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마다 “내가 최초”…폐플라스틱서 뽑아낸 열분해유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2021.12.28 16:59

업데이트 2021.12.29 11:46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오른쪽)과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이 지난 2월 대전광역시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연구개발 현장에서 열분해유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오른쪽)과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이 지난 2월 대전광역시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연구개발 현장에서 열분해유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정유업계가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열분해유 관련 ‘최초’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친환경·기술 선도 기업의 이미지와 열분해유 시장을 선점하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 석유화학 공정에 열분해유 투입 

SK지오센트릭과 SK 울산CLX 구성원들이 최초 공정 투입을 앞두고 열분해유 수송 차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지오센트릭과 SK 울산CLX 구성원들이 최초 공정 투입을 앞두고 열분해유 수송 차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세계 최대 도시유전’을 목표로 내세우며 열분해유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도시유전이란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에서 다시 석유를 뽑아내는 사업을 말한다. 폐플라스틱을 고열로 분해해 만든 열분해유가 대표 제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부터 국내 최초로 울산컴플렉스(CLX) 정유·석유화학 공정에 열분해유를 원료로 투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소업체 제주클린에너지와 협업해 열분해유를 공급 중이다. 원료유로 투입된 열분해유는 다른 원유와 마찬가지로 SK에너지의 정유공정과 SK지오센트릭의 석유화학 공정을 거쳐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제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전까지는 열분해유를 다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염소 등 불순물이 포함돼 있어 생산 과정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되고 설비가 부식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SK지오센트릭과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은 지난 2019년부터 제주클린에너지와 함께 열분해유 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후처리 기술을 개발했고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열분해유를 생산에 성공했다. 유재영 SK이노베이션 울산CLX 총괄은 “열분해유는 친환경 제품이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활용하기 어려웠다”며 “60여년 간의 정유·화학 사업 역량에 기반해 최적의 방법을 도출해 국내 최초로 실제 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GS칼텍스, 열분해유로 프로필렌 생산 실증사업 

GS칼텍스는 열분해유를 석유정제공정에 투입해 재활용하는 실증사업을 시작하며 ‘국내 최초’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GS칼텍스는 지난 22일부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약 50t을 여수공장 고도화시설에 투입하고 있다. 고도화시설은 중질유를 휘발유·등유·경유 등 경질유로 분해·정제하는 공정 설비다.

GS칼텍스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는 석유공정 중간 제품인 프로필렌 등으로 재탄생한다. 이 제품은 여수공장 석유화학공정의 원료로 다시 투입해 폴리프로필렌 등 자원순환형 플라스틱 제품으로 가공된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석유정제공정에 사용되는 탄소 기반의 기존 원재료를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로 대체해 자원효율성을 증대하고 동시에 탄소를 저감하는 순환경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 열분해유로 친환경 납사 생산

에코크레이션의 열분해 기술이 적용된 뉴에코원 공장 엔지니어가 열분해유 생산 설비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에코크레이션의 열분해 기술이 적용된 뉴에코원 공장 엔지니어가 열분해유 생산 설비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부터 열분해유를 원유 정제 공정에 투입해 친환경 납사를 생산하고 있다. 이 역시 ‘국내 최초’다. 현대오일뱅크는 우선 열분해유 약 100t을 공정에 투입하며 실증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안전성이 확보되면 투입량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는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보유 중인 열분해공정(DCU)을 활용해 향후 연간 5만t 규모의 신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관련 제도 손 봐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열분해유 사업은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다. 국가 간 유해 폐기물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 중 폐플라스틱 관련 규제가 올해부터 강화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폐기물 수입국인 중국도 올해부터 고체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발생한 폐플라스틱 처리가 국가적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열분해유 관련 법·제도도 손보고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한 열분해유는 현행 폐기물관리법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상 석유화학 공정 원료로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열분해유를 석유화학 공정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를 제공했다. 지난 21일 열린 ‘기업환경정책협의회’에서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용도를 원료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하위법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열분해유 사업은 폐플라스틱 매립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줄일 수 있고 탄소배출량도 감축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며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도 관련 기술 개발 경쟁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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