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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자살시킨것" 유족 오열···죽어야 드러난 '말못한 억울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사업1처장의 빈소가 마련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이수민 기자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사업1처장의 빈소가 마련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이수민 기자

“유동규 라인이 아니다.” “따귀까지 맞았다.” 
“회사에서 법적 대응을 안 해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빈소에선 고인의 ‘말 못했던 고민’들이 쏟아졌다. 유족들은 장례식장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면서 생전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고인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다. 전언의 주인인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은 저승에서라도 후련할까.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그의 빈자리엔 생전의 ‘침묵’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는 사연들을 왜 세상에 밝히지 않았던 것인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던 좌절감과 중압감의 근원은 무엇인지.

3개월 전까지만 당당했던 고(故) 김문기 처장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사업1처장 남동생 김대성씨(55)가 22일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사업1처장 남동생 김대성씨(55)가 22일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3개월 전만 해도 김 처장은 당당했다. 지난 9월 24일 중앙일보 기자와 마주친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자신은 떳떳하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뒤 기자와 직접 만나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던 당시의 그는 “언젠가는 진실이 다 밝혀질 테지만, 지금은 언론이 아닌 사정기관에 가서 말을 하는 게 더 맞다”며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사양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의 측근설에 대해서도 극구 부인하며 “의혹 한 점 없이 떳떳하다. 오히려 정식 절차에 따라 서둘러 감사를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검찰 조사를 받기 전의 일이다.

국민의힘은 2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전날 숨진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 몰랐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과거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제시하며 '거짓말'이라고 맹공했다. 사진은 2009년 8월 성남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2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전날 숨진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 몰랐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과거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제시하며 '거짓말'이라고 맹공했다. 사진은 2009년 8월 성남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연합뉴스

그로부터 약 2주 뒤인 10월 6일 첫 검찰 조사를 시작으로 그는 지난 9일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총 네 차례 조사를 받았다. 이른바 ‘대장동 멤버’들이 녹취록을 공개하고 인터뷰를 하며 각자도생을 모색할 때도 그는 최대한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언론에 공식적으로 입을 열었던 건 지난 10월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였다. 김 처장은 “회사에서 정한 대로 했을 뿐인데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당시 경기지사)의 첫 경기도 국정감사(10월 18일)가 끝난 이틀 뒤이자 두 번째 국정감사가 열린 당일이었다.

김 처장이 지켜봤을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이 후보는 “직원 일부가 오염돼서 부패에 관여한 점에 사과드린다”며 자신에게 쏠린 ‘대장동 몸통’ 의혹에 선을 그었다. 이어 유 전 본부장의 구속에 대해서도 “참으로 안타깝고 개인적으로 보면 배신감을 느낀다”면서 “임명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죽기 전 편지에 언급된 ‘윗선’

‘윗선’ 의혹이 풀리지 않은 채 끝난 국정감사에 이어 검찰의 대장동 수사 역시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결국, 실무자들에게 책임이 지워지는 분위기가 김 처장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보다 11일 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유한기 전 개발본부장의 사망에 대해 김 처장은 “책임을 질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고 유족은 전하고 있다.

유족들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김 처장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은 “(김 처장이)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사실상 상황들을 보면 자살시킨 걸로 보인다”고까지 했다.

유족을 통해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진 생전 그의 편지에는 “여러 번 윗선 결정권자에게 얘기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아 너무 억울하다” “공사에서 변호사 선임 등 법적 대응을 안 해주는 데 너무 억울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본부장에게 따귀까지 맞았다”는 김 처장의 사연도 유족을 통해 알려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5년 성남시장 당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이기인 국민의힘 성남시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5년 성남시장 당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이기인 국민의힘 성남시의원]

죽음과 윗선을 향한 의구심 풀릴까

침묵 속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던 그의 발인식은 유족들의 오열 속에 엄수됐다. 24일 오전 7시 30분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운구 행렬에서 김 처장의 어머니는 “아이고 문기야 내 새끼야”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형제들은 “이제 가야 해요 엄마, 가야 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 처장은 말없이 떠났지만, 그의 죽음과 ‘윗선’의 연관성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된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때 몰랐다. 아예 그런 사람의 존재를 나중에야 알았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 재직 시절 그가 김 처장과 호주 출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지만,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 속에 함께 있는 유동규 전 본부장(구속)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김 처장이 돈을 받은 것도 없고 공사를 위해 일한 것밖에 없는데 4회에 걸쳐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으니 마음도 약한 사람이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느냐”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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