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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로 피자·통조림…‘66t 완판’ 화천군의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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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3주간 100만 명이 몰리는 인구 2만6000명의 농촌마을. 세계 4대 겨울축제장 중 한 곳. 미국 CNN이 선정한 ‘겨울 7대 불가사의’….

매년 강원도 화천에서 열리는 산천어축제에 붙는 수식어다. 초보 강태공들도 짜릿한 손맛을 봤던 축제장은 매년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1회 때인 2003년 22만 명을 시작으로 13차례나 100만 명이 넘게 몰렸다. 2019년엔 184만 명이 찾아 지역 경제에 효자 역할을 했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축제는 예기치 못한 악재와 맞닥뜨렸다. 지난해 행사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 역대 최다 인파가 몰리며 ‘세계 4대 겨울축제’라는 명성을 재확인한 지 1년 뒤였다.

주최 측은 비상이 걸렸다. 축제 취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둘째 치더라도 행사용 산천어 77t을 처리할 길이 막막해졌다. 1년여를 정성껏 키운 산천어를 폐기하거나 비료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축제에 사용할 산천어 수급을 위해 10억원 넘게 투입한 점도 고민을 깊게 했다.

고심 끝에 화천군은 가공식품 등을 통한 소비 활성화 카드를 꺼냈다. 주로 축제장에서만 구워 먹었던 산천어를 전국 식탁으로 옮겨보자는 아이디어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시식회 자리였다. 유명호텔 셰프들을 초청해 산천어를 주재료로 한 각종 이색요리가 선보였다.

화천군이 지난해 12월 생산한 산천어 가공식품들. [사진 화천군]

화천군이 지난해 12월 생산한 산천어 가공식품들. [사진 화천군]

활어와 반건조, 통조림을 주제로 한 행사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산천어 피자를 비롯해 크림스프·부야베스 등 20여 가지 요리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당초 준비한 산천어 77t 가운데 가공식품으로 만든 66t이 나흘 만에 완판됐다.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는 일반 참치캔과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식품화 가능성도 열렸다.

화천군은 내년 초에도 산천어를 통조림과 어간장, 밀키트로 만들어 팔기로 했다. 올해도 취소된 축제용 산천어 95t이 판매 대상이다. 산천어 한 마리가 300g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31만6000마리에 달한다. 이 중 50t은 통조림으로 가공하고 나머지는 어간장·밀키트·어묵 등으로 만든다.

통조림은 국내 식품 대기업과 OEM(주문자 위탁생산) 생산 방식으로 공급한다. 현재 진행 중인 살코기 손질 등을 거쳐 다음 달 15일이면 통조림 50t이 화천군으로 배달된다. 화천군 측은 “지난해 구축한 가공식품 판매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어 올해도 완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산천어는 원래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간 뒤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어종이다. 송어처럼 바다와 민물을 왕래하는 종이지만 이제는 민물에서만 사는 쪽으로 습성이 바뀌었다고 한다. ‘축제 핫템’ 효자 노릇을 했던 산천어가 식탁 위의 효자로 회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