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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천의 얼굴', 시인 성윤석 첫 산문집 나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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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석 시인과 그의 산문집. 위성욱 기자

성윤석 시인과 그의 산문집. 위성욱 기자

기자, 공무원, 바이오벤처 기업인, 묘지관리인, 부두노동자…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성윤석 시인이 첫 산문집 『당신은 나로부터 떠난 그곳에 잘 도착했을까』(쌤앤파커스)를 내놓았다.

그는 대학 시절인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며 독특한 이력들을 쌓았다. 언뜻 보면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여러 직업들을 거친 후 잇따라 시집을 낸 것을 보면 스스로 이런 직업들로 자신을 떠나 보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고향 같은 마산(현 창원시)을 떠나 수도권에서 바이오벤처 기업인, 묘지관리인으로 지냈던 십여년간 단 한 편의 시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산으로 내려와 부두노동자로 생활하던 시기를 전후로 쏟아내듯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세상으로 보낸 편지에 대해 한꺼번에 답장을 받은 것처럼 내놓은 시집이 『공중묘지』(민음사) 『멍게』(문학과 지성사), 『밤의 화학식』(문예중앙), 『2170년 12월 23일』(문학과 지성사) 등이다.  첫 시집인『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동네』(문학과 지성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집이 이때 쏟아졌다.

그의 첫 산문집은 산문이면서도 얼음처럼 단단한 시적 사유로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액체인 물(산문)이 얼음(시)이라는 고체로 변해갔는지 그 고뇌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고 있어 시 같은 산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실험실에서 밤새 연구에 몰두했던 화학자가 아니라 시인이 되어 순도 100%의 시를 연구하는 그의 모습이 산문 곳곳에서 보인다는 반응도 있다. 그래서 ‘새우는 죽어서야 등을 굽히고/시장 사람들은 죽어서야 등을 편다’는 경구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성윤석 시인. 위성욱 기자

성윤석 시인. 위성욱 기자

그는 이번 산문집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열여덟 살에 출세보다는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싶었고, 스물다섯에 시인이 된 후 서른하나에 첫 시집을 냈다. 시집을 낸 뒤에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사업을 했다. 한동안 시도 버렸다.” 이쯤 되면 그는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싶어 인생의 바닥으로 스스로 침잠하기 위해 ‘나로부터 당신을 떠나 보낸 것이 아닐까’하는 강한 확신마저 든다.

가장 열망하던 시마저 버려버린 그 시기 낸 시집 『멍게』에 수록된 ‘손바닥을 내보였으나’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바닥은 딛고 일어서는 곳만이 아니질 않나(중략) 어느 여름밤에 담 넘어 집에 가는 그녀의 희디흰 운동화를 받쳐주기도 하였다네.” 그는 자신의 바닥을 딛고 이제 어떤 세상을 떠받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는 산문집에서 그가 떠받들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 사람보다 더 좋은 문장은 이 세상에 없다.”

이번 산문집은 성윤석 시인의 대학 후배이자 여행작가로 유명한 최갑수 시인이 찍은 사진이 함께 수록돼 있다. 최 시인도 사람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두 사람 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목적지는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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