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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안전이 그대의 안전”…폭행 방지 뮤비 만든 소방대원들

중앙일보

입력

경기 시흥소방서가 만든 구급대원 폭행 방지 뮤직비디오 '원 앤 원 나인'. 유튜브 화면 캡처

경기 시흥소방서가 만든 구급대원 폭행 방지 뮤직비디오 '원 앤 원 나인'. 유튜브 화면 캡처

“환자분, 정신 좀 차려보세요!”
구급대원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체온을 재고, 머리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일으켜 세우자 다짜고짜 화를 낸다. 구급차 안에선 급기야 주먹을 휘둘렀다.

실제가 아닌 경기 시흥소방서가 만든 구급대원 폭행 방지 뮤직비디오 ‘ONE & ONE NINE(원 앤 원 나인·119)’ 속 한 장면이다. 이 취객은 “왜 붙잡느냐”며 주먹질을 한다.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현장 구급대원들에겐 흔한 일이라고 한다. 한 구급대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로 취객이 주먹을 휘두른다”고 말했다.

구급대원 폭행 사고, 연간 200여 건 

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11월까지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 사고는 197건이다. 전국적으로는 2018년 215건, 2019년 203건, 2020년 196건 등 지난 3년간 614건의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매년 평균 200건의 구급대원 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88%(540건)가 취객이 일으킨 사건이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하는 한선 서장과 시흥소방서 직원들. 시흥소방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하는 한선 서장과 시흥소방서 직원들. 시흥소방서

특히 시흥시는 공장들이 몰려있고, 노후한 동네가 많아 취객과 관련된 출동이 잦다고 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기간에도 취객에 의한 폭행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뮤직비디오에서 취객으로 열연한 양희창(38) 소방교가 피해자였다.

뮤직비디오 촬영이 막 끝난 지난 10월 18일 새벽 “친구가 다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20대 여성 취객이 난동을 피워 구급차가 갓길에 멈춰섰다. 구급대원들이 진정시켰지만, 취객은 양 소방교의 오른쪽 팔을 세게 물고 말리는 여성 구급대원을 때렸다. 폭행은 경찰이 출동해서야 끝났다. 양 소방교는“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내가 했던 행동이 눈앞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길우(41) 소방장은 “그래도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돼 취객 관련 출동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사회복무 요원 노래 선물 계기로 뮤직비디오 만들어 

처음부터 영상물을 만들려던 것은 아니었다. 시흥소방서에서 사회복무 요원으로 일한 김진혁씨가 전역 후 지인인 신지혜씨와 함께 구급대원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

“폭행은 NO NO. 폭언도 절대 NO NO. 우리의 안전이 그대의 안전이죠.” 이런 가사에 ‘119’에서 착안한 ‘원 앤 원 나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김씨는 “소방서에서 2년간 복무하면서 폭행당한 구급대원들의 사연을 많이 접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노래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선물에 소방서 직원들이 화답했다. 시흥소방서 한선 서장은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 우리 서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폭행을 당했는데 이후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직장과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원 앤 원 나인’ 노래를 통해 ‘구급대원을 폭행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소방서가 만든 구급대원 폭행 방지 뮤직비디오 첫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경기 시흥소방서가 만든 구급대원 폭행 방지 뮤직비디오 첫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이 뮤직비디오는 지난 6일 시흥소방서 유튜브에 공개된 이후 3000건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 서장은 “오랜 기간 기획하고 촬영·편집해서 만든 콘텐트라 애착이 많이 간다”며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나오는 ‘당신에게 지금 손을 뻗은 구급대원,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글처럼 국민들도 구급대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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