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식 해상풍력, 울산 탄소중립 이끈다”
■ “울산 주력산업은 첨단화로, 미래 산업은 수소경제로 도약”
■ “수도권 집중 부추기는 고등교육 시스템 바꾸면 지방분권 탄력”
■ “MZ세대가 살기 편한 산업·교육·환경·생태 여건 실질적 개선”
60년 전 울산은 동해안의 그저 한적한 농어촌에 불과했다. 1962년 울산시로 승격될 당시의 인구는 8만5000명 정도였다. 종업원을 3명 이상 고용하는 제조업체는 42개에 그쳤고 종업원 수도 700여 명이 고작이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농업, 어업 등 1차 산업과 자영업에 의지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울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이자 인구 120만 명을 넘보는 글로벌 도시로 성장했다. 1967년 기계공업진흥법·조선공업진흥법, 1970년 석유화학공업육성법 등이 제정되면서 울산국가산업단지는 한국 공업화의 핵으로 발돋움했다. 울산의 3대 주력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은 여명기 대한민국의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1998년 광역시로 승격한 울산시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전국 광역시·도 중 줄곧 선두를 달렸다.
이 기세가 서서히 꺾이는 듯하다. 주력산업이 침체하면서 인구가 7년째 줄어들고 있다. 2015년 117만4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울산시 인구가 매년 8000명 안팎 감소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이 줄어든 데다 교육과 주택 등 정주 여건이 취약한 탓이다. 수출액도 2011년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1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이후 하강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해에는 560억 달러로 주저앉았다.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컸다.
이런 환경에서 2018년 취임한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은 울산의 산업 청사진을 다시 그리고자 했다.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이 도시를 ‘친환경 에너지 자립도시’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 예컨대 세계 최대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수소경제’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기에서 만든 그린에너지를 장치산업(裝置産業) 위주의 주력 업종에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탄소제로 시대를 선도할 산업기반 재편이 시정(市政)의 궁극적 목표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은 미래지향적이기는 하지만 경제성·효율성 검증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상존한다. 울산 출생으로 평소 에너지 정책에 천착해온 전원책 변호사는 친환경에너지 산업의 채산성과 지속가능성에 여전히 물음표를 부여한다.
12월 8일 오후 울산시 태화강국가정원에서 만난 송 시장과 전 변호사는 울산의 미래를 좌우할 친환경 에너지 산업 등 새 성장동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아가 울산이 과거 고도성장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펼쳐야 할 생존 전략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울산이 ‘냄비 속 개구리’가 된 속사정
울산은 잘사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수출은 감소하고 인구도 줄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것일까?
송철호 울산광역시장_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막강한 제조업의 도시, ‘대한민국 산업수도’, ‘경제의 심장’, ‘부자 도시’ 등의 타이틀이 주어질 정도로 떠들썩했다. 2010년대 들어 그 성장엔진이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제가 울산시장에 취임한 2018년엔 도시의 동력이 최저점으로 떨어져 있더라. 울산시의 곳간은 텅텅 비었고, 빚은 쌓여만 갔다. 기존 주력산업에만 의존하는 ‘냄비 속 개구리’로 머물다 보니 도시 경쟁력이 바닥을 친 것이다. 인구·일자리·수출 등 주요 지표가 줄줄이 내리막길을 향했다. 도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안고 시장 임기를 시작했다.
전원책 변호사_ 저는 1955년 울산 여천동에서 태어났다. 요즘은 남구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에 정유공장을 지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무렵 한국비료가 들어서고 그 뒤 자동차 공장, 조선소가 들어섰다.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이라는 트로이카 체제의 위용을 갖춘 것이다. 그 뒤로 울산은 문자 그대로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력산업이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라. 저도 울산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던 차에 오늘 송 시장을 만나게 됐다. 당장 자동차만 해도 세계 주요 메이커들이 2030년부터는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만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울산의 일자리와 협력업체의 진로에 먹구름이 드리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송 시장_ 그래서 첨단화·고도화에 기반한 혁신성장을 울산시의 미래전략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다. 대표적인 게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필두로 한 ‘9개 성장다리’ 정책이다. 자동차 등 기존 주력산업은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연계해 친환경, 자동화, 스마트화를 촉진할 계획이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미래차를 중심으로 한 산업생태계 전환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 대안이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다. 울산시가 부유식 풍력발전, 수소경제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달라진 환경에 최적화할 자동차산업에 미래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포석이다.
