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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놀이터 보고 놀랐다…'공부의 신'이 영어 올인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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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봉사 동아리로 시작해 15년 이상을 '격차 없는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보내고 있는 강성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육 봉사 동아리로 시작해 15년 이상을 '격차 없는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보내고 있는 강성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포는 인포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공신닷컴’의 대표 강성태(38)가 물었다. 수포(수학포기)는 대포(대학포기)지만, 영포(영어포기)는 인생(인생포기)라는 말이다.

강성태는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의 대명사와 같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재학 시절에 소외계층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들었고, 2006년엔 소셜 벤처 ‘공신닷컴’을 설립했다. 공부하는 습관, 시험을 잘 보는 비법, 우등생이 되는 길을 알려줬다. 2007년에 유튜브를 시작해 구독자 수 100만명을 넘겼다. 다큐멘터리, 예능, 광고, 드라마까지 공부와 관련된 각종 콘텐트에 출연 또는 자문을 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그와 제휴해 딴짓 못 하는 기계, ‘공신폰’을 내놨다. “그거 알아요?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해요. 안 한다고요”라는 독설이 강성태의 트레이드 마크다.

지금 ‘공신닷컴’에 들어가 보면 대부분이 영어다. 문법ㆍ단어ㆍ회화까지 영어에 집중하고 있다. 강성태는 책을 여러 권 썼지만 2017년 이후엔 대부분 영어책이다. 『영단어 어원편』(2017년), 『영문법 필수편』(2018년), 『영어독해 속독편』(2019년) 등에 이어 이달 22일엔 『66일 영어회화』를 내놨다. 공부의 신, ‘공신’이 영어에 달려들었다. 왜일까. 21일 인터뷰에서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신분이다. 어떤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어려서 외국서 살다 오거나 조기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내내 시간이 남는다. 그러니 국어ㆍ수학도 잘하고 대학도 더 잘 간다. 인턴 기회도 많고 취업도 잘한다. 결혼도, 승진도 잘한다.”그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많은 격차 중 영어 격차가 가장 깊고 넓다고 본다. 다른 과목에 비해 과연 그럴까. “하위권 학생들도 국어는 읽을 수라도 있다. 수학은 차근차근하면 뒤늦게 트여 더 잘하기도 한다. 영어는 그게 안 된다. 환경 때문에 영어를 어려서 익히지 못해 평생 발목 잡히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반면 서울 대치동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공용어가 영어다.”

이과생이자 공대생, 공부법 전도사였던 그가 영어에 ‘올인’하게 된 배경이다. “격차를 끊고 싶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빈부와 지역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모든 학생에게 멘토를 한명씩 만들어주는 것. 그런데 빈부와 지역에 따른 격차가 영어에서 가장 크다.”

강성태는 소외계층 아이들, 환경의 제약이 큰 학생들을 중심으로 공부법 멘토링을 해왔다. 15년 넘게 활동하며 지켜본 한계 또한 그의 시선을 영어로 돌렸다. “소외계층을 열심히 가르쳐 합격시키면 다른 쪽에선 또 누군가가 떨어진다. 그 떨어진 학생도 소외계층일 가능성이 높았다.”이 한없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야 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한국에서만 경쟁하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생들이 영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게 해줘야 했다.” 강성태의 영어 강의는 대학입학 이후까지 내다보며 ‘인포’를 막아내고자 한다.

그의 영어책은 독특하다. 이번에 나온 책에선 ‘I'm(나는)’ 'It's(~이다)'는 표현에서 시작해 문장까지 뻗어 나간다. 영어 과열이 심각한 세상에, 심하게 쉬운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성태의 생각은 확고하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영어 단어 고작 1480개와 패턴 몇 개만 사용했다. 그걸로 수십조 원짜리 딜을 성사시켰다. 얼마나 많은 표현을 공부하느냐보다 얼마나 중요한 표현을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강성태는 “2021학년도까지 모든 수능 영어 듣기평가 지문을 분석해 가장 많이 나온 단어 묶음 60개를 뽑았다”고 했다. 이 패턴이 들어간 표현들을 매일 연습하며 66일(6일은 복습)을 보내고 나면 저절로 외우게 되고, 쓸 수 있게 된다고 봤다. 강성태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같은 공대에 다니던 친동생과 함께 데이터를 돌려봤다. 결과가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몇 가지 패턴에 말도 안 되게 몰려 영어 듣기 ‘족집게’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고액 과외, 유명인 자녀의 입시 컨설팅 등 그는 숱한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거절이 원칙이다. “돈이나 명예보다 ‘너무 힘들었는데 도움이 됐다’는 댓글 하나가 더 큰 행복이다”라고 했다. 강성태는 경북 문경 태생으로 초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 나온 어른이 집안에 하나도 없었고, 공부에 관해 물어볼 형ㆍ누나도 물론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하위권 성적에 머물다 독한 노력 끝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최근에는 “공부 못하고 몸도 약해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고백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모든 활동의 뿌리는 그 시절에 있다. “나같이 찌질한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 시작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어릴 때 공부도 못하고 화장실에 끌려가 얻어터질 때 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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