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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잠자는 제자 2명 강제추행한 교수님 무죄라네요, 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8)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불법 촬영물의 끊임없는 유포와 재생산은 피해자에게 고통과 상처를 줍니다. 성폭력처벌법은 카메라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이를 반포한 경우, 피촬영자의 동의를 받아 촬영했다 하더라도 사후 동의 없이 반포한 경우 모두 엄히 처벌하고 있습니다(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 제1항).

불법 촬영이 명백한데, 경우에 따라 무죄가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 수사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형사 재판에서는 범죄 사실은 증거로 인정돼야 하고(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습니다(동법 제308조의2). 따라서 아무리 핵심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해도, 그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라면 재판에서 증거가 없는 것으로 됩니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핵심적인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겠지요.

디지털 성범죄의 핵심 증거는 휴대폰이다. 하지만, 그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라면 재판에서 증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진 pixabay]

디지털 성범죄의 핵심 증거는 휴대폰이다. 하지만, 그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라면 재판에서 증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진 pixabay]


디지털 성범죄의 핵심 증거는 두말할 것 없이 휴대폰일 겁니다. 통상 범죄가 발각되면 경찰은 보관자에게 휴대폰을 임의로 제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휴대폰을 임의 제출 받지 못하면 경찰관은 사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합니다. 영장을 발부받으려면 담당 경찰은 관할 구역 담당 검사에게 범죄혐의, 압수할 물건의 범위 등을 기재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고, 검사가 검토 후 판사에게 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영장을 집행하는 포렌식 과정에도 휴대폰 보관자를 참여시켜야 하고, 휴대폰에서 추출할 동영상 등 목록을 작성해 휴대폰의 소유자나 보관자에게 교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영장을 발부받는 번거로운 방법보다 임의로 휴대폰을 제출받는 방법이 편할 겁니다. 범인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드러날 수밖에 없는 범죄라면 차라리 경찰관의 이런 수고를 덜어주고 수사에 협조해서 편의를 받겠다는 판단하에 휴대폰을 임의 제출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휴대폰을 임의로 제출받는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는데요.

2014년 A교수는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제자인 피해자 B씨가 다른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자 피해자를 질책하며 함께 술을 마신 후, 옷을 벗은 채 술에 취해 침대 위에 누워있던 피해자의 성기를 A교수의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했습니다(이하 ‘2014년 범행’). 이를 알게 된 B씨는 A교수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A교수 집에서 가지고 온 2개의 휴대폰(아이폰과 삼성 휴대폰)에 A교수가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고 말한 뒤 증거물로 제출했고, 경찰관은 휴대폰 2개를 모두 압수했습니다.

A교수는 경찰에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2014년 범행 동영상을 증거로 추출하는 이미징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삼성 휴대폰에 대해선 비밀번호 제공을 거절하고, 저장된 동영상 파일의 복원·추출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포렌식을 통해 2014년 범행을 확인한 담당 경찰관은 삼성 휴대폰에서도 추가 증거를 찾던 중 B씨가 아닌 다른 남성 2인이 침대 위에 잠든 모습과 누군가 그들의 성기를 잡고 있는 모습 등이 촬영된 동영상 30개와 사진 등을 발견하고 이를 CD에 복사했습니다.

증거를 수집하는데 있어 적법한 절차를 따라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사진 pixabay]

증거를 수집하는데 있어 적법한 절차를 따라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사진 pixabay]

경찰은 B씨를 추가로 소환해 CD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 2인의 인적사항을 조사해, 그들이 A교수의 대학원 제자들임을 알게 되습니다. 이후 A교수에 대한 추가조사를 통해 A교수가 2013년 C씨, D씨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이들의 성기를 만지고 동영상을 촬영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하 ‘2013년 범행’)을 추가로 인지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2013년 범행 영상의 전자정보를 복제한 CD를 증거물로 압수했고, A교수는 2013년과 2014년의 범행에 대해 모두 강제추행과 성폭력처벌법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교수는 2014년의 범행과 관련, 나체 상태로 누워있던 피해자에게 아이폰 카메라로 신체를 촬영하는 시늉을 함으로써 피해자가 정신을 차리고 잠에서 깨어나게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동영상이 촬영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2013년 범행인데요. 대법원은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로 압수절차에 위법이 있어 불법 촬영물이 담긴 CD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년 11월 18일 선고 2016도34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B씨가 삼성 휴대폰을 경찰에 제출할 당시 제출 범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이상, B씨의 임의제출로 적법하게 압수된 범위는 2014년 범행과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는 전자정보로 제한되는데, 2013년 범행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삼성 휴대폰을 포렌식 하기 위해서는 영장이 필요함에도 경찰관이 영장 없이 취득한 CD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으로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사후에 영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불법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결국 A교수는 2013년의 범행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고, B씨와 합의를 본 점이 참작돼 A교수는 300만원의 벌금을 납부하고 20시간 동안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A교수가 삼성 휴대폰의 비밀번호 제공 등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경찰관은 번거롭더라도 절차대로 삼성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받고 A교수를 참여시켜 포렌식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2013년의 범죄도 처벌받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미숙한 수사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C씨와 D씨입니다(다만 이 사건에서 A교수는 모든 범죄를 유죄판결 받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B, C, D씨와 모두 합의를 보았습니다). A교수는 무죄가 확정된 2013년의 범행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사 수사기관이 다시 절차를 시정한다 해도 A교수의 2013년의 범행에 대해서는 더 추궁할 수 없는데요,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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