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시도…정부 "철회하라" 외교전 예고

중앙일보

입력 2021.12.28 17:40

업데이트 2021.12.29 12:17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사진은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갱 내부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사진은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갱 내부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이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데 대해 한국 외교부는 28일 “매우 개탄스러우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군함도 등)일본 근대산업 시설 관련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과 일본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는 이날 니가타(新潟)현에 위치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향후 일본 정부는 내년 2월 1일까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게 된다. 일본이 최종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할 경우 유네스코의 심의·검토를 거쳐 2023년 6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외교부, 공보문화원장 초치…"엄중히 문제제기" 

조선인 1200여명이 강제 노역한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 [중앙포토]

조선인 1200여명이 강제 노역한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 [중앙포토]

이와 관련, 외교부 견종호 공공문화외교국장은 이날 오후 추조 가즈오(中條一夫)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항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이런 문제,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정치화하는 일은 양국 관계 뿐 아니라 일본 측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 측 관계자를 불러 엄중히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 문화청이 이날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관련 동향을 주시하며 유네스코가 관련 문제를 인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의견을 표해왔다.

특히 일본은 사도광산의 역사 전부가 아니라 에도 시대만을 잘라 세계유산 등재 후보로 선정했다. 일본 제국주의 침탈기에 사도광산에서 자행된 강제 노역 등의 어두운 역사를 숨기기 위해 '꼼수'를 부린 셈이다.

일본은 앞서 2015년 군함도 등 근대 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에도 시기를 1850~1910년으로 한정해 올렸다. 강제 노역이 벌어지기 이전의 역사만 잘라내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겠다는 시도였다. 이에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 등을 상대로 설득전을 벌였고, 세계유산 등재의 조건으로 일본이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서술하도록 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日 약속은 안 지키고 또 '꼼수 등재' 시도 

일제강점기에 해저에 묻힌 석탄을 캐기 위해 한국인 600여명이 강제노역했던 군함도.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근대 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5년간 이같은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에 해저에 묻힌 석탄을 캐기 위해 한국인 600여명이 강제노역했던 군함도.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근대 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5년간 이같은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하지만 일본은 아직까지도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강제 노역 희생자를 추모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도쿄에 세운 정보센터 등을 통해 조선인의 강제 노역 피해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이에 지난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군함도 등에서 자행된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처럼 일본이 유네스코를 비롯,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한 약속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또 강제노역 피해를 숨긴 채 관련 시설에 대한 등재를 시도하는 건 향후 벌어질 외교전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군함도나 사도광산 등은 인류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문화유산)로서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진실을 온전히 알려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에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한·일 양자를 넘어서는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네스코에서 (군함도 등) 일본 근대 산업 시설에 대한 일본의 약속 이행을 강력하게 촉구한 상황에서 또 다른 강제징용의 역사가 있는 유산을 등재하려 하는 것은 유네스코라는 기구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도광산 관련) 유네스코와의 협조는 말할 것도 없고 관계부처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조해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운 뒤 적극 대응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의 경우 한국 외에도 중국 등 강제노역의 다른 피해국이 있었지만, 사도광산에서 자행된 강제노역의 피해자는 모두 한국인들이다. 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2023년은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반면 한국은 위원국이 아니란 점에서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보다 한층 정교한 외교전이 필요하단 평가가 나온다. 

등재 여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네스코의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심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고 유산으로서의 가치만 따진다는 점 역시 정부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2023년에 위원국이란 게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겠지만 단정적으로 그것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책임감 있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이라면 일본이 또 다시 이런 (강제 노역의) 유산을 등재하려는 것에 반드시 문제를 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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