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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육아 아빠→웹툰 작가…혈액암 이긴뒤 이젠 발레리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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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육아아빠 웹툰으로 유명한 이대양 작가가 22일 경기도 안산의 한 발레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 턴아웃이 취미 발레인 중에선 수준급이다. 우상조 기자

육아아빠 웹툰으로 유명한 이대양 작가가 22일 경기도 안산의 한 발레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 턴아웃이 취미 발레인 중에선 수준급이다. 우상조 기자

“제 작품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한 이는 웹툰 작가 이대양(37)씨. 서울대 박사과정을 중단하면서 3년 간 육아에 전념했던 경험을 녹여낸 웹툰 ‘닥터앤닥터의 육아일기’ 작가다. 화제몰이의 여러 포인트 중 하나는 그의 성별. 전업 육아 ‘아빠’였다는 점이다. 출산과 육아의 힘듦을 다룬 콘텐트 중에서도 ‘아빠’의 시각은 부재에 가까운 현실에서 그의 작품은 깊이와 재미, 감동을 선사하며 화제가 됐다.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할 정도. 2년 3개월 동안 연재를 지난달 완결하고 단행본도 최근 출간한 그를 지난 22일 만났다.

그는 “(아빠가 육아를 하며 겪는 내용을 다루는) 제 작품이 더이상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제 웹툰을 읽으면서 ‘어머 세상에 옛날엔 아빠가 육아휴직하는 게 특이한 일이었나봐’라고 생각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도 일종의 ‘퀘스트’”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게임에서 퀘스트(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것처럼 육아를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며 “육아는 아이와 나 사이의 평화협정을 잘 지켜가는 건데, 남자들이 안 하니까 못 하고, 못 하니까 하기 싫어져서 더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돈 버는 것을 나의 의무이자 가치와 동일시하는 건 ‘숫사자 같은 삶’이죠. 회사에선 힘든 거 다 감내하고 집에 와선 가장으로서 대우를 받고 싶은 건데, 그런 삶은 만약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의미를 잃잖아요. 인생은 깁니다. 다양한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요.”  

'닥터베르' 주인공들. [이대양 작가 제공]

'닥터베르' 주인공들. [이대양 작가 제공]

닥터베르가 중앙일보 독자분들을 위해 특별히 보내온 그림.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난다. 독자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닥터베르가 중앙일보 독자분들을 위해 특별히 보내온 그림.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난다. 독자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대양 작가 본인이 그런 다양한 가치 탐색의 좋은 본보기다. 그에게 붙는 타이틀은 여러가지로, 21세기형 르네상스맨이라 해도 무방하다. 서울대에서 에너지공학 전공으로 학사부터 석사, 박사까지 취득했고, 웹툰 및 청소년 대상 라이트 노벨 작가이기도 하면서 ‘취미리노,’ 즉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남성이기도 하다. 22일 인터뷰 직전까지도 그는 자택 근처인 경기도 안산의 발레학원에서 개인레슨을 받으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했다. 발레를 배운 건 약 1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도 를르베 업 동작을 하며 팔을 위로 들어올리는 앙오를 하는 자세가 안정적이다. 동영상을 보면 정지화면이라고 느껴질 정도.

그가 발레를 시작한 건 순전히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장만한 트램펄린에서 공중회전을 하다가 목뼈 골절의 부상을 입었던 건 시작에 불과했다. 2019년엔 자도 자도 피곤해서 병원에 갔더니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웹툰 연재가 확정된 날이기도 했다. 그에겐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찾아온 때였다. 다행히 완치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그만큼 그는 건강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됐다. 그러다 집 앞에 발레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시험삼아 가봤는데, 그의 취향에도 맞았고 속의 근육을 단련하며 몸을 탄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효과 만점이기도 했다.

턴을 준비 중인 이대양 작가. 한겨울이지만 땀을 뻘뻘 흘렸다. 우상조 기자

턴을 준비 중인 이대양 작가. 한겨울이지만 땀을 뻘뻘 흘렸다. 우상조 기자

부인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웹툰에 ‘닥터 안다’로 등장하는 그의 부인은 산부인과 의사로, 이대양 작가가 과거 웹소설을 썼던 시절 팬클럽의 운영자였다고 한다. 그는 “아내는 ‘발레까지 하다니, 이 남자와 같이 살면 정말 심심할 틈이 없구나’ 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사실 이 작가의 다양한 도전은 부인 덕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웹툰을 한다고 했을 때도 전적으로 서포트를 해준 아내, 그리고 이해해주신 어머니 덕에 내 삶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발레 덕에 목표도 생겼다. 발레리노의 파워풀한 동작 중 하나인 더블 카브리올(cabriole)을 해내는 것. 공중으로 날아올라 양 다리를 붙였다 떼는, 고난이도 동작이다. 코어 및 다리 근육의 힘과 체공 시간을 담보하는 근지구력이 필수인 테크닉이다. 다리를 옆으로 180도로 찢는 일명 ‘사이드 스플릿’도 새해 목표다. 그는 “남자가 발레한다고 하면 창피하다는 건 오해”라며 “발레야말로 균형과 근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레야말로 진짜 남자의 운동이라는 게 그의 철학인 셈이다.

연재를 마쳤지만 그는 벌써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이번엔 청소년 대상 라이트 노벨로, 그의 전공인 과학과 취미인 발레를 접목했다고 한다. 과학을 좋아하는 소년과 발레를 사랑하는 소녀를 통해 엮어가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런 답을 내놨다.

“발레도 육아도 인생도, 모두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내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흔들리지 않죠. 계속 돌아야 하고 뛰기도 하지만 결국 중심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며 계속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작업 중인 이대양 웹툰 작가. 뒤에 육아 용품이 가득하다. [이대양 작가 제공]

작업 중인 이대양 웹툰 작가. 뒤에 육아 용품이 가득하다. [이대양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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