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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ㆍ역주행ㆍ궤도이탈…2021 대중문화 결산

중앙일보

입력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질주와 역주행, 그리고 궤도 이탈이 공존한 한 해였다. 2021년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 콘텐트 시장에서 주류로 주목받은 시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팬데믹의 고통 속에서도 윤여정과 ‘오징어 게임’, 방탄소년단의 활약에 어깨 으쓱한 시간을 보냈다. 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오랜 공백과 연초부터 이어진 폭로 파문에 방송계는 몸살을 앓았다. 올 한 해 대중문화가 걸어온 길을 결산한다.

◇질주

K-콘텐트의 위상이 이만큼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 그 선두 주자는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다. 9월 17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 시청한 콘텐트가 됐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딱지치기, 구슬 놀이 등 한국의 놀이 문화를 서바이벌 게임과 접목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의 골칫거리인 양극화와 계층 갈등 등 현실 사회 문제를 끄집어내며 글로벌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 ‘고담 어워드’ 작품상 등 수상 소식도 이어진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13일 발표된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이정재)ㆍ남우조연상(오영수) 후보로 호명됐다. ‘쌍문동 백수’ 기훈의 활약이 백인 위주 폐쇄성과 보수성으로 악명 높은 골든글로브마저 장악할 수 있을 것인가. 시상식은 내년 1월 9일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BTS) 콘서트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아미들이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BTS) 콘서트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아미들이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BTS의 질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5월과 7월 각각 발표한 ‘버터’와 ‘퍼미션 투 댄스’,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 등이 모두 빌보드 메인 차트 ‘핫100’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버터’는 총 10주 동안 1위를 지켰다.

지난달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페이보릿 팝 듀오 오어 그룹’ ‘페이보릿 팝송’ 등 3관왕에 오른 것도 세계 가요사의 일대 사건으로 남았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를 아시아 가수가 품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곧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면 콘서트에는 총 4회 공연에 21만명의 관객이 몰려, 소파이 스타디움 개최 공연 중 최다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

◇역주행

역주행의 신화는 코로나 한파에 시달리는 N포 세대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돼줬다. 역주행의 아이콘으론 단연 4인조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꼽힌다.

지난 9월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에서 홍보대사 브레이브걸스가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지난 9월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에서 홍보대사 브레이브걸스가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2016년부터 브레이브걸스로 활동한 유정ㆍ민영ㆍ유나ㆍ은지, 이들의 평균 나이는 올해 29.5세다. 긴 무명 생활에 지쳐 해체를 결정하고 짐을 싸던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올 2월 24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들의 군부대 위문공연 동영상이 조회수가 ‘폭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후 브레이브걸스는 2017년 발표한 노래 ‘롤린’으로 음악방송 1위, 음원차트 1위를 거머쥐는 역주행 파란을 일으켰고, 후속곡 ‘치맛바람’으론 정주행에도 성공했다.

역주행의 단서가 된 영상이 무명 시절 이들이 마음 다해 무대에 섰던 군 위문 공연이란 사실은 감동을 배가시켰다. ‘존버’의 상징이 되면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파한 효과도 크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사상 첫 아카데미 연기상의 주인공이 된 배우 윤여정 역시 20∼30대 젊은 날보다 70대인 지금이 더 빛나는 경우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윤여정은 독특한 목소리가 핸디캡 취급을 받았고, 결혼ㆍ이혼 과정에서 10여 년의 공백기를 거쳐야 했다. 40대에 다시 드라마 단역부터 시작한 연기 인생은 지금도 여전히 전성기를 향해 가며 광고 시장까지 휩쓰는 모양새다.

11월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오영수 배우가 시구를 마친 후 야구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11월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오영수 배우가 시구를 마친 후 야구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77세 배우 오영수도 인지도 차원에선 역주행의 사례다. 1976년 데뷔한 이래 국립극단의 간판 배우로 활약하며 연극계에선 이미 ‘명품 배우’라 불렸지만,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오영수는 TV 예능 ‘놀면 뭐하니’(MBC)에 출연하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시구자로 나서는 등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며 예술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을  MZ세대에게 전하고 있다.

◇궤도 이탈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위원장 내정설에서 촉발돼 반년 넘게 이어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업무 공백은 방송의 파행을 불러왔다. 심의 중단을 틈타 폭력ㆍ잔혹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낸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드라마 ‘펜트하우스’(SBS)다. 방심위의 심의를 요구하는 민원이 500건 넘게 쌓여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8월 정연주 전 사장을 위원장으로 한 제5기 방심위가 꾸려져 심의가 재개됐을 때, ‘펜트하우스’는 이미 시즌3까지 방송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사진 SBS]

16부작으로 예정됐던 드라마 ‘조선구마사’(SBS)가 역사왜곡 논란에 밀려 2회까지만 방송된 뒤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빚어졌다. ‘동북공정 드라마’라는 비난 여론까지 일면서 기업ㆍ지자체들이 광고와 지원을 끊은 것이 방송 중단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 이를 두고 학계에선 “드라마적 상상력을 허용해야”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필요” 등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초 스포츠계에서 시작된 ‘학폭 미투’가 연예계로 확산되면서 방송 역시 영향을 받았다. 드라마 ‘달이 뜨는 강’(KBS2)은 방송 중간에 주인공 지수의 학폭 논란이 불거지자 9회 방송부터 주인공을 교체했고, 사전 제작이 완료돼 지난 2월 첫 방송될 예정이었던 ‘디어엠’(KBS 2)은 주연 배우 박혜수의 논란 이후 방송을 무기한 연기했다. ‘갯마을 차차차’(tvN)의 경우엔 마지막 방송 직후 주인공 김선호의 전 여자친구가 ‘낙태 종용’ 등을 폭로하며, 신민아ㆍ이상이 등 다른 출연 배우들의 예정됐던 인터뷰까지 줄줄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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