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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공수처 무용론…박범계도 “일정 부분 실망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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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진욱 공수처장(左), 박범계 법무장관(右)

김진욱 공수처장(左), 박범계 법무장관(右)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사면초가 신세다. 잇따른 편파·부실 수사 논란에 이어 언론인·정치인·일반인을 막론한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가 사찰 의혹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론과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인사까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공수처의 수사 행태는 처벌 대상”이라는 지적과 함께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 및 공수처 해체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27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가 법원의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허가)을 받아 발·착신 통화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자는 최소 4명이다. 지난 5월 13일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와 지난 4월 1일 김 처장의 ‘이 고검장 에스코트 조사’ 의혹을 보도한 TV조선 기자 2명,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돼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다. 공수처는 통신영장을 매개로 이 기자들과 자주 통화한 이들을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대상자는 120명이 넘는 기자와 국민의힘 의원 39명, 해당 기자 4명의 어머니·동생·지인 등 일반인까지 총망라한다. 무차별적 사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민 신뢰를 잃은 공수처는 해체하고 공수처장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수사 사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야당 인사들에 대해 작심하고 불법 정치사찰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가 불리한 보도를 한 기자에 대해 통신영장까지 발부받은 건 선을 넘은 행위라는 취지다. 한 현직 검찰 간부는 “공수처가 수사 대상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벌인 것”이라며 “불법 행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소속 3선 의원이자 공수처의 산파나 마찬가지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박 장관은 26일 KBS 방송에 출연해 ‘공수처 무용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 역시 일정 부분 실망감이 있다. 검찰을 겨냥한 입건 사례가 지나치게 많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건을 다 입건해 처리하려고 욕심부리기보다는 한건 한건을 따박따박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구체적인 문제점까지 언급했다.

박 장관은 2017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은 이후 공수처 설치를 주도했고, “공수처는 민주당의 DNA”라는 말까지 남긴 인물이다. 그런 박 장관마저 쓴소리를 한 건 공수처가 언론 사찰 논란 등 불필요한 문제를 양산하며 출범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공수처가 편파 수사를 한다는 외부 비판에 동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공수처는 실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옵티머스 부실 수사’ ‘한명숙 모해위증 수사·감찰 방해’ 등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관련 사건만 대거 입건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수사 결과도 부실하다. 특히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수사는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구속영장이 세 차례나 기각당한 끝에 기소 결론을 내기는커녕 추가 조사도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내년 초께 윤 후보 불기소, 손 보호관 불구속 기소 정도로 결론이 내려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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