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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막아도 퍼졌다…中외교관 "게으르고 무능" 대미외교 직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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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CIIS)이 주최한 ‘2021년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추이톈카이 전 주미 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원 홈페이지]

지난 20일 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CIIS)이 주최한 ‘2021년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추이톈카이 전 주미 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원 홈페이지]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세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고 올해 은퇴한 중국의 외교관이 최근 대미 외교를 “부주의하고 게으르며 무능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중화 최고’가 넘쳐나는 중국에서 자기 반성은 이례적이다.

추이톈카이 “‘인터넷 스타’ 생각 말고 나라 생각하라” 작심발언

작심 발언은 지난주 20일 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CIIS)이 주최한 ‘2021년 국제 정세와 중국 외교’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나왔다. 이번 발언이 주일·주미 대사와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을 역임한 추이톈카이(崔天凱·69)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강경 일변도의 대미 외교에 대한 내부 이견이 노출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추이 전 대사는 이날 “원칙상 준비 안 된 전쟁은 하지 않으며, (적을) 파악하지 못한 전쟁은 싸우지 않고, 화풀이 싸움은 하지 않고, 소모전은 하지 않는다”며 “인민의 모든 이익은 어렵게 얻은 것인데 우리 자신의 부주의·게으름·무능 때문에 손해를 입어선 절대 안 된다”고 역설했다.

마오쩌둥 “모든 것 파악 못 한 전쟁 피해야”

추이 전 대사의 해당 발언은 마오쩌둥 어록을 인용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1938년 저서 『지구전론(論持久戰)』에서 “항일전쟁 중 결전(決戰) 문제는 세 가지로 나눠야 한다”며 “모든 것을 파악한 전쟁과 전투는 단호하게 결전을 진행해야 한다.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한 전쟁과 전투는 결전을 피해야만 한다. 국가의 운명을 건(賭國家命運) 전략적인 결전은 근본적으로 피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이 역설한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 불가론”은 최근 대만 해협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추이 전 대사의 발언은 왕이(王毅·68)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겠다면 두렵지 않다. 끝까지 가겠다”며 강성 기조연설에 이어 나왔다는 점에서도 미묘했다. 세미나 당일 추이 전 대사의 발언은 ‘보도금지’로 묶이면서 곧바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음성 파일 형태로 음성적으로 베이징 외교가에 퍼졌다. 그러던 중 세미나 나흘 뒤인 24일 돌연 CIIS가 홈페이지에 녹취에 근거했다며 추이 대사의 발언 전문을 공개했고 중국과 홍콩 매체가 일제히 대서특필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CIIS가 추이 대사 발언을 전격 공개한 데는 중국 당국의 판단이 작용했을 만큼 중국의 속내가 관심사가 됐다.

홍콩 명보 “새로운 도광양회 대미 외교 필요”

홍콩 명보는 “미·중 관계에 환상을 품지 말고, 화풀이나 소모전은 하지 말라”는 사설을 싣고 새로운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을 감추고 실력을 갖추다)’ 대미 외교를 촉구했다. 중국 경제 주간지 차이신(財新)도 이날 “복잡한 정세에 직면해 시종 가슴에 ‘나라의 큰 사람(國之大者)’을 품어야지 ‘인터넷 스타(網之紅者)’가 될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는 추이 대사의 쓴소리를 제목으로 뽑아 격한 공세를 앞세우는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추이 대사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경고했다. 절대 미국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직면한 현재 역사 단계는 아직도 상당히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은 사회제도, 의식형태, 문화전통 내지 인종 모두가 다른 강대국(중국)의 굴기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는 인종주의 요인이 있다”며 “미국은 온갖 방법과 전력을 다해 심지어 바텀 라인도 없이 중국을 압박하고 저지하고 갈라치고 포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중국은 멀쩡한 정신과 충분한 준비를 갖춰 향후 미·중 관계의 곡절과 어지러움, 심지어 롤러코스터와 같은 상황에 잘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향후 중국을 향해 미국이 전방위로 압박할테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다.

키신저 AI 저서 언급 “멀리 보아야 일찍 준비”

추이 대사는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도 제시했다. 그는 “키신저 박사가 최근 『인공지능 시대와 인류의 미래(The Age of AI: And Our Human Future)』를 에릭 슈미츠 구글 전 CEO, 다니엘 휴덴로처 MIT 학장과 함께 출판했다”며 “키신저 박사는 나에게 기술자는 인공지능의 응용(application)에 관심을 갖지만, 자신의 관심은 영향(implication)이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새로운 사물을 대하는 그들(미국)의 고도의 민감성을 반영한다”며 “새로운 사물이 나오면 저들은 깊은 차원의 예측성 연구에 착수해, 과학기술을 정치·사회·인문, 심지어 국제관계와 결합해 연구한다”고 지적했다. 또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 일찍 알아채고 더 잘 준비하며 전략적 주도권 갖는다"면서 중국 정부에 전략적 마인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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