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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영 김정은, 의회 제치고 당에서 내년 예산 논의

중앙일보

입력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그동안 내각과 의회(최고인민회의)의 몫이었던 국가 예산 문제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매체들은 30일 “2021년도 국가예산집행정형(상황)과 2022년도 국가예산안에 대한 토의를 위한 국가예산심의조를 조직해 문건초안 연구를 하고 있다”며 사흘째 전원회의 소식을 전했다. 27일 올해 네 번째 전원회의를 개막한 이후 내년도 당과 국가의 사업방향 및 사회주의 농촌문제 등과 관련한 논의 이외에 국가예산 문제를 이번 회의에서 논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지난 27일 개막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4차 전원회의 3일차 회의를 29일에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신문은 "부문별 분과 연구 및 협의회들에서 전원회의에 제기할 결정서 초안을 진지하게 연구토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1]

북한이 지난 27일 개막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4차 전원회의 3일차 회의를 29일에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신문은 "부문별 분과 연구 및 협의회들에서 전원회의에 제기할 결정서 초안을 진지하게 연구토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1]

통상 북한은 내각(행정부)에서 예산안을 작성하면 이를 최고인민회의(의회)에서 결산 및 심의ㆍ의결하는 형태로 진행해 왔다. 실제 북한 헌법은 예산과 관련해 “최고인민회의는 국가예산과 그 집행정형에 관한 보고를 심의하고 승인한다”(91조 5항)고 규정하고 있다. 또 “내각은 국가예산을 편성하며 그 집행대책을 세운다”(125조 6항)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북한 매체의 보도대로라면 이번에는 당 전원회의에서 올해의 예산 집행 실적을 평가한 뒤 내년 예산을 확정하는 절차를 진행중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당 우위 국가인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열기 직전 노동당 정치국 또는 상무위원회에서 최고인민회의에서 논의할 안건을 확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는 내년 2월 개최 예정인 최고인민회의 안건을 당 전원회의에서 논의하는 게 특이한 동향이어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전원회의에서 예산과 관련한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예산과 관련해 내용적으로는 당 차원의 검토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처럼 전원회의라는 대규모 회의에서 논의하고, 이를 북한이 공표한 게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란 얘기다. 북한은 2018년 4월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정치국 회의를 열어 예산문제를 논의했다고는 공개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당 전원회의가 ‘국가예산심의조’를 만들어 논의하는 건 형식적으로 초헌법적인 모양새인 것이다.

이와 관련 경제난으로 자원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이 총동원의 일환이자 당의 역할 확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대북 제재완화 시도가 좌절돼 단번도약 전략을 수정했다”며 “나아가 지난해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며 경제난이 가중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가 예산이 넉넉했다면 내각이나 최고인민회의에 예산과 관련한 정책을 맡겼을 것”이라며 “자력갱생을 통해 난국을 돌파하려 시도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전날(28일) 식량 증산을 위한 농촌 운영 제도 개편과 함께 지방의 고위 간부들과 기업소 관계자들까지 참여시킨 이번 회의에서 노동당이 적극 개입하는 일종의 비상경영 형태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최근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며 “형식적으로도 당이 모든 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올해 1월 개정한 북한 노동당 규약은 전원회의의 역할과 관련 “해당 시기 당앞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한다”(26조)고는 돼 있지만 예산과 관련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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