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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서울 단골도…제주서 68년째 한우물 파는 80세 이발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31)

각 분야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이 많아져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제주도 여행 중에 80대 나이에 이발관을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나이 들었다고 움츠리고 있는 노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 같아 흐뭇했다. 덩달아 나도 자신감이 불쑥 솟아난다.

얼마 전 제주도에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머리칼이 덥수룩한 채로 다니다 보니 이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주 시내 중심지를 벗어난 마을이라 마땅히 머리 깎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가게에 갔다가 우연히 바로 인근 오래된 건물에 '마을 이용원'이라는 정감이 가는 간판이 보였다. 서울에서는 사는 동네에 이발관이 없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오던 터라 반가우면서도 ‘영업을 하는 이발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름했지만, 이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인볼이 돌아가고 있다.

동네 골목에 '마을이용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이발소. [사진 조남대]

동네 골목에 '마을이용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이발소. [사진 조남대]

잘 깎을까 약간의 의구심이 들어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예상대로 이발 의자와 소파를 비롯한 가구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70년대 중학생 시절에 다녔던 이발관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신기해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장식장이며 이발과 면도 기구뿐 아니라 110V 기구를 사용하는 변압기도 보인다.

벽에는 오랜 기간 봉사 활동하며 받은 상장과 빛바랜 지역신문기사가 넣어진 액자가 걸려 있다. 48년 전 개업할 당시 설치한 공중전화도 옛 모습 그대로 놓여있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전화는 끊었단다. 보기 드문 공중전화라 “KT에 가져가도 상당히 고가로 매입할 것 같으니 잘 보관해 두세요”라고 조언까지 해드렸다.

벽에 부착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공중전화기.

벽에 부착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공중전화기.

봉사활동 내용이 게재된 빛 바랜 지역신문 기사.

봉사활동 내용이 게재된 빛 바랜 지역신문 기사.

의자에 앉자 묵묵히 이발만 하신다. 이발 기계로 머리 옆과 뒷부분을 대강 자르고 난 다음 가위로 또 꼼꼼히 다듬는다. 한동안 가위질을 한 후에는 분가루를 바르고 머리칼을 고른다. 흰 가루를 바르고 머리 자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리고는 둥근 솔로 비누 거품을 내어 머리 옆과 뒷부분에 바르고 깨끗이 면도한다. 어린 시절 비눗물을 바를 때 차가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옛날에는 면도칼을 가죽 띠에 갈아서 사용했는데 이제는 위생상 일회용 면도날을 바꿔 끼워가며 면도한다고 한다. 머리 감을 때도 샴푸가 아닌 비누로 감겨준다.

말문을 트자 옛날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신다. 열두 살에 이발 기술을 배워 여든이 될 때까지 68년째 이발을 하고 계신다는데 그렇게까지 나이 들어 보이시지 않는다. 오직 이발만 해 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6남매를 길러 모두 결혼시켰다며 앞으로도 4∼5년, 길게는 10년까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발사는 단 1명뿐이라며 자랑스러워하신다. 지난 몇 년 동안 허리가 아파 치료를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이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은퇴하지 말고 계속 일을 하라”고 했단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품고 열심히 하시니까 손 떨림도 없이 나이보다 젊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발관에 설치된 가구와 각종 이발 비품.

이발관에 설치된 가구와 각종 이발 비품.

초창기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20년 정도 이발 일을 했는데, 쉬는 날은 관광하느라 돈을 벌지 못해 고향으로 내려와 48년째 한 곳에서 일하고 있단다. 머리 모양에 신경 쓰는 사람은 시간과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얼굴과 성향에 맞지 않게 깎으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단다. 40년 이상 된 단골이 열두 분 정도 계시는데, 제주공항에 근무하다 서울로 전근 간 단골은 지금도 이발하기 위해 휴일에 비행기 타고 온다고 한다. 또 서귀포에 사는 단골도 공항 근처인 이곳까지 온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발소가 잘 될 때는 4명의 직원을 두고 팁으로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골손님과 관광객 위주로 이발을 하는데 힘들지 않을 정도의 손님이 있단다.

의젓하게 앉아 머리를 깎고 있는 손자.

의젓하게 앉아 머리를 깎고 있는 손자.

깔끔하게 이발해 주신 것이 마음에 들어 다음날 4살 된 손자도 데리고 갔다. 솜씨가 좋아선지 전혀 칭얼대지 않고 의젓하게 잘 견딘다. 굵은 주름이 패진 손으로 증손자 같은 어린아이를 조심스럽게 이발하고 머리 뒷부분 면도까지 하시는 모습에서 68년 된 달인의 이발 솜씨를 보았다.

팔순 이발사의 당당한 포부와 자신감이 부러웠다. 나도 이 어르신과 같이 여든까지 현역으로 글 쓰고 사진 찍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실력과 체력을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형석 교수는 100세가 넘도록 활발하게 강연 다니고 저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노력하면 안 될 것도 없을 것이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면도기지만 면도날을 바꿔끼워가며 사용하고 있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면도기지만 면도날을 바꿔끼워가며 사용하고 있다.

면도할 때 사용하는 비누거품 내는 솔과 비누통.

면도할 때 사용하는 비누거품 내는 솔과 비누통.

우리도 암이나 사고가 없으면 100세까지 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100세 삶이 보편화 된 시대의 인간을 지칭하는 학술용어인 ‘호모 헌드레드(Home Hundred)’라는 표현을 유엔은 2009년 처음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12년에는 2386명이던 100세 이상 인구가 2030년에는 1만 명, 2040년에는 2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건강과 여유 있는 자산이 있어야 축복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보다 오랫동안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100세 기대수명까지 살아갈 사람들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은 이들은  분산 투자로 은퇴 이후의 생활비를 확보하고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에선 100세 시대의 안착을 위해 정년 연장이나 폐지와 같은 제도 개선을 고민한다고 하지만, 청년 일자리와 부딪히는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여든이 지났지만, 건강하게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이발사를 만나서 흐뭇했다. 주름진 손을 보는 순간 가슴 뭉클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으며, 현역으로 여든까지 살아온 장인정신이 돋보였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가구와 이발 기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제들과 다녔던 고향 이발소에 온 것 같아 잠시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다.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둔 데다 은퇴세대인 나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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