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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된 국가통계…노조조직률 믿을 수 있나[뉴스분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입주 건물 입구에 현판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입주 건물 입구에 현판이 걸려 있다. 뉴스1

고용노동부가 2020년 말 기준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30일 발표했다. 노조 조직률은 1994년 이후 26년 만에 최고 수치를 찍었다. 조합원 수는 280만명을 넘어섰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급속히 세를 불려 제1 노총에 올랐던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3년 만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한데 이날 발표된 노조 조직 통계를 보면 개운치 않은 구석이 한두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가통계인 노조 조직 현황 통계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조차 갈수록 외면하는 모양새다. 신뢰도 없는 통계를 왜 생산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통계 자체만 놓고 보면 공공부문과 대기업 중심의 노조가 주도하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일각에서 기득권의 득세로 표현하는 이유를 짐작케한다.

지난해 노조에 가입한 전체 조합원은 280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26만5000명 불어났다. 노조 가입 대상 근로자 1979만1000명 중 14.2%(노조 조직률)가 노조에 가입했다. 2019년(12.5%)보다 1.7% 포인트(p)나 상승했다.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노조 조직률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급증세를 보였다. 2016년까지 10.2~10.3%의 횡보를 보이던 노조 조직률은 2017년 0.4%p 늘어나며 증가세에 시동을 건 뒤 2018년 1.1%p나 늘었고, 2019년에도 0.7%p 급증했다. 이 증가세가 지난해에는 더 가팔라졌다. 현 정부의 친노조 정책에 따른 후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 조직률과 조합원 수 추이

노조 조직률과 조합원 수 추이

한국노총이 115만4000명(41.1%)의 조합원을 거느리며 제1 노총에 복귀했다. 2018년 민주노총에 제1 노총의 지위를 내준 뒤 3년 만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113만4000명(40.4%)이었다. 두 노총 모두 10만명 이상 조합원이 불어났다.

두 노총이 세를 불리고 있다지만 두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독립노조의 약진도 눈에 띈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걷는 이른바 미가맹 노조 조합원도 41만7000명(14.9%)에 달했다. 전년(38만6376)보다 7.8%나 불어났다. 기존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MZ노조의 출현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간기업의 노조조직률은 11.3%에 불과했다. 공공부문과 공무원 부문이 각각 69.3%, 88.5%로 공공부문의 조직률 상승이 두드러졌다. 교원 부문도 16.8%에 달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선 노조 조직률이 49.2%였다. 100~299명이 근무하는 사업장은 10.6%, 30~99명 2.9%, 30인 미만 0.2%였다. 노조가 공공부문과 대기업 중심으로 결성되고, 그들이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만 따지면 ▶한국노총의 제1노총 복귀 ▶노조조직률 역대 최대 상승 ▶MZ노조를 중심으로 한 독립 노조의 약진 ▶대기업·공공부문 위주의 노동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건 통계상 나타난 특징일 뿐이다.

문제는 이 통계를 믿을 수 있느냐다. 노조 조직 현황 통계는 노조가 '신고한 조합원 수'를 기초로 작성한다. 노조가 부풀려서 신고해도 확인하지 않는다. 반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지난해 한국노총 측은 2년 연속 제1노총이 민주노총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작년(2019년) 기준으로 조합원 수를 무려 14만명 이상인 것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최근 치러진 민주노총 선거의 건설노조 선거인단 수는 신고된 수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건설현장은 (노동자가) 수시로 양 노총을 넘나들고, 중복 가입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통계적 검증이나 고려가 전혀 없다"고 통박했다. 한마디로 검증하지도, 검증도 안 되는 '고무줄 통계'라는 얘기다.

노조 조직률은 국가통계다. 어느 통계보다 정밀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단체마저 믿지 못하는 지경이라면 국가 통계로 대접하기 힘들다. 심지어 정부조차 이 통계에 큰 의미를 안 두고 신뢰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고용부는 2018년(2017년 노조 조직률 통계)까지만 해도 노조 현황을 발표할 때 업종별 조합원 수, 특이사항, 해산한 노조 수, 신규 노조 수, 미가맹 노조의 움직임,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노조 격차, 양 노총의 노조 비중 등을 세세하게 분석한 자료를 냈다. 그러나 지난해(2019년분 통계)부터는 짤막하게 보도자료를 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조가 신고한 것만 가지고 집계하다 보니 논란이 하도 많아서 세세한 통계 수치는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게 국가통계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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