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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질문 얼버무린 김진욱...공수처 ‘대선의 늪’ 빠졌다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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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수처의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 등의 통신기록 조회 논란에 대한 현안 질의에 앞서 타이를 만지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수처의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 등의 통신기록 조회 논란에 대한 현안 질의에 앞서 타이를 만지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인과 국회의원에 이어 제1야당 대선후보에 대해서도 수차례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최대 국정 과제로 꼽혔던 ‘검찰개혁’의 상징인 공수처가 사찰 논란에 휩싸이면서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30일 기준 공수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84명, 언론사 기자 140명 이상을 대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후보에 대해선 지난 9월 8일과 23일, 10월 1일 등 세 차례,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해선 10월 13일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30일엔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소속 한국인 기자가 7~8월 두 차례에 걸쳐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이 공개해명을 요구하는 등 공수처의 무더기 통신조회는 국제적 논란이 됐다.

누구를 대상으로 통신사실확인자료(통화·문자 등 내역)까지 조회했는지, 통신자료(가입자 정보 조회)만 확인한 이는 누구인지 공수처는 밝히지 않고 있다. 대신 이날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진욱 공수처장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적법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다. 검경도 하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 하느냐”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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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하고 있는 양홍석(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변호사는 김 처장의 ‘법절차 준수’에 대해 “공수처가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 못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법절차를 따졌는지 묻는 게 아니라 수사 필요성·상당성, 수사비례원칙에 반하는 수사(통신자료 조회)를 했는지가 쟁점인데 동문서답 한다”는 이유다. 양 변호사는 “고발사주 의혹 수사를 하면서 수백 명이 가입한 형사소송법학회 단톡방을 들여다본 걸로 아는데, 거기서 무슨 범죄를 모의하겠냐”고도 말했다. 더욱이 공수처는 이성윤 검사장 황제조사 의혹 보도 기자 등에 대해 통화내역까지 추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원 색출 논란이 일고 있지만, 공수처는 이 역시 답변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법령 따른 통신조회는 사찰 아니지만, 야당만 했다면 문제”

조회 대상이 대부분 현 정부 비판 인사라는 점에서 사찰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이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법령에 의한 행위를 사찰이라 할 수는 없다”면서도 “야당만 (조회)했다면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일이고, 문제를 제기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차라리 서서 죽겠다”고 썼다. 대구 선대위 출범식에선 “저와 제 처, 제 처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사찰을 했다.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공수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후보가 정치활동을 개시하기 전인 5월 검찰이 통신자료 조회를 한 걸 보면 광범위한 사찰이 있었던 것 아니냐”(국민의힘 재선 의원)는 말도 나온다.

당 차원에서는 “공수처가 1970년대 유신 시절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형태의 민간인 사찰을 했다”(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2018년 민정수석실 특감반 사찰 의혹이 제기됐을 때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김의겸 당시 대변인)고 했던 청와대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날 “공수처는 독립기구”라며 “청와대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뒤로 한발 뺐다.

지난 9일 사찰 논란이 처음 불거진 뒤 20여 일간 침묵하던 여권은 방어선 구축에 나섰다. 입건된 피의자의 통화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자료 조회를 했기 때문에 사찰이 아니라는 논리다. “전화번호를 찾다 보니 야당 의원 80여 명이 나온 것이 팩트”(박성준 의원), “윤석열 후보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만 280만 국민이 사찰을 당한 셈”(김영배 의원)이란 반박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야권 결집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공수처가 자료 조회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넘어가기 어려운 이슈”(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라고 전망했다. ‘정치중립’을 모토로 내세웠던 공수처가 출범 1년도 안 돼 스스로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다. ‘구속·기소 건수 제로(0)’라는 성적표로 아마추어 논란에도 휩싸인 공수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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