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복 나자렛성가원 대표를 만난 게
2015년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인터뷰 내내 그의 손에 내 눈이 머물렀다.
부드러운 말씨와 달리 유난히 대비되는 투박한 손,
그는 테이블 아래서
두 손을 번갈아가며 내내 주무르고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야 그 손에 얽힌 의미를 듣게 되었다.
“제 별명이 일벌레입니다.
노는 시간 없이 일만 하고 살았죠.
방학 때조차 국내외 강연을 하며
강연료로 시설 운영비를 댔어요.
아마 지구 몇 바퀴를 돌았을 겁니다.
손가락 관절이 펴지지 않을 만큼
글을 쓰고 책을 번역했어요.
30권 가까이 냈는데
인세 수입도 전액 법인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법인이란 나자렛성가원이다.
이곳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피해 여성을
보호하는 쉼터다.
나락으로 떨어진 여성들을 돌보고, 자활을 돕는다.
이 대표는 예서 40년 넘도록 여성들의 벗이요,
어머니로 살아온 게다.
그는 6·25전쟁 당시 말 그대로
열세 살 ‘성냥팔이 소녀’였다.
1950년 12월 23일,
이 소녀 앞에 흑인 병사와 유엔군 차림 한국 청년이 섰다.
이 둘은 “내일 아침에 압록강 전투에 투입된다.
우리의 생명을 유산으로 주고 갈 사람을
뽑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느님께서 너를 선택한 것 같다”며
전투식량·담요·외투 등이 담긴
유엔군 배낭 네 개를 주고 갔다.
그러면서 “성당을 찾아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는 말을 남겼다.
이 소녀가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일 때
그의 어머니가 유언도 남겼다.
“부평에 성매매 피해 여성이 많아서
우리가 성폭행을 안 당했다.
그들을 돌보며 살 거라”는 당부였다.
이름 ‘마리아’와 이 유언이
지금껏 당신 아닌 남을 위해 살아온
마중물이 된 게다.
인터뷰 후 그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부끄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간곡히 부탁해서야 내민 그의 두 손에
살아온 삶이 온전히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