전 변호사_ 내연기관 차량에 견줘 전기차는 부품이 훨씬 적게 든다. 우선 엔진이 사라져 엔진부품 6900개를 만드는 협력업체가 타격을 받는다. 당연히 협력업체가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은 울산시에 일자리 기근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실업률은 지자체장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정부의 책임에 가깝지만, 울산시장으로서 대책은 강구해야 할 것 같다. 정부는 전기차 시대가 오면 연관 산업이 일어나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잘 믿기지 않는 주장이다.
송 시장_ 전기차로의 전환은 일개 국가나 정부가 선택하고 말고의 사안이 아니다. 이는 시대의 조류이자 숙명과도 같다. 울산은 전기차와 함께 수소차라는 카드를 하나 더 준비해왔다. 수소차 테마에 우직하고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힘써온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지금 현대차의 독보적인 수소차 기술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물론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내연기관 차량으로 호황을 누리던 많은 협력업체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우리의 고민도 여기에 집중된다. 이런 위기 대처방안을 두고 노·사·민·정 협의체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정부도 예산을 지원하는 등 울산의 산업구조 고도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9개 성장다리’의 키워드는 에너지와 행복
전 변호사_ 안 그래도 울산석유화학단지에 자리한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삼성엔지니어링, 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이 수소 동맹을 결성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심지어 국내 기업이 독일 기업과 손잡고 수소산업에 투자를 가속하리라는 얘기도 있더라. 반가운 일이다. 미래 에너지원 확보도 중요하다. 하지만 풍력이나 태양광같이 정부가 강조하는 신재생에너지는 발전 단가가 높아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그 역시 환경 문제가 있다. 그래도 종국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의 무게 중심이 수소에너지 쪽으로 이동하리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전망이다. 저는 탈원전에 반대한다. 그러나 울산시와 송 시장의 수소차, 수소에너지 집념은 보기가 좋다.
송 시장_ 기후위기는 이제 우려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전 인류사적 의제가 됐고,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인 탄소중립에 각국이 힘을 모으고 있다. 탄소중립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그린에너지 비중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다. 탄소세 도입과 탄소제로와 같은 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바로 ‘9개의 성장다리’라고 하겠다.
전 변호사_ ‘9개의 성장다리’라는 이름은 송 시장의 아이디어인가?
송 시장_ 그렇다. 혼자서 이불 속에서 생각한 개념이다.(웃음) 그 9개 중 5개는 에너지 관련이고, 4개는 시민 행복 관련 정책이다. 5개 에너지 사업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수소경제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원전 해체 산업 ▷경제자유구역 및 5대 특구·단지 사업으로 구성됐다. 4개 행복사업은 ▷첨단의료산업 기반 조성 ▷외곽순환도로·도시철도망 구축 ▷백리대숲 품은 태화강국가정원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물 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한다. 울산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외 비철 금속도 지역 산업의 중추를 이룬다. 이 4대 주력산업이 중국의 맹렬한 추격 등으로 한때 전반적인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대처 방안을 고민하던 중 해상풍력발전과 수소경제 등 새 에너지 산업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아마 울산시의 9개 성장다리 중 원전 해체 산업에 대해서는 전 변호사가 반론을 제기할 것 같은데.(웃음)
전 변호사_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여기 오면서 울산시 자료를 봤는데 원전 해체 산업 같은 건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탈원전에 반대하고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사람이지만 원전은 수명을 다하고 폐기할 때 비용이 든다. 앞으로 우리도 원전 폐기의 노하우를 갖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처지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해상풍력발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현 정부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다고 했다. 바다에 시멘트 구조물을 세워 전기를 생산하는 구상인데 저는 내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주민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저 개인적으로 대체에너지에 관심이 많아 태양광·풍력 발전 문제를 꽤 오랫동안 공부해온 축에 든다. 제가 알기로는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의 단가는 1kWh당 170원 정도다. 원전 전력 단가보다 2.5배 이상 비싸다. 한국전력은 신재생에너지를 사다 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송 시장_ 해상풍력발전단지 구조를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다. 해상풍력발전은 부유식과 고정식으로 나뉜다. 고정식은 수심이 낮은 해저면에 하부 구조물인 모노파일이나 자켓을 설치하고 기둥을 꽂는 방식이다. 이 경우 목표로 하는 전력 공급량을 생산하자면 어민들의 조업이 상대적으로 빈번한 곳에 풍차 숫자를 계속 늘려야 한다. 어민들과의 갈등, 바다조망권 차단 등과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울산 앞바다는 150m 전후의 대륙붕이 잘 발달해 있고, 풍속도 국내에서 가장 가팔라 부유식 풍력발전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하겠다. 물에 뜨는 부유체에 풍력발전설비를 설치한 뒤, 이 부유체와 해저에 고정한 앵커(추)를 계류라인 3, 4개로 연결하면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완성된다. 해저에 설치한 앵커와 계류라인은 절대 빠질 일이 없고, 태풍이 오더라도 끄떡없다. 2030년까지 울산 앞바다에 6GW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단지를 세울 것이다. 최근 해외 출장에서 그 규모를 9GW까지 키우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9GW 풍력발전소 재원, 채산성 확보 방안
전 변호사_ 광대한 해수면 위에 그 많은 풍력발전소를 띄우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고려해봤나? 행여 울산 앞바다의 고래는 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송 시장_ 일본은 작은 규모로 부유식 풍력발전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물고기들이 어마어마하게 서식한다. 울산시가 구상하는 풍력발전단지는 2000㎢ 정도의 크기로 조성된다. 가로 40㎞, 세로 50㎞를 곱해야 그 정도 면적이 나오는데 풍력발전 설비 간 폭이 1.5㎞ 이상이다. 고래들이 울산 앞바다를 누비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면 부유체 아래로 어초와 물고기가 번성하기에 고래가 더 몰려들지도 모른다.
