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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차별 철폐의 주역, 투투 대주교 선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6일 선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2001년 결핵퇴치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투투 대주교는 건강 문제가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6일 선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2001년 결핵퇴치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투투 대주교는 건강 문제가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분리 정책) 해체 투쟁과 인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데스몬드 음필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26일 선종했다. 90세.

BBC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26일 투투 대주교의 선종을 발표하고 “이는 해방을 이루고 물려준 세대와의 이별”이라며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의 폐해에 대한 보편적 분노를 분명히 했으며, 공동체·화해·용서의 의미와 깊이를 몸소 보여줬다”고 애도했다. 사인은 즉각 발표되지 않았으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투 대주교가 97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지난 몇 년간 입·퇴원을 반복했다고 보도했다.

투투 대주교가 1998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와 맞서 싸우며 남아공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에 기여했다. [AFP=연합뉴스]

투투 대주교가 1998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와 맞서 싸우며 남아공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에 기여했다. [AFP=연합뉴스]

31년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투투 대주교는 교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렸으며, 29세 때인 60년 성공회 사제(결혼이 허용됨) 서품을 받았다. 62~66년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남아공과 보츠와나·레소토·스와질란드 대학에서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75년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주임 사제를 거쳐 레소토 주교를 맡았다. 78~85년 남아프리카 교회 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아 흑인차별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평화를 설교하며 민주화와 해방 투쟁을 이끈 공로로 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86년엔 흑인으론 처음으로 남아공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인 케이프타운 대주교를 맡았다.

2009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투투 대주교. [AP=연합뉴스]

2009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투투 대주교. [AP=연합뉴스]

94년 4월 흑인 민주화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쓴소리를 마다치 않아 ‘남아공의 양심’으로 자리를 지켰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위원장 시절엔 “용서 없는 미래는 없다”는 구호로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아공에 다인종·다민족이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인 사람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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