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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시베리아호랑이만 팠다, 제인 구달 극찬한 韓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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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기록하며 최근 그들과의 교감을 담은 책 '꼬리'를 출간한 박수용 작가가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호랑이가 이번 책의 주인공인 야생 호랑이 '꼬리'다. 장진영 기자

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기록하며 최근 그들과의 교감을 담은 책 '꼬리'를 출간한 박수용 작가가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호랑이가 이번 책의 주인공인 야생 호랑이 '꼬리'다. 장진영 기자

“표범, 시라소니, 다른 동물도 많이 촬영해봤지만 호랑이는 달라요. 귀한데다 숲에서 만나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있죠. 처음엔 그 느낌이 한국에 와도 그리워질 만큼 마약처럼 당겼어요. 그런데 자꾸 찍다 보니 호랑이의 애환이 보이더군요.”
27년간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해온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 박수용(57) 작가의 말이다. 멸종 위기 시베리아호랑이의 3대에 걸친 생존 투쟁을 기록한 첫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2011)에 이어 10년 만에 두 번째 자연 논픽션 『꼬리』(김영사)를 펴낸 그를 27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내년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를 앞두고다.
 EBS PD 시절 자연 다큐를 고집해온 그다. 1995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한해 절반 이상을 영하 30도 동토에 머물며 호랑이만 쫓아다녔다. 호랑이를 수대에 걸쳐 관찰‧연구하며 촬영한 영상만 1500시간여. 영국 BBC,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등도 해내지 못했던 성과다. 그렇게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7부작(1997), ‘시베리아호랑이-3代의 죽음’(2003) 등 다큐를 만들었고, 방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낸 첫 책은 해외에도 영문판이 소개돼 “자연문학의 고전이 되어 마땅하다”(타임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침팬지 박사’ 제인 구달도 “호랑이에 관한 황홀한 산문”이라고 서평을 남겼다.

시베리아호랑이 마지막 1년 담은 『꼬리』 #자연문학가 박수용이 발로 뛴 자연 논픽션

늙음과 죽음, 호랑이와 인간 다르지 않아 

자연 논픽션 『꼬리』. [사진 김영사]

자연 논픽션 『꼬리』. [사진 김영사]

전작이 치열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동토의 야생을 깊숙이 포착했다면, 이번 작품은 늙은 수호랑이 ‘꼬리’의 마지막 1년간의 삶을 그렸다. 한때 일대 숲의 왕이었던 꼬리는 젊은 수호랑이로 인해 터전에서 밀려난다. 노쇠한 몸뚱이를 부지하려 거들떠도 안 봤던 민가의 개까지 잡아먹는다.
그런 늙어감과 배고픔의 혹독한 고통을, 박 작가는 종을 뛰어넘어 와 닿도록 그려냈다. ‘꼬리는 눈밭보다 얕고 단단한 진흙 위를 걸어갔는데도 발을 끌고 있다. 발자국이 무거워 보였다’ ‘야생호랑이가 늙어서 일인자의 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중략) 냉혹한 생존 투쟁의 정상에서 바닥으로 곧바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 치밀한 관찰이 뒷받침된 단단한 문장이 읽는 이의 마음을, 머나먼 설원(雪原)의 호랑이에게로 빙의시킨다. ‘영물(靈物)’로 신성시되거나 ‘호환(虎患)’ 같은 공포의 대상으로 호랑이를 바라봐온 세간의 시선과는 다르다.
야생 시베리아호랑이의 70~80%가 자연사가 아닌 덫과 올가미, 발목 지뢰, 사냥개와 밀렵군에 의해 죽는다는 책 속 설명이 그저 환경보호의 관점 이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박 작가는 “인간이든, 호랑이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똑같다는 확신이 든다. 지능과 생활방식의 차이만 있지 태어나서 고민하다 죽는 건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진짜 겪은 일만 심화 시켜 쓰느라 10년 

무인 센서 카메라에 포착된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의 모습이다. [사진 김영사]

무인 센서 카메라에 포착된 시베리아 호랑이 '꼬리'의 모습이다. [사진 김영사]

꼬리가 마지막으로 자주 함께 보였던 조선곡 암호랑이. 무인 센서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이다. [사진 김영사]

꼬리가 마지막으로 자주 함께 보였던 조선곡 암호랑이. 무인 센서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이다. [사진 김영사]

이미 10년 전 최후를 맞은 꼬리의 이야기를 이제야 펴낸 이유는 그런 주제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아무래도 다큐할 때는 그 다큐를 완성해내는 일에 골몰했다. 지난 10년간 다큐를 떠나 책도 쓰고 나이도 들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더라”면서 “진짜 겪은 일로만 쓰되 내 마음을 심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종을 초월한 공감대가 무엇을 바꿀 거라 기대하나.  

“먹을 것만 죽이게 되지 않을까. 호랑이는 사슴이 10마리 지나가도 한 마리만 잡아 보름간 배를 채운다. 사람은 100마리 있으면 다 쏴죽여서 냉장고에 넣지않나.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면, 최소한 쓸데없이 죽는 건 줄여야 된다.”

동물보호 기치에 반발하듯 동물을 학대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  

“자기 속에만 갇혀있어서 그렇다. 요즘은 한 개체가 한 개체를 극단적으로 죽이는 방식이 늘어난 것 같다. 서로 소통이 안 되고 고립돼서 살다보면 아무래도 감정이 메마르고 다른 존재는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생긴다.”

시베리아호랑이 관찰 27년, 보호운동가 됐죠

박 작가는 야생과의 ‘우정’을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거리감에서 찾았다. 있는 그대로의 야생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면서다. 2010년 EBS에서 퇴사한 그는 2011년 집 담보대출, 퇴직금 등 자비를 털어 러시아 현지 동물학자와 손잡고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를 설립했다. 촬영했던 호랑이가 인간에 의한 사고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였다. 이후 그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제인 구달 침팬지 연구소 등의 후원과 해외 방송사에 의뢰받은 다큐 작업 보수 등을 보태, 밀렵 퇴치와 올가미 철거 등 시베리아호랑이 보호 활동을 해왔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한국 외 판권을 영국 출판사 하퍼콜린스에 넘겨 나온 인세도 보호 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EBS 동료 PD로 만난 아내가 그의 지극한 호랑이 사랑을 이해해준 덕도 크다.

박수용 작가는 "다큐 찍는 사람이 아닌 글 쓰는 작가"로서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은 아직 불모지인 자연 논픽션을 통해 계속해서 "자연과 문학의 결합을 추구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장진영 기자

박수용 작가는 "다큐 찍는 사람이 아닌 글 쓰는 작가"로서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은 아직 불모지인 자연 논픽션을 통해 계속해서 "자연과 문학의 결합을 추구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장진영 기자

『꼬리』 영문판도 내년 출간할 예정이다. 3부작을 완성하는 다음 책은 세계적 야생동물 보호기금들이 호랑이를 연구한다면서 인간의 편의를 위해 올가미를 사용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호랑이가 올가미에 걸리자마자 마취총을 쏘면 몰라도 10분만 지체되도 호랑이는 자기 발목을 끊어버리고 가요. 다치면 사냥을 못 하죠. 70마리가 올가미에 걸리면 50마리가 죽어요. 종과 개체를 동시에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게 3편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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