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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립주도 박범계도 "실망"…김기현 "김진욱 사퇴하라"[공수처 언론사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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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야당 사찰 논란의 중심에 서자 공수처 설립을 주도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마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공수처가 그간 편파, 부실 수사 논란에 이어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등 고위공직자를 비판 보도한 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무더기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의원 39명이 공수처의 통신조회를 당한 국민의힘은 "국민 신뢰를 잃은 공수처는 해체하라"며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요구했다. 검찰에선 "불법 수사는 처벌 대상"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사면초가에 처한 공수처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손준성 검사에 대한 기소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뉴스1

기자들 ‘비판 보도’ 뒷조사…의원 39명 당한 국민의힘 “김진욱 사퇴”

27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가 법원의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허가)을 받아 발·착신 통화내역을 확보한 뒤 통화 상대방의 신상을 캐려고 통신자료(이름·주소 등)를 조회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자는 현재까지 4명이다. 지난 5월 13일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의 경우 지난 8월 2일 같은 날 가정주부인 어머니와 사회1팀장을 포함한 동료 기자 전원(8명)이 공수처의 통신조회를 당했다.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 4월 1일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 2명(어머니·동생·지인 통신조회), 소위 ‘검언유착’ 의혹 관련 강요미수 혐의를 받다 1심 무죄를 선고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일반인 지인 통신조회) 역시 비슷한 정황이 드러났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 소속 국회의원 39명을 포함해 당직자 43명이 통신조회를 당한 국민의힘은 이날 김진욱 처장의 사퇴와 공수처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공수처가 야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대거 포함된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며 "이는 수사 사안과 전혀 관련 없는 야당 인사들에 대해 작심하고 불법 정치사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공수처 설립 주도 박범계 “국민 여망 충족 못 해…실망감”

여당 더불어민주당 3선 의원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박 장관은 26일 KBS 라디오에서 '공수처 무용론'을 묻는 말에 "저 역시 일정 부분 실망감이 있다"며 "검찰을 겨냥한 입건 사례가 지나치게 많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건을 다 입건해서 처리하려는 욕심보다는 한 건 한 건을 따박따박 처리하면 좋지 않을까"라며 구체적인 문제점까지 언급했다.

공수처 설립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박 장관마저 쓴소리를 한 건 언론사찰 논란 등 공수처가 불필요한 문제를 양산하며 출범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2017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은 후로 공수처 설치를 주도했고, "공수처는 민주당의 DNA"라는 말까지 남길 정도였다.

특히 박 장관이 "검찰을 겨냥한 입건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한 건 공수처가 편파 수사를 한다는 외부 비판에 동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사주' '옵티머스 부실 수사' '한명숙 모해위증 수사·감찰 방해' 등 윤석열 후보 관련 사건만 대거 입건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가운데)과 정희용 의원(왼쪽), 권오현 법률자문위원이 22일 오후 서울 대검찰청 민원실에 '야당 국회의원 통신자료 조회 관련 김진욱 공수처장, 최석규 공수처 부장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민원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가운데)과 정희용 의원(왼쪽), 권오현 법률자문위원이 22일 오후 서울 대검찰청 민원실에 '야당 국회의원 통신자료 조회 관련 김진욱 공수처장, 최석규 공수처 부장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민원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 "불법 사찰은 불법 행위"…고발 사주 의혹 1월 결론  

검찰 내부에서도 공수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출범 취지가 검찰 권력 견제이다 보니, 그간 검찰에선 공수처에 대한 반응이나 의견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공수처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기자에 대해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까지 발부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현직 검찰 간부는 "공수처가 수사 대상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벌였다. 불법 행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가 수사력을 집중한 윤석열 후보 관련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수사는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기소 결론은커녕 추가 조사도 못 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공수처는 지난 3일까지 손 검사에 대해 고발 사주 혐의로 청구한 체포·구속영장이 세 차례 연거푸 기각당한 뒤 ‘판사 사찰 문건 의혹’으로 소환 조사를 통보했지만 손 검사가 지병 악화로 입원하면서 한 차례도 추가 조사를 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선 "고발 사주는 공수처가 사활을 걸고 한 수사였기 때문에 내년 1월엔 손준성 검사는 불구속 기소, 윤 후보는 불기소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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