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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도의 한반도평화워치

인권이 빌미 된 올림픽 보이콧, 득보다 실이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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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장 위구르 사태와 외교정책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에 파문이 일고 있다. 주변 관련국이 저마다 자국 안보의 틈을 메꾸기 위해 분주하다. 아프가니스탄 난민과 마약도 문제지만, 테러 세력의 활성화가 더욱 큰 걱정이다. 소련이 붕괴한 후 1991년부터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형성되면서, 한 세기 동안 억눌려왔던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정권에 도전하는 반군 세력이 유라시아를 휘청거리게 했다. 이제 조금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탈레반의 귀환으로 주변국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는 모양새다.

세력이 완전히 꺾인 것으로 보았던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은 아직 완전 소멸이라고 부르기에는 불안하고, 타지키스탄의 이슬람부흥당 세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약 중이다. 탈레반은 판즈시르에서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국민저항전선을 지원하는 타지키스탄을 향하여 반정부 세력을 동원해 공격하겠다고 위협할 정도다. 인도는 카슈미르 반군을 탈레반이 지원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알카에다가 여전히 살아 있고, IS호라산(IS-K)의 테러는 현재진행형이다. 한마디로 탈레반 나비효과가 만만찮다.

위구르인 탄압에 미·영 등 베이징 겨울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탈레반 정권 등 대다수 무슬림 국가는 위구르인의 고통 외면
정략적 욕심에서 인권 꺼내들면 불협화음 생길 수밖에 없어
프랑스는 “무의미한 보이콧” 평가 … 한국의 진지한 고민 필요

ETIM 빌미로 위구르인 억압

지난 10일 국제인권의 날을 맞아 미국 할리우드에서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동조자들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일 국제인권의 날을 맞아 미국 할리우드에서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동조자들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뭐니 뭐니해도 신장위구르 독립을 꿈꾸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때문에 중국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중국의 지지가 필요했던 미국은 2002년 8월 ETIM을 테러조직 명단에 올린 지 19년 만인 2020년 10월 ETIM이 존재한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했다. 등재나 삭제 모두 정치적인 결정이다. 존재 자체가 희미했던 ETIM은 위구르인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없는데, 중국 정부는 ETIM을 빌미로 신장위구르 무슬림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통제·억압했다.

중국은 2001년 6월 종교극단세력, 민족분열세력, 폭력공포세력과 싸운다는 상하이협력기구의 상하이협약 틀 안에서 ETIM을 저지하고자 총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9·11 테러 이후에는 반정부 발언을 하는 사람마저 모두 테러 분자로 몰아세웠다. 사실상 ETIM은 중국이 신장위구르 독립운동을 극단주의와 연결하여 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용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ETIM을 테러단체 명단에서 지운 것은 서구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위구르 단체에 힘을 실어주어 중국을 불편하게 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신장위구르 정책은 2014년 3월 1일 윈난성 쿤밍시 쿤밍역에서 일어난 무차별 테러 이후 강경책으로 급변했다. 당시 역 광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한 괴한 10여 명이 길이 60㎝∼1m의 칼을 휘둘러 31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150여 명이 크게 다쳤다. 신장 분리독립 세력이 베이징이나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보다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한 쿤밍을 노린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시진핑 주석은 신장지역을 방문해 강력한 정책을 주문했고, 1998년부터 시행해온 ‘엄타(嚴打)’ 정책을 강화해 첨단기술을 동원한 주민 통제가 이루어졌다. 국제사회가 지속해서 제기하는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인 인권 침해가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중국 정부가 위험한 인물로 분류한 위구르인은 직업교육훈련센터에서 ‘재교육’을 받는다. 중국인으로 만드는 교육이다.

동화정책으로 신장의 한족 40%로 늘어

위구르인의 모국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재교육 대상자는 1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폭로된 공식 문서에 따르면 수염을 기르거나 히잡을 쓰거나 정부 산아제한정책(도시 2, 농촌 3자녀)을 어긴 사람도 어김없이 재교육 대상이 됐다.

중국 정부가 학교라고 부르는 직업교육훈련센터를 국제사회는 수용소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위구르인 재교육은 중국 내에서 분열을 막는 안보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 목소리가 있을 수 없으니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국정 장악력은 강건하다.

2017년에 시진핑은 “외세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억압하거나 노예로 만드는 것을 중국 인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시도를 하는 자는 누구나 14억 중국 인민이 건설한 강철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다”라며 신장을 이용하여 분열을 꾀하려는 외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2020년 9월 시진핑은 엄타정책의 성공을 치켜세웠다. 올해 4월 중국 정부는 샤오캉(小康) 백서에서 정부의 빈곤 타파 정책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포함한 8개 소수민족 지역 주민 1560만 명 이상에게 혜택을 줬다고 주장했다.

