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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위안부 및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국제법적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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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기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2건의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소송에서 올해 1월 원고들이 승소한 판결이 나왔으나 4월에는 원고들이 패소한 판결이 나왔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여러 건의 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에선 종전 대법원 판례와 달리 원고들 패소 판결이 지난 6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처음 나왔다.

이처럼 원고들 패소 판결이 나오자 ‘친일 판결’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의 경우 친일 혹은 인권이 아니라 국제법상 재판권 면제가 쟁점이다. 재판권 면제란, 외국의 권력행위는 전쟁범죄나 반인도범죄에 해당하는지와 상관없이 국내 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일반 국제법 원칙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자국의 권력행위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다른 나라의 재판권에 복종하겠다는 국가는 없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권력행위로 피해를 본 프랑스 사람들이 전후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프랑스 법원은 재판권 면제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친나치·친독일파라는 비난은 없었다.

한국도 국제법상 재판권 면제 의무를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6·25 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국 법원에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고 하자. 북한의 침략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북한의 경우 한국 헌법에선 반란단체이나, 국제법상 한국과 구별되는 독립 국가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행위가 불법이라도 한국 법원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고, 한국 국민에 대한 배상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한편 한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6·25 전쟁 개입에 관한 배상은 물론이고 사죄도 요구하지 않았다. 양국은 청구권협정도 체결하지 않았다. 물론 북한의 남침, 중국의 개입, 일본의 한반도 병합은 국제법상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재판권 면제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따라서 한국 법원은 북한과 중국의 권력행위가 문제 되는 민사소송에선 재판권을 면제해야 한다. 이는 일반 국제법에 따른 것일 뿐 친북이나 공산주의와 무관하다.

위안부 피해자 민사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 면제도 국제법에 따른 것이지 친일과 상관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 원고들은 구 일본제국이 자신들을 강제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불법이라고 주장한 행위가 권력행위이기 때문에, 한국 법원은 일본 정부에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른 국가의권력행위로 인한 자국민 피해 문제는 국가들 사이의 외교나 조약 또는 국제재판으로 해결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문제는 민사소송으로 해결될 수 없고,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가 이미 합의한 바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국제법과 헌법에도 합치된다.

징용 피해자의 경우 일본 민간기업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것이어서 재판권 면제가 인정되지 않고, 본안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문제 된다. 청구권협정의 특징은 상호 청구권 문제를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청구권협정 취지에 따르면 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문제는 일본이 제공한 3억 달러의 성격에 상관없이 그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부터 보상받지 못한 피해자만 한국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고 일본 기업엔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 이를 무시하고 1910년 병합이 불법이라며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하라고 한 종전 대법원 판례는 국제법에 합치될 수 없다.

일본 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지면 결국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올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징용 피해자 패소 판결도 4월 위안부 피해자 패소 판결처럼 국제법에 따른 것이며 친일과 무관하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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