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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성윤 보도' 본지 기자···공수처는 주부인 모친도 뒤졌다 [공수처 언론사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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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월 1일 이성윤 서울고검장. 연합뉴스

12월 1일 이성윤 서울고검장.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이성윤(59)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의 어머니의 통신자료(신상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위공직자가 아닌 기자의 휴대전화 착·발신 통화내역을 들여다본 뒤 자주 통화한 어머니의 신상까지 확보한 정황이다.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조회한 대상만 현재까지 173명, 조회 건수로는 287건에 이른다.

주부 어머니에 동료 기자 집단 조회…이성윤 공소장 보도 취재원 뒷조사

2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사회1팀 A기자 어머니를 상대로 지난 8월 2일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이 담긴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기자는 5월 13일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당사자이고 그 어머니는 공수처는 물론 취재 업무와도 무관한 가정주부다. 같은 날 A기자와 통화가 잦은 사회1팀장을 포함한 동료 기자 전원이 공수처의 같거나 비슷한 일련번호 공문에 의해 통신조회를 당했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A기자를 두고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받는 검사와 공범 관계로 보고 발·착신 통화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을 확보해 표적 수사했다는 의혹이 짙어졌다.

통신비밀보호법상 통화내역을 포함한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가입자 신상정보(통신자료) 조회와 달리 관할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그래픽 참조)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지난 5월 말부터 수사 중인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을 빌미로 기자와 주변인들을 사찰한 게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수사기관이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마구잡이로 들여다볼 경우 속성상 공익신고자인 취재원 보호는 심각하게 침해되고 국민의 알 권리와 권력 비판 보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수처는 이미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들(어머니·동생·지인 통신자료 조회), 소위 ‘검언유착’ 의혹 관련 강요미수 혐의를 받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일반인 지인 통신자료 조회)를 상대로도 통화내역을 들여다 본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조국 “이규원 유학가게 해달라” 보도 뒤 7개월간 대검 감찰, 공수처 수사 

A기자는 수원지검 수사팀이 이 고검장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 무마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다음날인 5월 13일 이 고검장 공소장 가운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내용을 취재해 보도했다. 조국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규원 검사가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불법 출금 혐의 수사를 하지 말아 달라”라고 법무부를 통해 수사팀에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튿날 대검 감찰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공수처는 5월 말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구실로 ‘공제-4호’로 입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공수처가 8월 전후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한 취재원을 캐기 위해 법원의 영장을 받아 A기자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한 뒤 법조를 취재하는 사회1팀 기자를 포함해 자주 통화한 상대방을 사찰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자는 별도로 공수처 수사 착수 직후인 5월 말부터 10월까지 다섯 차례 공수처의 통신자료(신상정보) 조회를 당하기도 했다.

공수처가 본연의 고위공직자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적법 절차를 밟아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하고 상대방을 확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라고 출범시킨 기관인 공수처가 정반대로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고검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란 현 정부 고위공직자와 관련해 비판 보도를 한 기자의 취재원을 캐려고 강제 수사를 벌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그 자체로도 헌법상 언론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위법한 수사로 직권남용 등 불법 소지가 클 뿐더러 이 과정에서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는 물론 가정주부 어머니의 신원정보까지 무차별 조회한 건 초법적 사찰”이라고 비판했다.

또 공소장 자체가 공무상비밀인지도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공소장을 취재해 보도한 기자를 처벌하는 법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형법 127조 공무상비밀누설은 신분범인 해당 공무원을 처벌할 뿐 누설받은 상대방은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렵다”며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범죄에서 공범관계 등이 아닌 한 기자를 피의자로 수사할 수 없다”라고만 해명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23일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23일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눈엣가시 이성윤 수사팀과 비판 보도한 언론에 보복·표적 수사하나

게다가 공수처는 지난 11월 이성윤 고검장 수사팀 전·현직 검사 7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서 피의자를 ‘성명불상 검찰 관계자’로 적었을 뿐 특정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기자가 법적으로 공범이 될 수 없는 사건에서 ▶피의자도 특정 안 된 상황인데도 ▶범죄에 연루됐다는 어떤 구체적인 단서와 정황 없이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고검장 수사팀의 압수수색 영장에서 “공소장 편집본의 사진 파일을 건네 받았다”고 단정해 본지 기자의 실명을 적었다.

공수처는 지난 11월 26일과 29일 실시한 수사팀 전·현직 검사 7명의 검찰 내부망 접속 기록, 메신저 내용와 e메일을 압수수색한 결과 중앙일보 보도와 연관성은 고사하고 공소장 편집본 유출 의혹의 출발점인 수사팀의 형사사법시스팀(킥스) 접속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최초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기자를 표적 수사하고 가정주부인 어머니의 신상까지 턴 셈이 됐다.

대검찰청 감찰부 역시 지난 15일 7개월간 진상조사 결과 공소장 유출 의심자 22명 가운데 본지 보도와 연관성이 의심된 이 고검장 수사팀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공식 답변한 바 있다. 공수처는 이런 기본 자료를 확보하지도 않은 채 이 고검장 수사팀, 본지 기자 등 애먼 사람만 표적 수사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출 의심자 중엔 이 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당시 최측근 참모였던 B검사장이 포함됐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공소장 유출이 사실일지라도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공무상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할 목적이 아니라, 비밀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차 공판 때 공개가 예정된 공소장을 일찍 알렸다고 해서 국가 기능을 위협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볼 순 없다는 뜻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공수처의 수사를 허용한다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공수처의 강제 수사를 받을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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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자료 조회 기자만 121명…야당 등 합하면 173명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 대상자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현재까지 기자만 121명, 조회 건수는 228건이다. 김기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보좌진 30명(30건),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집행부 10명(10건)등을 합하면 173명(287건)이나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공수처는 올해 상반기에만 전화번호 135개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하반기 수치도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공수처는 1년간 270개 번호 소유자의 신상정보를 캔 셈이다.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 “유감이지만 법적 문제없어…구체적 경위는 공개 불가”

논란이 확산하자 공수처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 등을 빚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공수처는 하지만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하여 적법하게 진행했다”며 “수사 중인 개별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려운 점을 혜량해 달라”며 무차별 통신조회 근거를 해명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했다”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했다”고 밝힌 점에선 법원·검찰·경찰 등에 책임을 떠넘긴 행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1년 12월 24일 공수처 입장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올해 출범한 이후 모든 수사 활동을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하여 적법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관련자 조사, 증거 자료 확보 등 수사 활동에 있어 최대한 인권 침해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최근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자료(가입자정보) 조회’ 논란 등을 빚게 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비록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 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외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적으로 공수처의 기존 통신 관련 수사 활동의 문제점을 점검토록 하여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수사 활동에 있어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면밀히 파악하고 수사 업무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공수처가 맡은 사건과 수사의 특성상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가입자정보) 확인이 불가피했던 점, 수사기관으로서 수사 중인 개별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려운 점을 혜량해 주시고,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등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공수처의 역할과 책무를 감안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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