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도 극찬… ‘기생충’ 길 따르는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중앙일보

입력 2021.12.24 11:58

업데이트 2021.12.24 12:05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촬영 당시 현장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촬영 당시 현장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올해 두 편의 영화로 칸영화제‧베를린영화제를 동시 석권한 감독이 있다. 일본의 떠오르는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43)다. 각본까지 쓴 ‘우연과 상상’이 지난 3월 베를린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7월 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 소설을 직접 각색한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받았다. 첫 상업영화 ‘아사코’로 칸 경쟁부문에 처음 초청되고 3년 만이다.

올해 칸·베를린 석권한 日 젊은 거장
美뉴욕비평가협회상 외국영화 첫 작품상

이 중 한국에도 23일 개봉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상식 시즌에 돌입한 미국에서 수상 소식이 잇따른다. 뉴욕‧보스턴‧LA비평가협회상은 일본어 작품인데도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최우수 작품상을 안겼다. 지난 21일(현지 시간) 발표한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영화상 예비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1인치 자막의 장벽”(봉준호 감독)을 뛰어넘은 ‘기생충’의 길을 따르는 모양새다. LA타임스‧버라이어티 등 미국 현지 매체의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기사마다 ‘기생충’이 언급된다.

봉준호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는 과정 체험케 해" 

지난 16일 한국 취재진과 화상으로 만난 하마구치 감독은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봉준호 등 선배 감독들이 있었던 덕분에 제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담을 한 봉준호 감독은 “전혀 몰랐던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해준다”고 호평한 바. 이 영화로 보스턴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을 받은 중견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50)는 “주인공이 연극이란 예술적 행위를 통해 상실감에서 재생으로 나아가는 모습 자체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인과 연결돼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15일 화상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아내의 돌연사를 겪게 된 그는 2년 뒤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만난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코)와 그간 감춰온 아픔을 나눈다. 가후쿠가 일본‧중국‧한국‧수어 등 다국어 배우들과 준비 중인 안톤 체호프 희비극 ‘바냐 아저씨’ 대사와 장면이 그와 미사키의 삶에 겹쳐지며 공감과 위로를 준다.

올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의 행사인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가 7일 부산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의 행사인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가 7일 부산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열렸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하마구치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동명 단편을 뼈대로 하루키의 다른 단편 ‘셰에라자드’ ‘기노’,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각색했다. 2019년 그는 하루키에게 편지와 함께 영화 플롯을 보내 제작 허가를 받았다.

하마구치 감독은 영화사로부터 하루키 소설 영화화를 제안받았을 때, 동명 원작이 떠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키 소설은 고난과 우울감을 겪어도 뭔가 희망이 느껴져서 독자들이 신뢰를 갖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그런 희망의 가능성을 영화에 표현해보고 싶었다. 영화 속 연극의 바냐도 가후쿠처럼 인생이 끝장난 것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울림이 주는 듯한 부분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니시지마 "각본 배우 몸에 새겨넣듯 리딩 50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주연에 니시지마 히데토시(왼쪽)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연기로 억지로 뭔가를 표현하려는 것 없이 존재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기 자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배우여서”라고 했다. 미사코 역의 미우라 토코(25)는 여섯 살에 데뷔한 아역 출신.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과 상상’ 촬영 때 처음 만나자마자 ‘운전 잘하겠는데?’ 느껴 출연을 제의했고 실제론 면허가 없어서 맹훈련으로 딴 후에 촬영했다”며 극 중미사키의 완벽한 운전실력도 “이분 얼굴을 찍으면 관객들도 납득하겠지, 생각했다. 영화의 분위기에 큰 공헌을 해줬다”고 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주연에 니시지마 히데토시(왼쪽)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연기로 억지로 뭔가를 표현하려는 것 없이 존재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기 자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배우여서”라고 했다. 미사코 역의 미우라 토코(25)는 여섯 살에 데뷔한 아역 출신.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과 상상’ 촬영 때 처음 만나자마자 ‘운전 잘하겠는데?’ 느껴 출연을 제의했고 실제론 면허가 없어서 맹훈련으로 딴 후에 촬영했다”며 극 중미사키의 완벽한 운전실력도 “이분 얼굴을 찍으면 관객들도 납득하겠지, 생각했다. 영화의 분위기에 큰 공헌을 해줬다”고 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주연 배우 니시지마는 연출자로서 하마구치의 개성으로 “정밀한 각본과 50번에 달하는 대본 리딩”을 들었다. “대사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묵직하다. 연기하기 쉽지 않은 대사”라면서 “하루키 원작과 체호프 희곡 등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관념적인 작품이어서 현장에서도 여러 번 대본을 읽으며 배우 안에 새겨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텍스트의 의미가 배우 몸으로 들어가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표출됐다”고 돌이켰다.