전 변호사_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는 데 따른 후유증을 말하는 것이다. 부유식 풍력발전설비를 바다 위에 잔뜩 만들 때 기존의 자연환경에 상당한 변화와 충격이 불가피하지 않겠나. 게다가 문제는 풍력발전소를 가동했을 때 생산되는 실제 발전량과 발전용량의 괴리가 크다는 데 있다. 가령 5㎽급 풍력발전소를 가동한다고 했을 때 실제 발전량은 발전용량의 20%밖에 안 된다고 한다. 기대만큼의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송 시장_ 지난 1년 동안 울산 해상 10여 개 지점에서 시뮬레이션한 결과 발전 효율이 최대 5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태양광이 15%, 육상풍력이 25% 정도인 데 비하면 대단한 이용률이다. 예컨대 10㎽ 설비를 가동하면 5㎽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는 말이다.
전 변호사_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풍력발전 용량을 다 끌어모아도 1.7GW밖에 안 되는 거로 기억한다. 울산시 목표대로 9GW 용량의 풍력발전소를 건립하는 데 드는 재원(財源) 확보 방안이 궁금하다.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나 될까? 그렇게 발전할 경우 건설비에다 투자자들의 수익까지 보장하자면 1kWh당 단가를 어떻게 산정하고 있나?
송 시장_ 1GW 해상풍력발전소 1기 건설에 대략 6조원가량이 든다. 9GW면 54조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부담하는 예산은 테스트 베드, 실증센터, 연구개발단지 구축비 등 총 1조원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 건설비 53조원은 기업 등 국내외 민간자본을 투여하게 된다. 국민의 세금은 거의 안 든다고 보면 된다. 대규모의 해외자본을 활용한다. 건설에 드는 부품과 기자재는 울산 경제를 살찌울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도 좋지만, 산업의 기반인 제조업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송 시장_ 그건 4차 산업혁명과 어떻게 결합하고 고도화하느냐의 문제다. 자동차산업은 친환경·자율주행·스마트 쪽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조선도 수주량이 세계 1위를 달린다. 조선업 현장에서는 일손이 달린다고 하소연한다. 이게 다 우월한 기술력 덕분이다. 친환경 선박 기술이 뛰어난 국내 조선업계는 친환경·저탄소 선박, LNG 선박 등을 건조하는 데 월등한 비교우위를 가진다. 석유화학은 그동안 저유가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요즘 가격이 반등하면서 수익구조가 개선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석유화학도 정유에서 화학 쪽으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다.
역대 울산시 집행부 택지 개발 타이밍 놓쳐
전 변호사_ 울산시가 새 산업 창출과 경제영토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 한 가지 성장동력을 제안하고자 한다. 싱가포르와 라스베이거스의 도약 모델인데, 이들은 모두 컨벤션 시티로 두각을 나타냈다. 수만 명을 수용하는 컨벤션홀을 스무 개 이상 자랑하는 라스베이거스는 1년 365일 행사 예약이 풀로 차 있다. 싱가포르도 전시컨벤션(MICE) 산업의 대명사로 통한다. 우리도 서울의 코엑스, 부산의 벡스코 등이 있으나 수용 규모에서 라스베이거스나 싱가포르에 비해 너무 차이가 크다. 울산에 3만 명 정도 수용하는 컨벤션홀을 두어 개 세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외 관광호텔 체인은 오지 말라고 해도 달려오고, 새 일자리와 함께 젊은이들도 몰려들 것이다. 아시아 권역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이벤트와 전시 행사를 울산이 유치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울산에도 누드 해수욕장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 웃자고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미국 라이트하우스, 프랑스 니스, 호주 버디 등 외국 유명 누드 비치를 보라. 세계의 갑부, 셀러브리티, 지식인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지 않나. 관광도시로서 명성과 함께 엄청난 부를 안긴 게 바로 누드 해수욕장이다. 컨벤션 산업과 누드비치는 울산 르네상스를 이끌 쌍두마차가 될 것이다.
