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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법관탄핵은 결국 각하…양승태 재판은 185회 열렸다 [法ON 스페셜 2021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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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4일’

정치권이 이른바 ‘법관탄핵 정국’으로 치닫던 날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탄핵대상이 된 법관은 ‘세월호 재판 개입’ 의혹을 받던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범여권은 임 전 부장판사를 두고 “재판에 개입한 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며 탄핵을 의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김명수(62·15기) 대법원장 탄핵 카드를 검토했다.

지난 2월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법농단' 연루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순간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월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법농단' 연루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순간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21년 새해가 밝자마자 국회가 ‘법관 탄핵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중앙일보 [法ON 스페셜 2021]이 올 한 해 법원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사건 중 다섯 번째로 살펴볼 순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이다.

① 김명수, 임성근 “탄핵” 발언과 거짓말 파문…탄핵소추 강행

2021년 2월 4일은 사법부에 있어 ‘치욕의 날’로 꼽힌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더 큰 파문은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 때문에 일었다. 당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핵소추 당사자인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탄핵 발언’을 한 육성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전날인 3일 “임 전 부장판사와 면담은 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었다.

그로부터 20시간 후인 다음 날 아침.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5월 22일 면담에서 임 전 부장판사에게 탄핵 발언을 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는 김 대법원장의 말이 육성으로 공개됐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은 하루 만에 국회와 언론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녹취록 그래픽 이미지.

김명수 대법원장-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녹취록 그래픽 이미지.

하지만 대법원장의 거짓말도, 후배 법관을 국회의 탄핵 제물로 넘겼다는 비난 여론도 당일 180석 여당의 탄핵소추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다. 179표의 찬성표로 가결 정족수(151표)를 넘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탄핵론에 불을 지핀 건 임 전 부장판사의 1심 판결이었다. 1심 재판부가 임 전 부장판사에게 “다른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를 했다”고 적시했기 때문이다.

임성근 부장판사(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임성근 부장판사(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임 전 부장판사는 201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하며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당일 7시간 행적’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사건 ▶프로야구 선수 도박 약식기소 사건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다 결국 올해 2월 국회로부터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를 받은 셈이다.

② ‘6년 유임’ 윤종섭 “행정처에 지적권” 사법농단 첫 유죄

14명의 전·현직 법관이 기소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법관 무패’ 흐름이 깨진 건 지난 3월 23일. 양승태(73·2기)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다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60·17기)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59·18기)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1심 판결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윤종섭)는 이 전 실장에 대해선 국민의당 의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부의 심증을 파악한 혐의, 이 전 상임위원에 대해선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유죄를 인정해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왼쪽)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오른쪽). 연합뉴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왼쪽)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오른쪽). 연합뉴스

통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해당 직무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재판개입이 행정처의 권한이어야 직권남용 혐의도 인정된다는 의미다.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이 앞선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은 이유다. 혐의를 인정하면 ‘판사는 독립적으로 재판한다’는 헌법 103조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32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두 법관에게 “대법원장(법원행정처)에게는 일선 법관에 대해 재판 지연 등 재판 사무에 대한 지적(指摘)할 권한이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판결 직후 일각에선 “헌법상 법관 독립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재판장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올해 법원 정기 인사에서 최장 3년 근무 관행을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6년째 유임된 윤종섭(51·26기) 부장판사였기 때문이다.

③ 윤종섭 판례 깨지나?…임성근 2심 “지적권은 헌법 위배”

임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판결에선 윤종섭 부장판사의 판례가 다시 뒤집어졌다. 지난 8월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박연욱)는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는 부적절한 재판 관여”라면서도 “이 행위가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때 필요한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지 않은 만큼 ‘위헌적 행위’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사의 지적 권한을 인정한 하급심인 중앙지법 형사32부의 판결을 비판했다. 윤 부장판사의 판결처럼 법원행정처의 법관에 대한 재판사무 지적권을 인정하게 되면 헌법상 재판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결론 내리면서다. 판결문에 각주로 다른 재판부의 판결 사건번호를 여러 차례 적시해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④ 헌재, 첫 법관 탄핵청구 “퇴직해 실익없다” 각하

2021년 10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 청구를 각하한 날이다. 헌재는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지 8개월 만에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직해 청구의 실익이 없다며 이같은 결론을 냈다. 탄핵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인용 의견이 필요한데 5명의 다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이 났다. 지난 2월 임 전 부장판사가 임기만료로 퇴직한 까닭에 탄핵 심판의 이익이 사라진 만큼 국회의 탄핵 청구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 이미지.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 이미지.

반면 헌법재판관 3인의 다른 의견을 내놨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은 “피청구인의 행위가 얼마나 중대한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인지 규명하는 것은 파면 여부 자체에 대한 판단 못지않게 탄핵 심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본안 판단에 나아갈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⑤ 첫 법관탄핵 무위에도…양승태 재판은 200회 코앞

헌재의 판단을 끝으로 ‘법관탄핵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2022년에도 재판은 4년째 계속될 전망이다. 사법행정권남용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부 시절 전·현직 법관은 2018년 11월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2·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포함해 14명이다. 이중 무죄를 확정받은 법관은 총 4명이다. 지난 10월에는 유해용(55·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달 25일에는 신광렬(56·19기), 조의연(55·24기), 성창호(49·25기) 부장판사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 밖에 전·현직 법관들은 하급심 및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1·2심 무죄를 받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은 지난 14일 126번째 공판을 거쳤다. 재판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임 전 차장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며 기피 신청을 내는 등 반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 재판은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의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 윤종섭)가 맡고 있다.

2019년 2월 구속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지난 22일 무려 185회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법관 정기 인사에 따른 재판부 교체로 공판 갱신 절차를 거치면서 재판이 지연된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 재판을 지연하는 등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으로 고영한(66·11기), 박병대(64·12기) 전 대법관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여전히 수십명의 증인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내년까지도 1심 결론이 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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