실제 촬영 현장도 극 중 가후쿠의 연극 연습 과정 같았다고. 오디션으로 선발된 한국 배우 박유림‧진대연‧안휘태를 비롯해 언어가 다른 배우들이 서로 좌충우돌하며 어우러졌다. 이런 리딩 방식에 대해 하마구치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상호 시너지를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 예전부터 이런 대본 리딩을 해왔다”고 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오른쪽 세번째)가 다국적 배우들과 준비하는 다국어 연극 '바냐 아저씨'는 자신을 배반한 아내를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떠나보낸 가후쿠 자신의 처지와도 겹쳐진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오른쪽 세번째)가 다국적 배우들과 준비하는 다국어 연극 '바냐 아저씨'는 자신을 배반한 아내를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떠나보낸 가후쿠 자신의 처지와도 겹쳐진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원래 촬영 계획은 부산, 언젠가 한국서 영화 찍고파

하마구치 감독은 평범한 주인공이 재난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주제를 계속 그려왔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자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파도의 소리’ ‘파도의 목소리-게센누마편’ ‘파도의 목소리-신치마치편’에 이어 출세작인 ‘해피아워’는 고베, ‘아사코’는 쓰나미가 휩쓸었던 센다이 지역 등을 무대로 대지진 이후 허무감과 불안감을 담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배경인 히로시마는 전쟁 중 원폭이 투하됐던 곳이다.

완성된 영화를 본 원작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지 인터뷰에서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가 쓴 부분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단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를 “제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영화사를 통해 전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완성된 영화를 본 원작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지 인터뷰에서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가 쓴 부분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단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를 “제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영화사를 통해 전했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이에 하마구치 감독은 “히로시마가 된 건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원작 소설은 도쿄가 무대인데 ‘아사코’ 촬영 때 도쿄에서 자동차 주행을 촬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한 바 있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 원래는 부산 영화의 전당을 연극의 전당으로 해서 찍으려고 했는데 촬영 3개월 전 코로나19가 확산해 일본 국내를 물색하던 중 히로시마영상위원회의 적극 협조로 정해졌다”고 했다.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간담회에선 “최근 한국영화의 융성에 주목하고 있고 한국의 영화 제작 방식을 통해 저 자신도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이미 로케이션 헌팅도 많이 했기 때문에 언젠가 부산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마구치 "영화 아무리 길어도 인생보다 짧죠" 

그를 알린 출세작 ‘해피아워’(2015)도 지난 9일 한국에서 뒤늦게 개봉했다. 이 영화 상영시간은 중간 쉬는 시간 10분까지 포함해 무려 328분. ‘드라이브 마이 카’도 179분에 달한다. 하마구치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해피아워’는 워크숍을 통해 만든 영화여서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고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느라 5시간 넘게 길어졌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어떻게 끝맺을지가 명확했지만 중간에 연극 장면에 들어가는데다 극 중 인물끼리 통역하는 시간이 필요해 3시간 분량이 돼버렸다. 이에 대해 하마구치 감독은 “사실 영화가 아무리 길어도 인생보다는 짧지 않냐”면서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완성도를 내면서도 상업영화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영시간을 만드는 건 계속 고민할 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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