명나라 시대인 1616년 고위 관리로 천주교인이었던 서광계(徐光啟·1562~ 1633)는 경전이 번역되지 않아 무엇을 믿는지 잘 알지 못하여도 여러 왕조가 이슬람 신앙을 포용하여 모스크가 곳곳에 있다고 했다. 동시대 이슬람교도였던 마주(馬注)와 유지(劉智)는 이슬람이 유가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슬람을 유가의 언어로 설명한 회유(回儒)였다.

그 결과 류지의 『천방전례(天方典禮)』는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포함되기도 했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신장지역의 이슬람이 마주나 유지처럼 중국 문화에 동화된 이슬람이길 원한다. 그러나 마주와 유지는 중국어가 모국어인 무슬림이었다. 유가의 책을 문제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장 위구르인들은 중국어와 완전히 구조가 다른 투르크어 계통의 언어를 모국어로 쓴다. 또 마주와 유지의 시대와 달리 문화혁명이라는 혹독한 고초를 겪으면서 3만 개에 달하던 모스크가 1400여 개로 줄어든 것을 보았다.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은 위구르인을 외국 침략자로 불렀다. 중국 정부의 신장지역 한화(漢化)정책으로 1945년 불과 6%에 지나지 않던 한족이 2010년 40%로 늘어났다. 회유가 나왔던 17~18세기의 중국과 지금의 신장은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중국의 탈레반 길들이기

ETIM을 테러조직에서 제외한 미국의 도발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상황 변화에 대응하려는 터키가 기존 투르크평의회의 이름을 투르크국기구(OTS)로 바꾸면서 신장 문제가 다시 중국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한다. 터키·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즈스탄 등 5개 정회원국에 투르크메니스탄·헝가리 등 2개 옵서버국으로 구성된 투르크국기구가 투르크어를 무기로 같은 투르크어를 쓰는 신장 위구르인들의 분리독립 의지를 드높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7월 시진핑과 통화에서 비록 중국의 주권을 존중한다고는 했지만, 위구르 무슬림이 중국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길 바란다고 하면서 위구르 분리 독립주의자를 중국으로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확실히 중국은 신장 위구르 때문에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위구르 독립 세력이 자리 잡을까 염려하여 2014년부터 중국은 탈레반 길들이기 작업을 하며 지속해서 반중 세력 통제를 요청했다. 중국의 경제 지원이 절실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는 중국이 걱정하는 위구르 독립 세력이 없다고 중국을 안심시켰다.

이에 IS 공식 통신 아마끄뉴스는 탈레반이 중국의 요청에 따라 위구르인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추방하기로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IS-K는 위구르 출신 무함마드를 내세워 지난 10월 8일 쿤두즈 시아파 모스크에서 50명 이상이 죽고 100여 명이 다친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했다. IS-K 지지자들은 자살폭탄 대원을 ‘중국에서 온 알라의 기사’로 칭송했고, 10월 26일 중국과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자 탈레반을 중국에 고분고분한 “창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각국은 신장 놓고 이익 따라 줄 서

IS-K, 알카에다, 탈레반 등 무슬림 극단주의 조직은 ‘이슬람의 대의’를 앞세우며 전 세계 무슬림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애쓴다. 팔레스타인·카슈미르·신장에서 억압받는 무슬림 형제 해방이 대표적인 이슬람의 대의인데, IS-K 지지자들은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 무슬림의 고통을 못 본 척 외면하며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탈레반은 팔레스타인과 카슈미르 지역 무슬림의 저항은 지지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중국 눈치 보기에 바빠 대의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신장 독립을 원하는 위구르인들은 IS-K의 지지가 불편하다. 자신들은 폭력적 극단주의와 무관한데도 중국 정부가 무조건 ETIM 테러분자로 몰아 탄압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신장 인권 탄압을 규탄하며 미국·영국·호주 등 몇몇 서방 국가가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정부 관리를 보내지 않는 형식으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프랑스는 의미 없는 보이콧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대다수 무슬림 국가는 위구르 형제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탈레반은 중국 편에 서 있고, IS-K는 반중국이지만,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은 IS-K의 지지가 싫다.

지금 세계는 신장을 둘러싸고 각자의 시각과 이익에 따라 줄을 서고 있다. 만고의 진리는 정략적 욕심에서 인권을 노래하면 늘 불협화음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그런 불협화음을 낼 필요가 있는지 우리 정부가 깊이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