것이고 이 동선 안에 한국 식당도 있으니 여행 도중 한식이 필요하면 찾아가 기력을 보충해 본다. 뮤지엄을 좋아하면 가까이 1825년에 지역 화가가 세운 파브레 미술관도 기억해 두자. 들라크루와, 라파엘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만약 몽펠리에에서 시간 여유가 있다면 1978년 몽펠리에 시가 재정비한 신시가지 안티곤까지 가 보자. 네오 클래식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하고 잘 가꾸어진 녹지, 분수, 놀라울 정도로 개성 있게 지어진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관광 안내소 옆의 큰 쇼핑물 폴리곤을 지나 동쪽으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걸으며 파리를 닮고 싶었던 남프랑스 도시가 어떻게 개성 있게 재탄생되었는지 알 수 있다. 폴리곤, 라파예트 백화점,밀레네르 광장, 유로피아 광장이 일직선 상에 있고 가까이 라르브르 블랑(L'arbre blanc, 하얀 나무)이라고 불리는 아파트도 매력적이다.

안티곤의 건축물들이 인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Jack R. Johanson on flickr]

안티곤의 건축물들이 인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Jack R. Johanson on flickr]

아파트 라르브르 블랑. [사진 Bruno Barral on wikimedia commons]

아파트 라르브르 블랑. [사진 Bruno Barral on wikimedia commons]

완벽하게 복원된 중세 요새 카르카손

카르카손은 툴루즈와 몽펠리에에서 가깝기는 해도 여행객들이 쉽게 코스에 넣지 못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몽생미셸, 로카마두르, 베르사유 등과 인기가 맞먹는다. 프랑스에서 수학여행 가는 대표 장소라고 한다. 겨울인데도 투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곳이었다.

중세 요새에 세워진 성채가 아주 우람하고 이중으로 쌓은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드(Aude)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중세 도시 라 시테 (La Cite)가 있고 서쪽으로는 바스티드 생 루이(Bastide Saint Louis)가 자리 잡고 있다.

기원전 6세기경의 정착지가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가 있는데, 기원전 100년경 로마인들이 최초로 요새를 건설했다. 서기 453년부터는 서고트 왕국이 통치했으며 507년 프랑크 왕국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724년부터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 사건은 759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이끄는 공격을 이겨낸 일이다.

중세 카르카손의 사라센 왕국은 프랑크 왕국에 5년이나 포위되어 있었다. 성에 먹을 것이 돼지 한 마리와 약간의 밀 밖에 없자 사라센의 왕비 카르카스는 밀(콩이라는 말도 있다)을 돼지에게 먹인 뒤 성 밖으로 던져 배가 터지게 한다. 이를 본 군사들은 성안에 식량이 넉넉하다고 판단, 휴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고 왕비 ‘카르카손’에서 도시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진다.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이 지역을 카르카손이라 불렀다 하므로 진위는 알 수 없다.

8세기 후반에도 스페인으로 통하는 요충지였으며 13세기 말 오늘날과 같은 요새가 완성됐다고 한다.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에 승리, 위그노교도와의 전쟁도 이겨 낸 난공불락의 성이다. 1659년 스페인과 프랑스는 피레네 조약으로 평화를 회복하는데 이때 프랑스 국경이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위치는 약해졌다.

주차장

성을 둘러싸고 주차장들이 곳곳에 있다.
①Parking Gustave Nadaud 주소 Rue Gustave Nadaud, 11000
② Parking Cité 주소 Chemin de Montlegun 11000
③P2 Cité - Porte d'Aude 주소 Camin dels Orts, 11000

카르카손 성벽. [사진 연경 제공]

카르카손 성벽. [사진 연경 제공]

성 안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둘러보면 되는데 성벽 안으로 세워진 콩탈성으로 가서 성벽을 걸어보면 좋다.

콩탈 성(Château Comtal)
고대 로마 고급주택 단지 도무스가 있던 자리 위에 중세의 뛰어난 석조기술로 카르카손 자작의 성이 세워졌다. 성벽 안쪽에 세워진 성으로 ‘요새속의 요새’라 불린다. 직사각형의 넓은 정원을, 성벽으로 이어진 탑과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방어용 건물이라 창은 작고 원형 탑들의 꼭대기에는 남색 삼각뿔 지붕이 얹혀져 있다.

생 나제르 사원(Basilique Saint Nazaire)
남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 그라스가 있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 성당. 1898년 레오 13세 교황이 바실리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카르카손은 강을 낀 요새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도 핵심이므로 성을 둘러보고 성 밖의 뷰포인트로 가 보자.

뷰포인트 Carcassonne Castle Panorama View Point / 좌표 43.201718, 2.371875

낭만의 미디 운하 크루즈

가론 운하와 미디운하. [사진 Pinpin on Wikimedia commons]

가론 운하와 미디운하. [사진 Pinpin on Wikimedia commons]

프랑스 남부 지도를 보면 대서양과 지중해로의 통로가 왜 절실했는지 이해가 된다. 프랑스 남부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물길로 잇는 대역사가 17세기에 이루어졌다. 1667년 시작해 1694년에 완성된 미디 운하는 툴루즈를 기점으로 대서양으로 흐르는 가론 강과 지중해로 흐르는 오드 강을 연결시켜 당대 수송 혁명을 가져온 대역사(이베리아 반도를 돌아 북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1달이나 단축했으며 해적을 피할 수 있었다)였고, 근대 과학 기술이 낳은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라고까지 손꼽힌다.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끈 피에르 폴 리케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덕분에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까지 칭송받았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미디운하 수로의 전장은 360km이며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수문, 수로, 다리, 배수로, 터널 등 328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운하 건설 자금은 왕실 재무부, 랑그도크 지방, 리케의 사재로 충당됐다. 이 사업은 수년 동안 부침을 거듭했고 재정난도 겪었지만 리케는 사재를 털어 넣어 공사비를 댔다. 운하는 1681년 개통되었고 리케는 완공 몇 달 전에 사망해 그 아들이 완공하게 되었다.  미디 운하로 인해 운하주변 지역의 농산물 유통이 왕성해졌으며 리케의 고향인 베지에는 와인 교역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기도 했다. 19세기 철도 개통으로 수송에서는 밀려났지만 현재는 인기 관광지가 되어 사랑받는다. 툴루즈에서도 미디 운하를 볼 수 있는데 카르카손에서 운하 크루즈를 경험해 볼 수 있으므로 시간이 된다면 배를 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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