송 시장_ 컨벤션 산업은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안 그래도 지난 4월 울산에 2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컨벤션홀이 개장했다. KTX 울산(통도사) 역사 인근에 위치하는 등 교통도 편리해 대규모 이벤트 개최에 제격이다.
영남권 발전 전략으로 제시된 부·울·경 메가시티와 동남권 광역철도 역시 울산시의 미래에 직결되는 현안인 것 같다.
전 변호사_ 사실 제가 좀 안타까워서 말을 해야겠다. 도시끼리 가까워지고 철도나 도로망이 뚫리면 가장 먼저 울산의 인구가 양산, 기장 등 타지로 쏠린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더라. 메가시티도 좋지만 당장의 인구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오늘 송 시장과 만나 부·울·경 메가시티, 동남권 광역철도 이런 게 울산에 과연 이롭기만 한 건지 묻고 싶었다.
송 시장_ 호시절 울산시 행정 책임자들은 외지에서 계속 사람이 몰려들 것으로만 여겼다. 부산이나 기장 이런 곳으로 울산의 젊은이들이 유출된다고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나. 12월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 울산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20분이면 간다. 이렇게 되면 고향을 등지고 해운대 가서 사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울산시가 놓친 게 있다면 택지 조성을 게을리했다는 점이다. 싸고 편한 주거지와 함께 교육, 의료시설 등 정주 여건이 갖춰졌다면 시민들이 왜 타향을 찾겠나. 2018년 울산시장에 취임하고 보니 이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더라. 택지 조성은 1, 2년 만에 되는 게 아니다. 그린벨트를 풀든, 자연 녹지를 개발하든 주거용지를 공급했어야 했다. 지금 시장으로서 제일 걱정하는 게 바로 택지 부족 문제다. 9개 성장다리 중 뒤의 4개는 이런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에 직결되는 내용이다. 교통, 생태, 관광 여건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화강국가정원도 울산이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 생태도시로 진화하는 상징이다. 지금까지 인구를 외지에 빼앗겼지만, 이제는 되찾아오는 울산이 될 것이다.
“기획재정부 서울 못 옮기면 청와대가 세종으로 가야”
울산의 미래를 짊어질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의 유출 양상이 가파르다. 2018년과 비교하면 2021년 10월 현재 MZ세대 인구의 11%가 타지로 나갔다는 통계도 있다.
전 변호사_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는 고등교육 시스템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고교 평준화는 하면서 학급 평준화는 놓쳤다. 한 학급에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학급의 30명 중 한 5명 정도 될까. 나머지의 반은 다 알아서 자고, 또 반은 전혀 못 알아들어서 잔다는 말이 있다. 서울 강남 집값 폭등도 알고 보면 사교육 시장이 발달한 데서 비롯된다. 한국의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 문제라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울산도 서울 강남, 부산 해운대와 경쟁하도록 교육 여건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순 없을까?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송 시장_ 아픈 지적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노인들은 큰 병원이 없어서,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서, 학생은 교육 여건이 안 돼서 각각 그렇게 떠났다. 울산은 그나마 고교 수준은 괜찮은 편인데 대학 교육 여건은 열악하다. 울산대와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이 있지만, 울산의 대학 교육은 더 새로워져야 하고 보강돼야 한다.
전 변호사_ 제가 만나본 광역단체장 중 시민이 다 아는 현실을 정작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있더라. 교육 환경이 미흡하다는 걸 송 시장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완화 차원에서도 교육 정책과 제도에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에 종합대학이 30개가 넘는다. 이들의 절반만 지역으로 내려보내면 어떨까. 상위권 대학부터 우선 지역으로 이전하면 좋겠다. 예컨대 서울대는 세종시로, 연세대는 청송 같은 곳으로, 고려대는 해남 같은 곳으로 보낸다면 지방 분권은 절로 이뤄질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인 보스턴을 보자. 처음 조성될 때 인구는 고작 2만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하버드대 등 명문대가 자리하면서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이자 인구 100만 명을 자랑하는 도시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얘기가 되겠지만, 동남권 신공항도 울산 언양에 자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울산은 물론이고 부산과 대구, 경남이 골고루 혜택을 보는 입지라는 생각에서 그렇다.
