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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라이더 보험료 100만원 내준단 배민…우버 모델 따라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의 배달 자회사 우아한청년들과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플랫폼지부(배민노조)가 지난 24일 단체협약 합의안을 내놨다. 이륜차(오토바이) 기사들이 가입하는 유상운송보험의 보험료를 배민이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부담하겠다는 것이 골자. 모호했던 플랫폼 기업의 법적 지위가 '사용자'에 한발짝 다가선 것일까.

무슨 일이야

우아한청년들은 배민의 전업 라이더(배민라이더스, 4500명)와 일반인 부업 라이더(배민커넥터, 2만명)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 이 회사와 전업 라이더로 계약을 맺으려면 유상운송보험(부업 계약시 시간제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회사는 안전을 위해 요구하지만, 라이더가 부담할 비용은 적지 않다. 20~30대 젊은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 가입시 연간 보험료는 150만~250만원. 이 때문에 보험은 배민 라이더 취업에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최대 100만원을 배민이 지원하겠다는 게 협상 결과다. 라이더와도 상생하고 치열해진 라이더 확보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겠다는 배민의 '전략적 선의'다.

합의안 핵심은?

① 하루 20건, 연간 200일 이상 배달하는 라이더에게 연간 최대 100만원의 보험료 2년간 지원한다. 여러 배달 플랫폼에서 주문을 받아 처리할 수 있지만, 사실상 배민 '전속 ' 라이더라 할만큼 배민 주문을 많이 처리하는 이에게 주는 혜택이다.
② 배달료 산정 기준을 직선거리 → 내비게이션 실거리로 바꾼다. 기존 1.5km 초과시 500m당 500원 추가되던 것이 1.9km 초과시 100m당 80원으로 바뀐다.
③ 배달 노동자를 위한 공제조합도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 배민노조는 이번주 안에 합의안을 조합원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배민노조 관계자는 "합의안에 대해 내부 의견이 분분한 만큼 투표해봐야 통과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가결 시엔 즉시 시행된다.
● 이번 협상으로 기본배달료가 인상되는 것은 아니다. 라이더들은 7년째 3000원인 기본배달료를 400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23일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배민 관계자는 "현재 협상안으로도 라이더들의 기존 경제적 부담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식당이나 소비자가 추가할 부담은 없다"고 설명했다.
● 합의안이 통과돼도 전체 라이더의 몇 %나 혜택을 받을진 지켜봐야 한다. 국내 라이더 45만명 중 배민라이더스(4500명)의 비율은 1% 남짓. 이 가운데 '하루 20건, 연 200일 이상' 등의 조건 부합자를 찾다보면 지원 대상자는 더 줄어든다.

이게 왜 중요해

배달노동자 산재 사고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배달노동자 산재 사고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긱워커(gig worker) 협상력 쑥쑥: 이번 배민-배민노조 간 단협 타결은 지난해 10월 이후 두번째.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법·제도 개선 전에 플랫폼과 노무제공자(라이더), 즉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꾸준히 나오는 점은 '긱워커(임시 노동자) 노동권'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노사협약이 정례화되면 '비고용(계약)' 관계 노동자들도 협상력이 강화될 수 있다. 특히, 최근 라스트마일 배달 경쟁이 치열해지며, 라이더 구인난을 겪는 플랫폼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다만 배민 측은 "라이더는 고용이 아닌 계약관계"라며 "노사협약이 사용자성의 인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과속 배달, 스톱: 안전한 배달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과속배달 사고가 급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배달 노동자 산재는 2016년(396건) 대비 2020년(2255건) 5.7배 늘었다. 배민·쿠팡이츠 등 6개사 배달 노동자 5626명 대상 고용부 설문조사에서 86%는 '배달 재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비판은 플랫폼 기업에 향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라이더에게 1회성으로 웃돈(프로모션 지원금)을 주며 라이더 확보 경쟁을 하면서도, 과속 배달은 방치한다는 비판이다.

경쟁사 쿠팡이츠는?

쿠팡이츠의 배달 파트너들. 사진 쿠팡이츠

쿠팡이츠의 배달 파트너들. 사진 쿠팡이츠

내년 1월까지 유상운송보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러 의원들로부터 '라이더 개인에게 사고의 책임을 전가한다'고 지적받은 영향이다.

그러나 배민·요기요와 달리, 쿠팡이츠는 라이더에게 유상운송보험 의무가입을 요구하지 않는다. 업계에선 보험료 내기가 부담스러운 라이더 수요를 쿠팡이 흡수하는 비결로 본다. 쿠팡 관계자는 "라이더들이 탄력적인 근무환경을 선호하는 경우 보험 가입을 강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배달료의 경우, 쿠팡이츠 출시 때부터 직선거리 아닌 네비게이션 실거리를 기준으로 책정해왔다"고 덧붙였다.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료 수준은 배민에 밀리지 않는다는 주장.

긱워커 시장엔 어떤 영향?

여러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긱워커의 고용 안전망이나 근로환경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플랫폼노동포럼 위원장)는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일하는 새로운 취업 형태가 나타남에 따라 '사용자'의 개념도 전속성(기업 한곳에 소속돼 일하는지) 등 낡은 기준이 아닌 '노동자가 플랫폼에 돈을 벌어다주는지' 등을 기준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지난해부터 진행된 정부의 전국민 고용안전망 구축 정책도 이와 같은 기조"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 중심으로 소득활동을 하는 긱워커들은 점차 제도권에 편입되는 추세다.
● 영국 대법원은 2월 만장일치로 우버 기사가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worker)라고 판결했다. 다만, 영국의 노동자는 근로자(employee)와 자영업자 중간에 있는 특수한 지위다. 세금은 자영업자 기준으로, 최저임금·유급휴가 등은 근로자 기준으로 적용받는다.
● 지난 9일엔 EU 차원의 긱워커 권익 보호 계획도 나왔다. 플랫폼이 ▶종사자의 급여수준을 결정하는지 ▶유니폼 등 외모·품행 기준을 설정하는지 ▶업무실적을 감독하는지 ▶업무시간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지 ▶제3자를 위해 일할 가능성을 제한하는지 등 5가지 기준에서 2가지 이상 만족하면 플랫폼을 '법적 고용인'으로 본다는 내용.
● 미국의 경우, 배달·운전 기사의 지위는 자영업자로 두되, 최저임금과 보험혜택 등을 제공하는 '캘리포니아 우버식 모델'로 절충안을 찾았다. 배민이 택한 '보험료 지원'이 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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