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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부른 뜻밖의 부작용…불평등의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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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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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직장인의 근무형태를 확 바꿨다. 이른바 원격근무, 재택근무가 보편화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3월 100대 기업 69곳을 조사한 결과 91.3%가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잠깐이지만 ‘위드 코로나’라며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도할 때도 재택근무는 줄지 않았다. 위계질서에 기반한 상명하복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까지 작용하면서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MZ세대에겐 새로운 근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어디에 있든 성과만 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런 현상만 보면 재택근무는 시대와 세대 변화를 반영한 호감 가는 근무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이면의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심심찮게 나온다. 재택근무가 확산한 2년여 동안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연구의 공통된 화두는 불평등이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자칫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이런 연구가 예사롭게 안 보인다.

부와 주거 수준 따라 근무환경 좌우
사회적 네트워크 약한 여성은 불리
줌회의, 호감도로 성과평가 위험
외모도 불평등 유발, 미용상담 급증
대·중소기업 불평등·불균형 커져

미라 카르잘라이넨(Mira Kar­jalainen) 핀란드 헬싱키대학 문화학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재택근무가 직업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9월 두 차례에 걸쳐 분석한 결과다. 카르잘라이넨 교수는 “코로나19의 유행은 전례없을 정도로 재택근무를 강제했다”며 “한데 이 근무 방식은 현장근무에 비해 가정생활과 자유시간, 개인 전용 공간으로 더 쉽게 파고든다”고 꼬집었다. “인종·성별 등의 각종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서 집의 크기, 부의 정도, 용모, 성별, 기업 규모 등이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서 집의 크기, 부의 정도, 용모, 성별, 기업 규모 등이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예컨대 이런 것이다. 큰 집에 사는 사람은 재택근무 구현이 쉽다. 업무 공간과 개인 공간을 분리한다. 하지만 작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어려움이 따른다. 카르잘라이넨 교수는 “부와 주거의 수준에 따라 재택근무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직무를 수행하는 데서도 부작용이 나타난다. 전문직은 비교적 자기 관리에 익숙하다. 하지만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근무시간 구조가 깨져 업무와 자유시간을 분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카르잘라이넨 교수의 분석이다. 특히 여성은 (육아 등으로)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작업을 줄이거나 소홀히 한 데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카르잘라이넨 교수는 “불평등 심화는 인권의 문제”라며 “신체 관련 제약, 성별, 피부색, 가정환경이 출세를 가로막으면 최고의 인재가 잘못된 위치에서 일하도록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불평등은 일의 결과에 반영돼 회사에도 안 좋은 성과를 가져다 준다”고도 했다.

특이한 점은 외모도 재택근무로 인한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외모가 어느새 재택근무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줌(zoom)으로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외모를 얼마나 잘 가꾸느냐에 대한 투자로 연결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전달하는 데 적응하는 단계를 넘어, 능력과 관계없이 호감도에서 불평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카르잘라이넨 교수는 지적했다. 업무와 관련된 감정 등을 전달하는 데는 아무래도 대면 접촉이 쉽고 확실하다. 하지만 화상 회의를 통해서는 감정 전달보다 호감도 전달에 치중하게 된다는 점을 간파한 연구 결과다. 호감도가 떨어지면 자신의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결국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코로나 재택근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 재택근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학술지인 『국제 여성피부과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Women’s Dermatology)』에 발표된 코로나19 유행 이후 미용시술과 관련된 최근 논문에서도 이런 분석이 나왔다. 134명의 미용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용상담이 늘었다고 한다. 한데 그 중 86.4%가 화상회의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은 “그동안 늘 포토샵으로 보던 자신의 얼굴이 화상회의에선 민낯으로 비치게 된다”며 “이 때문에 타인에게 호감을 주려는 심리가 맞물리면서 미용과 용모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팀은 최근 SSCI급 국제학술지인 『최신 공중보건학(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한국에서의 원격작업의 불균등한 사용’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조 교수팀은 “대·중소기업의 재택근무에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결국 기술 활용 역량과 지불 능력 등에서의 차이가 불평등과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원격근무가 불가능한 부문에서는 고용에서 심각한 타격(실업)을 입고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이 아닌) 2차 노동시장에 속한 근로자들은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회사나 사회는 한데 어우러진 왁자지껄함 속에서 애사심과 성장을 거듭하는 것 아닐까. 카르잘라이넨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만난 90%의 응답자는 동료와의 만남을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불평등 해소는 결국 사람을 얼마나 잘 엮어내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로 들린다. 흩어진 직원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경영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