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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합법”이라지만…기자·취재원 신원 무차별 조회한 건 위헌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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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찰 논란의 핵심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뒷조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위 공직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 비위 의혹을 보도한 기자를 상대로 취재원을 캐려고 사찰한 행위는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이다.

공수처는 중앙일보 기자의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 보도와 TV조선 기자의 관용차 에스코트 CCTV 영상 보도를 이유로 기자들의 착·발신 통화 내역을 확인했고, 기자와 통화한 일반인 및 업무상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참여한 동료 기자 다수의 통신자료(가입자 신상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조회했다. 심지어 취재와 무관한 기자의 가정주부인 어머니와 아내, 동생, 친구 등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를 성명 불상 검찰 관계자의 공무상 비밀누설죄 공범으로 보고 법원에서 통신영장까지 발부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형법 127조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공무원을 처벌하는 신분 범죄여서 그 상대방을 처벌할 수 없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 비리 제보자를 캐기 위해 이를 취재·보도한 기자의 통신 상대방 신원을 무차별 조회한 건 헌법 21조(언론자유)가 금지한 ‘언론 검열’이고, 헌법 17조(사생활)·18조(통신비밀)를 침해한 ‘불법 사찰’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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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이 일정 기간 특정인의 착·발신 통화 내역(상대 전화번호와 통화시간)과 발신 기지국 위치정보를 확인하려면 통신비밀보호법상 관할 법원의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허가, 통신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또 수사기관이 수사를 목적으로 통신사에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ID) ▶가입·해지일 등이다. 그 근거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의견(소수)이 나오기도, 대법원에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법조계 전문가들은 두 사건이 현직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고위 공직자 관련 특혜·비위를 보도한 기자에 대한 명백한 보복·표적 수사라는 점에서 불법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공수처는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만 반복할 뿐,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는 기자를 수사한 근거에는 입을 닫고 있다. 이 때문에 허위·과장 기록으로 법원을 속여 현 정권과 공수처에 비판적인 기자를 사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수사 관행이 이런 식이면 누가 공직자나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겠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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