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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앞 눈에 누군가 다쳤다면?…"5700만원 줘라" 이런 판결

중앙일보

입력

낙상사고 많은 겨울, '제설 사각지대' 우려 

눈이 내린지 하루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사장 앞 인도. 차도는 깨끗이 제설됐지만 보행로엔 여전히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허정원 기자.

눈이 내린지 하루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사장 앞 인도. 차도는 깨끗이 제설됐지만 보행로엔 여전히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허정원 기자.

지난 18일 수도권에 2~5㎝의 눈이 쌓였지만 지난 1월 초와 같은 ‘제설대란’은 없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 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비상근무 2단계에 돌입하며 제설 작업을 폈다. 그러나 깨끗이 정리된 차도와 달리, 사람이 다니는 보도는 곳곳이 빙판길에다 눈이 고스란히 쌓인 곳이 많았다. 주말 문을 열지 않은 상점이나 공사장, 빌라촌 부근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가운데 성탄전야와 성탄절 당일에도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릴 것으로 관측된 상황이다. 강원영동의 경우 5~20㎝의 많은 눈이 예보된 데다 서울과 경기북부, 경기동부, 강원 영서에도 1~5㎝의 약한 눈이 내릴 전망이다. 여기에 서울과 수도권, 강원도, 충북과 경북 일부에는 한파경보가, 충청과 전북, 경북 일부에는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졌다.

건축물 주변 제설, 소유자·세입자 자율

19일 광화문 인근의 한 이면도로. 주말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열지 않은 탓에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허정원 기자.

19일 광화문 인근의 한 이면도로. 주말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열지 않은 탓에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허정원 기자.

이처럼 눈이 잦은 겨울철엔 낙상사고도 잦아 ‘제설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낙상사고로 인한 출동 건수는 1만9218건으로 연중 가장 많았다. 2019년엔 12월이 2만978건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1월 출동 건수는 1만7100건이었다.

눈이 올 때마다 제설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눈 치우기가 주민 자율에 맡겨진 부분도 있어서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재난 보호에 관한 책무(4조)를 지우면서 동시에 국민의 책무(5조)도 규정하고 있다. ‘자기가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건물·시설 등으로부터 각종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연재해대책법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 이 법 27조(건축물관리자의 제설책임)에는 ‘건축물의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는 관리하는 건축물 주변의 보도, 이면도로, 보행자 전용도로, 시설물의 지붕에 대한 제설·제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집 앞 도로나 지붕에 쌓인 눈은 집주인 혹은 거주자가 치워야 한다는 얘기다.

집·건물 앞 1m는 책임져야…처벌은 없어

그러나 눈을 치우지 않아도 처벌받지는 않는다. 2010년 당시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은 눈을 치우지 않으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비난 여론에 무산됐다. 당시 서울시의회에선 “100만원이라면 벌금형 치고는 중벌에 속하는데 눈을 제대로 안 치웠다고 이런 중벌을 내리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후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시민의 자율에 맡겨지게 됐다.

그럼 눈을 치워야 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는 ‘서울특별시 건축물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 4조에 나와 있다. 주거용 건축물의 경우 주 출입구와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m까지, 비주거용 건축물의 경우 건축물의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m까지 주민들이 눈을 치워야 한다. 건축물과 접한 보도나 이면도로(폭 12m 이하), 보행자전용도로, 시설물의 지붕도 포함된다.

낮에는 4시간 이내, 거주자 우선책임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에서 한 점포 상인이 점포 앞 도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에서 한 점포 상인이 점포 앞 도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시간에 관한 규정도 있다. 만약 낮에 눈이 내렸다면 눈이 그치고 4시간 이내, 야간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제설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적설량이 하루에 10㎝ 이상일 경우 눈이 그친 후부터 24시간 이내에 눈을 치우면 된다. 만약 건물 소유자가 건물에 살고 있다면 소유자가, 소유자가 건물에 살지 않을 때는 점유자(세입자)·관리자가 제설·제빙 책임자가 된다.

처벌은 없지만 의무는 있기 때문에 종종 빙판길 사고로 인한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4년 1월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주민 A씨는 아파트 출입문 부근 인도에서 미끄러져 허리에 골절상을 당했다. 이후 벌어진 소송에서 재판부는 “제설을 통해 항상 완전무결한 상태를 유지할 정도의 안전성을 요구할 수 없다”면서도 주택관리업체 측이 A씨의 치료비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 등 총 578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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