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정민이가 찬 강물로 걸어갔다니…" 가족 CCTV 요구 소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끝나지 않은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

유족들 요청 거절한 서초서 상대

경찰 발표 반박하는 증언도 확보 

지난 23일 오전 9시 45분쯤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 한 여성이 ‘내 아들 마지막 있었던 곳 좀 보자는 게 왜 이리 힘든 겁니까! 아빠가 아들 있었던 곳 보게 해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잠원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의 부친 손현(50)씨를 지지하는 시위다.

잠시 후 B220호 법정에 손씨 부부가 들어섰다. 손씨는 서울 서초경찰서를 상대로 사고 추정 장소 인근 CCTV 영상을 제대로 보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보여주긴 했지만, 화면이 작아 제대로 못 봤으니 큰 화면으로 보여주거나 파일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최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이미 CCTV 화면을 손씨에게 보여준 적이 있고 서초경찰서 측에서 회의실에 빔프로젝터를 쏘아 대형 화면으로 열람시켜주려고 했으나 “해당 영상이 흩뿌려지고 깨지는 등 화질 저하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상 확대된 화면을 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추가 열람 제공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수사 주체가 서울중앙지검이므로 이미 수사를 종결한 경찰이 단독으로 CCTV 영상 공개를 쉽사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서초서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고만 했다.

사건 발생 8개월, 여전히 논란 중

손씨가 아들을 잃은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각 언론사가 올해의 주요 이슈를 정리하면서 이 사건을 포함했다. 그러나 아직도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오전 10시쯤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장은 “말씀을 안 드릴까, 드릴까 했다”며 법원 앞에서 벌어진 시위를 언급했다. 손씨에게 "(재판부에) 압박을 주자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손씨는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이 아니며 시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날 법정은 손씨를 도우려는 사람들로 찼다.

서울 옥수동에서 왔다는 주부 이모(54)씨는 "경찰이 수사했는데도 아직도 손정민 씨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원인을 모르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손씨 가족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그는 "나도 대학생 아이가 있는데 너무 이상한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길 바라는 마음에 왔다"고 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최모(47ㆍ여)씨 역시 "이 사건은 원인을 비롯해 의문점이 많이 남아있고 경찰이 숨기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법정까지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시위에 동참한 배우 최금숙씨는 "유가족은 모든 걸 잃은 셈인데 적어도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는 알려줘야 하지 않나"라며 "부모 요청대로 CCTV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도 정민씨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엄청난 관심이 쏠리자 서초경찰서는 강력 7개 팀 등 38명을 투입해 74곳의 CCTV 126대를 수사했으나 정민씨의 정확한 사망 과정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경찰은 정민씨와 실종 직전까지 술을 마신 친구 A씨를 지난 10월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를 결정하면서 “피해자(정민씨)가 본인 의사로 돌무더기를 지나 강으로 들어갔다고 추정할 만한 자료들은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이런 경찰 추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장을 직접 가보기로 했다.

지난 23일 오전 손현씨가 지난 4월 아들 정민씨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실종된 뒤 시신으로 발견된 지점 인근에 시민들이 마련한 추모 공간을 찾아 곰돌이 푸 인형 등을 보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23일 오전 손현씨가 지난 4월 아들 정민씨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실종된 뒤 시신으로 발견된 지점 인근에 시민들이 마련한 추모 공간을 찾아 곰돌이 푸 인형 등을 보고 있다. 강주안 기자

한강변·지하철역 등에 추모 공간

오전 11시쯤 사건 장소 인근의 한강공원에 들어서니 시민들이 정민씨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 멀리서도 보였다. 정민씨의 대형 사진과 추모글이 놓였다. 꽃과 바람개비들 사이로 곰돌이 푸 인형이 여럿 보인다. 손씨는 "정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푸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이를 본 시민들이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장소로 추정되는 강기슭으로 내려가 봤다. 며칠 전 밤에 이곳을 돌아볼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앞서 지난 17일 오후 7시쯤 이곳을 찾아 현장을 돌아봤다. 정민씨 시신이 발견된 곳과 입수 지점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돌아보면서 든 의문은 ‘술에 취했다 해도 이렇게 깜깜한 상황에서 한강에 걸어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실족해서 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보였다.

의대생 손정민씨의 부친 손현씨가 지난 23일 정민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인근 강변에서 정민씨가 지난 4월 강에 걸어들어갔다는 추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의대생 손정민씨의 부친 손현씨가 지난 23일 정민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인근 강변에서 정민씨가 지난 4월 강에 걸어들어갔다는 추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무릎까지 찰 정도의 강물 깊이

그런데 낮에 보니 상황은 전혀 다르다. 물 밖에서 보면 바닥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얕았다. 기껏해야 무릎 정도 찰 수심이다. 설사 중심을 잃고 물로 떨어진다고 해도 익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더군다나 위쪽 평지에서 굴러떨어졌다면 바닥의 돌무더기 때문에 강물에 닿지도 않을 지형이다.

