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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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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봄,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에게 물었다. 팬데믹의 절정에서 압도적 1위에 오른 답변은 ‘가족’이었다. 17개국 가운데 14개국 국민이 첫 번째로 가족을 꼽았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세 나라는 스페인·한국·대만이었다.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은? ‘물질적 행복(Material well-being)’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네덜란드·벨기에·일본처럼 물질적 행복을 가족 다음 2순위로 꼽은 나라는 꽤 있지만, 1위에 올려놓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미국·영국은 가족 다음으로 친구, 호주·스웨덴·프랑스·싱가포르는 가족 다음으로 직업(일자리)을 꼽았다.

퓨리서치센터는 지난달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화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이해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다른 문화권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 준 셈이다. 한국인은 ‘물질적 행복’ 다음으로 건강과 가족을 2, 3위에 올렸다. 다른 나라에서 상위권에 오른 직업이나 친구·취미는 한국인 목록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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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큼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국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조사가 진행된 지난봄 서구 국가들은 전면봉쇄(lockdown) 조치로 가족과 오랜 시간 생이별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한국은 이동이나 만남 제한이 덜해 가족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척도가 달랐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인들은 가족이나 친구 같은 무형의 가치보다 집과 돈, 부와 안정 같은 물질적 행복에서 삶의 가장 큰 의미를 찾는다는 소식은 어딘가 씁쓸하다.

일자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삶에 의미를 주는 상위 세 개 원천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취업부터 승진까지 한평생 일자리 때문에 울고 웃지만, 그마저도 물질적 행복이 삼켜버린 걸까.

물질적 행복, 중요하다. 질 높은 삶을 끊임없이 추구해 온 덕분에 한국과 한국인이 이만큼 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은 소중한 것도 많을 터다. 코로나19와 함께 맞이하는 두 번째 연말이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선물이 하나 있다면, 생활이 단순해지고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해답을 찾고 목표에 맞게 삶을 재조정하는 시간을 갖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