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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중년·아이 사절합니다”…영업 자유냐, 차별 행위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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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호 06면

‘노 ○○ 존’ 뜨거운 감자

“다른 손님들의 편안한 이용을 위해 ○○대학교 교수님들은 출입을 삼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달 초 부산의 한 대학가 카페 겸 술집에 교수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일명 ‘노 교수 존’ 안내문이 화제가 됐다. 당시 업주는 “매장에 방문했던 진상 손님이 모두 대학교수”였다며 출입금지를 내건 이유를 밝혔다. 큰 소리로 통화하고, 함께 온 대학원생들에게 욕설까지 해 대부분 대학생인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특정 연령대, 소속, 집단을 대상으로 출입을 막는 이른바 ‘노 ○○ 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14년 매장 내 아동 출입을 막는 ‘노 키즈 존’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고객의 출입권과 영업의 자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사이 노 키즈 존에 대한 여론은 확고해졌다. 2016년 경기연구원 조사 결과 노 키즈 존이 업주의 영업상 자유라고 답한 응답자는 44.4%로 절반을 넘지 않았으나, 지난달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업주의 자유이자 타 손님을 위한 배려라는 의견이 71%에 달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노 키즈 존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미온적 대처 때문이다. 2016년 9월 제주도의 한 노 키즈 존 식당에서 13세 이하 아동의 식당 이용을 막았다는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이 들어갔는데, 당시 인권위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근거로 특정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행위”라며 향후 13세 이하 아동을 이용대상에서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 결정은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으며, 오히려 2017년 200여 곳이던 국내 노 키즈 존이 최근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청소년 출입을 막는 ‘노 유스 존’, 중장년 출입을 제한하는 ‘노 중년 존’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예로 들며 노 ○○ 존 확산 현상을 분석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건물이나 차량의 깨진 유리를 내버려 두면 더 큰 범죄로 번질 수 있다는 범죄심리 이론이다. 작은 문제를 용인하고 내버려 두면 해결할 수 없는 수준까지 퍼진다는 의미다. 그는 “처음 노 키즈 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명백한 차별이라고 규정했다면 이렇게까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 키즈 존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다 보니 노 중년 존, 노 교수 존으로 진화해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노 ○○ 존은 흔한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스페인 소비자 권리보호단체인 FACUA는 빌바오 주에 있는 노 키즈 존 레스토랑이 아동의 시설 접근권을 막았다며 주 정부에 벌금 부과를 요청했다. 해당 단체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폭력, 음란, 사행성 공간이 아님에도 미성년자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은 2016년 지역 업소나 공공 관광시설에 인종, 성별, 종교 등의 이유로 접근을 제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법에 명시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는 카지노, 술집 등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큰 시설에선 아동의 출입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이외의 시설에서는 나이나 성별, 인종, 종교 등으로 인한 출입 거부는 차별이라는 내용의 인권 강령이 있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해외에는 아동과 성인이 연속적인 인격체라는 사고방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라며 “모두가 거쳐 가는 아동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우리나라는 아동과 성인을 별개의 존재이자 관련이 없는 존재로 인식해 배제하고,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노 ○○ 존이 자영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반발도 거세다. 아동, 청소년, 일부 교수 등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자영업자들이 받는 피해가 막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초부터 노 키즈 존을 도입한 30대 이지연씨는 “매장에 방문한 아동 고객이 비싼 소품을 엎지르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부모는 사과도 없고, 손해는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니 노 키즈 존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며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노 ○○ 존이 다양성을 침해하고 차별을 당연시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한국 사회 전반에 퍼졌던 차별 분위기를 언급했다. 확산 초기 확진자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중국 동포를 배척하고, 대구 내 확진자가 급증하자 도시를 봉쇄하자며 지역 차별이 드러났던 것처럼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차별이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사회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의 통로로 약자 배제와 혐오를 선택한 것”이라며 “교수, 중년 등 사회적 강자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서 아동, 장애인,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활동가 또한 “노 키즈 존을 시발점 삼아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가 무의식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게 심히 두렵다”라며 “나 또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 공간에만 안 오면 된다’며 출입을 금지하는 대신 문제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처벌하고, 책임을 지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 교수는 “자영업자에게만 해결을 강요하지 말고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승미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정책팀장은 “자영업자들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며 “블랙 컨슈머를 비롯한 무례한 손님들을 강하게 제재하거나 손해가 발생했을 때 배상책임을 요구하는 지침이 만들어진다면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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