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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의혹 불렀다…광주판 '용산공원 아파트' 수상한 고분양가

중앙일보

입력

광주중앙공원 1지구. 이곳 일부에 2800가구 가량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광주광역시

광주중앙공원 1지구. 이곳 일부에 2800가구 가량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광주광역시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광주광역시 중앙공원 1지구에 들어설 예정인 2779가구(85㎡초과 중대형 2000가구)의 아파트는 향후 몇 년간 광주시에 공급될 아파트 중 최고 관심단지로 꼽힌다. 축구장 320개 크기인 240만㎡의 넓은 공원 안에 지어지는 이른바 '공품아(공원을 품은 아파트)'이고, 광주의 중심 지역이라 교통·학군·편의시설 등이 좋기 때문이다. 서울로 치면 용산공원 안에 지어지는 아파트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업자는 선분양 방식으로 분양하겠다고 지난해 6월 광주시로부터 실시계획인가를 받았지만 최근 광주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결과 평당 1870만원에 '후분양' 방식으로 분양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계획인가를 받은 광주시내 나머지 9개 민간공원 특례사업지는 모두 실시계획인가를 받은 대로 '선분양'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8개 사업지의 분양가는 평당 1200만원대 이하이고, 중앙공원 1지구와 인접한 중앙공원 2지구의 분양가는 평당 1500만원대다.

광주시, 후분양 전환 명분 위해 허위보고서까지 작성

10개 공원 사업지는 모두 2019년~2020년에 걸쳐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 선분양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HUG가 설정한 분양가 상한선을 수용하지 않으면 분양에 필요한 보증을 내주지 않는 제도)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평당 1000만원에 분양할 수 있는 것도 보증을 받기 위해서 800만원으로 낮춰야 하는 식이다. 1만2000가구 규모로 재건축될 예정인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이 늦어지는 것도 재건축 조합이 책정한 분양가를 HUG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분양을 하게 되면 이런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평당 1000만원에 분양할 계획이었다면 그대로 1000만원에 분양하면 되는 것이다. 광주시는 지난해 6월 10개 사업지 중 유일하게 중앙공원 1지구 사업자에 대해서만 '고분양가 관리지역 대응계획'을 요구했고 사업자의 후분양 전환 요청을 받아들여 후분양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는 올 3월 'HUG 분양가 사전심사 내용 보고'라는 보고서도 만들었는데, 이 보고서에는 광주시가 HUG로부터 분양가 사전심사를 받은 결과 평당 분양가가 1100만~1200만원으로 나왔다고 명시돼 있다. 입지에 비해 분양가가 너무 낮아 선분양으로는 사업자가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기 위한 '명분용 자료'라고 광주시 시민단체들은 보고 있다.

광주 중앙공원 조감도. 조감도 가운데에 풍암호수가 있고 그 옆에 광주 월드컵경기장이 있다.

광주 중앙공원 조감도. 조감도 가운데에 풍암호수가 있고 그 옆에 광주 월드컵경기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허위보고서로 밝혀졌다. HUG본사 관계자는 "당시 광주시 공무원들이 광주전남지사를 방문한 것은 맞지만 정식 심사요청은 물론 분양가를 시뮬레이션 해 달라는 얘기도 없었다"며 "HUG입장에서는 정식 심사요청이 들어와 심사를 하면 평당 1600만원선이라도 분양을 못하게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사업조정협의회 '협의'도 광주시 마음대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광주시민과 광주 시민단체 등이 "광주시가 사업자에게 이익을 몰아주고 있다"며 특혜의혹을 강하게 제기했고, 의혹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5차례에 걸쳐 사업조정협의회 회의까지 열렸다. 협의회는 교수,시민단체 관계자,사업주 등 9명으로 구성됐고, 광주시는 협의회의 '협의'에 따라 다음 단계의 인허가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협의회에 참석했던 광주 경실련 관계자는 "5차 협의회 때 광주시 공무원이 분명히 확정안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분양가 등을 적은 문서를 나눠준 뒤 수거해갔는데, 바로 다음 날 광주시는 협의회에서 분양가를 '확정'했다고 발표했다"며 "시가 발표한 분양가는 사업주의 계획과 거의 동일하다"고 말했다. 결국 협의회 위원들이 '협의'를 한 것도 아닌데 광주시가 사실과 다르게 발표했다는 것이다.

군사작전 방불케 하는 도시계획위원회 

협의회 직후 진행된 도시계획위원회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 위원회에 참석했던 위원들의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광주 모 대학 교수는 "사업자의 최초 제안보다 용적률과 분양가를 올리는 원안에 대해 위원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2차 회의 날짜는 회의 3일 전 퇴근 시간에 카톡으로 공지해 위원들이 단톡방에서 크게 반발했다"며 "통상 여름 휴가 때는 회의 일정을 잡지 않고, 최소한 회의 일정 일주일 전에 공지하는데 광주시가 통보한 2차 회의일은 8월 초 여름휴가 기간이었다"고 덧붙였다. 2차 회의도 참석한 위원 18명 중 14명이 원안에 반대했다.

도시계획위원들의 반대가 심하자 광주시는 도시계획위원 중 11명이 참여한 소위원회를 열어 토론하게 했는데 여기서 의원들 간에 합의된 분양가와 분양방식(평당 1500만 원대에 선분양)은 '단순 참고용'으로만 됐고, 결국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한 원안이 통과됐다.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이 지난 8월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뉴스1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이 지난 8월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뉴스1

이 회의에 참석했던 또 다른 위원은 "결국 광주시는 사업자와 미리 짠 '작전'대로 사업을 진행했고, 인허가 과정에서 진행된 각종 회의는 회의할 필요도 없었던 '구색 맞추기'용이었다"며 "광주시는 일관되게 민간 사업자의 이익을 높여주기 위해 움직였고, 이는 명백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주택건설사업에서 '용적률=돈'인데 이 프로젝트는 인허가 과정에서 아파트의 용적률이 199%에서 214%로 15%포인트 높아졌다. 최초 사업제안서 제출 당시의 용적률(161%)과 비교하면 53%포인트나 높아진 셈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사업자로 선정된 회사가 아파트 분양수익의 일부로 공원 조성비를 대는 방식이다. 이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가 2조2000억원인데 서류상 사업자 보장 이익은 1183억원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후분양은 아파트 건립 공사가 70%가량 진행된 시점에 분양하기 때문에 분양가 상승 추세를 고려했을 때 선분양과 분양가 차이가 거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후분양이 진행되는 2년 뒤의 분양가는 현재의 분양가보다 높을 것이기 때문에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후분양에 따른 손해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아파트값이 계속 오를 때나 해당하는 얘기다. 광주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업자가 번 돈으로 공원조성비용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분양가를 마냥 낮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위원회 회의 일정 등을 급하게 잡은 이유에 대해 광주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당초 계획보다 사업일정이 많이 지연됐기 때문에 시 입장에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광주 지역 업체 3곳과 중견 건설사 1곳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는 이 프로젝트의 후분양 시기를 2024년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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