경찰은 지난 5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실종 당일 이 부근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오전 4시 40분쯤 한 남성이 무릎까지 물에 잠겨 서 있다가 가슴 부근까지 물에 잠긴 채 수영하듯 팔을 휘저으며 더 안쪽으로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을 정민씨로 추정하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손씨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쓰러져있던 정민이가 그 추운 날씨에 갑자기 강에서 수영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변했다. 손씨 측 이상용 법무법인도울 변호사는 "시간대도 안 맞을 뿐더러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정민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는 추론은 납득할 수 없다"며 "경찰 초동수사가 미흡했고 머리 상처 등 의문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낚시꾼들이 본 사람은 정민씨가 아니라는 게 손씨 측의 확신이다.

경찰이 분석한 손정민씨 시신 발견 지점 부근 수중 구조. [경찰]

경찰이 분석한 손정민씨 시신 발견 지점 부근 수중 구조. [경찰]

손씨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실종 직후만 해도 손씨 부부는 A군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손씨가 품고 있는 의문은 A씨가 왜 정민씨 핸드폰을 갖고 있었는지, 사고 추정 시간 즈음에 A씨 부친과 통화를 하고서도 왜 정민씨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민씨가 마지막 목격된 장소에서 바라보니 집이 지척 거리에 있다. 당시 전화만 해줬어도 한걸음에 달려와 비극을 막았을 것이라는 손씨 부부의 안타까움은 시간이 흘러도 가라앉지 않는다.

A씨 측 정병원 법무법인원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밤 11시 14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 10분쯤까지 A씨의 기억이 거의 없다"며 과음으로 인한 ‘블랙아웃’을 주장해왔다. A씨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은 근거가 없다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반박했다.

정민씨 부모는 외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정민씨를 포함한 세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모친은 세 끼를 모두 준비한다. 정민씨의 유골함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다. 경기도 소재 납골당에 자리를 마련했지만 아직은 곁에 두고 있다. 틈틈이 과일 등 간식을 놓고 주말이면 PC를 켜서 정민씨가 좋아하는 게임 콘텐트를 틀어준다. 주기적으로 침구도 세탁한다. 외부 일정이 있어 부모가 밖에서 식사하게 되면 정민씨를 위해 1인분을 더 주문한다고 한다.

내년 2월 10일에 선고 예정

손씨는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경찰이 조사한 낚시꾼을 찾아내 "당시 물속에 들어간 사람이 나이 드신 분, 중년 남성으로 보였다"는 증언을 듣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대기업 간부인 손씨가 직접 사건 조사에 나선 이유를 수사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풀이했다. 이 교수는 "공적 신뢰 훼손에 따른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를 공개한 배드파더스와 성범죄자 신상 유포에 나선 ‘디지털 교도소’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친구 A씨측, 유튜버 등 700명 고소

검찰 수사와 별개로 정민씨 사건을 둘러싼 소송전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손씨는 정민씨와 부모를 모욕한 유튜버 등을 고소한 상태다. 이들이 올린 비하 글은 지금도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  A씨 측도 강도 높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금까지 약 700명을 모욕 등 혐의로 고소했다.

정민씨가 아버지의 법적 대응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손씨는 "우선 정민이는 자기가 그렇게 된 것에 대해 너무너무 미안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자기가 엄마 아빠의 전부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정민이는 ‘나는 괜찮으니 아빠 고생 그만하시라’고 할 텐데, 정민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중단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 손정민씨를 추모하는 게시물이 곳곳에 걸렸다. 정민씨가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잠원한강공원이 인근에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17일 오후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 손정민씨를 추모하는 게시물이 곳곳에 걸렸다. 정민씨가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잠원한강공원이 인근에 있다. 강주안 기자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요즘엔 가정마다 자녀가 한두 명뿐이니 뜻하지 않은 일로 자식을 잃으면 부모는 모든 의문이 풀리기 전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수사 기관도 시대 변화에 맞는 방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지낸 김규헌 큐렉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변사자의 부모는 의심이 조금이라도 남게 되면 수사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김훈 중위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김훈 중위는 1998년 공동경비구역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고 수사 당국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유족이 수사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당국의 입장은 완강했다. 김 중위의 가족은 법의학자 등의 도움을 받으며 파고든 끝에 19년 만인 2017년 순직을 인정받았다. 김 변호사는 "가족이 경찰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면 마지막으로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검사뿐"이라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검찰의 책무"라고 말했다.

CCTV 제공 관련 재판을 맡은 행정법원 재판장은 지난 23일 양쪽 주장을 듣는 절차는 모두 마치고 내년 2월 10일을 선고일로 잡았다. 결국 해를 넘긴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나서는 손씨는 “또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증거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