송 시장_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답이다. 울산에서 해상풍력발전 산업을 추진하는 것도 고품격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설계, 금융, 운영, 안전 분야에서 일감이 넘친다. 지금까지 노동 강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을 나쁜 일자리라고 봤다면 해상풍력은 전문적이고 안전한 작업 중심의 양질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MZ세대가 취업하고, 가정을 꾸리고, 출산·양육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산업·교육·환경·생태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울산은 시역(市域)이 넓다. 가용한 부지가 많아 새 산업을 일으키고 자연친화적인 인프라를 조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자체다. 울산의 장래가 밝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전 변호사 _ 도시와 관련한 세계적 추세는 더 크고 고도로 집중되는 메트로폴리탄으로 가고 있다. 서울만 해도 베이징이나 뉴욕에 견주면 시역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계 거대 도시에 필적하는 규모로 서울을 키우자면 부천이나 성남을 서울에 붙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간다면 수도권이 점점 비대해져 가만히 있는 비수도권에 더 가까워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방의 개념도 달라졌다. 전국이 2~3시간 생활권이다. 나는 행정수도는 반대한다. 청와대 옆에 기획재정부를 옮기지 못하면 차라리 청와대가 세종으로 가야 한다.
송 시장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입장이다. 시정(市政)에 임하는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전 변호사_ 이 사건은 청와대가 송 시장이 출마한 울산시장 선거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에 기반한 것인데, 증거가 있다면 이는 엄청난 국기문란 사건에 해당한다. 솔직히 말해 송 시장이 이 일에 직접 개입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당시 청와대 담당 고위직들, 현재 국회의원이 돼 있는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관련 수사 기록을 본 게 아니라서 특별히 드릴 말은 없는데 송 시장이 무사히 잘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송 시장_ 시장 이전에 변호사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말하고자 한다. 형사재판은 처벌·구속 요건을 갖춰야 하고, 그걸 입증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직접증거가 없다면) 간접 증거라도 제대로 나와야 하는데 이 사건은 증거도 없이 이런저런 풍문에다 뜬소문, 추측만 무성하다. ‘누가 이렇게 얘기한 것으로 봐서 이런 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시나리오 중심의 공소사실만 있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본다면 유죄 판결이 어렵다고 본다.
“하명 수사 같은 건 전혀 상상도 못할 일”
전 변호사_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일 거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오랜 친구 송철호 후보의 당선을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또 청와대에 있는 고위 간부들에게 그런 암시를 했겠느냐, 아니면 직접 지시를 했겠느냐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인가?
송 시장_ (오랜 세월 변호사로서 문 대통령과) 일을 같이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저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공직에 있었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과) 친한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은 정서적인 문제이지, 그로 인해 법을 돌파해가면서까지 뭘 도모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다. 무슨 하명 수사 같은 건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저는 형제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아버지께서 두 아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은 법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니 절대로 남에게 법으로 해코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받들어 저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지금까지 고소·고발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선거에 이기려고 누구를 수사해달라 청탁하고, 공모했다는 주장은 제게는 너무 심한 인격 모독이다. 다만 재판은 재판이니까 참고 열심히 임할 것이다.
오늘의 울산을 있게 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무엇이며, 그게 울산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송 시장_ 울산의 현재를 결정지은 과거의 ‘별의 순간’은 1997년 광역시 승격이다. 1990년대 울산은 인구 100만인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경상남도에 포함돼 자치권은 없고 시민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995년 제가 ‘울산광역시 쟁취 시민운동본부’ 상임본부장으로 시민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고 정당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당시 야당의 김대중 총재도 만났는데, 시대적 추세가 지역 분리가 아닌 통합으로 간다는 이유를 들어 광역시 승격에 미온적이더라.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순간 역발상이 번쩍 떠올랐다. 제가 이렇게 설득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이 통합하는 게 대세인 거 같다. 다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울산시를 한시적으로 광역시로 승격해 미래를 도모하도록 해달라.’ 곰곰이 생각하던 김 총재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래서 1996년 여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광역시 승격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울산 미래를 새로 쓸 ‘별의 순간’이다. 울산 동쪽 앞바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에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와 친환경 에너지사업이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을 선도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안 가본 길이지만 역발상과 돌파 의지로 울산 ‘별의 순간’을 만들고자 한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