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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대 신입생이 물리 모른다" 고교 과학 가르치는 한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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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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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가 내년부터 공대·자연과학대에 입학하는 신입생에게 필수적으로 고교 수준의 물리·화학 수업을 수강하도록 한다. 많은 신입생의 기초 과학 역량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대입 선택과목에 따라 고교에서 물리나 수학 미적분 등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이 늘면서 자체적으로 '보충수업'에 나서는 대학이 늘고 있다.

23일 한양대에 따르면 내년 3월 입학하는 공대와 자연과학대학 신입생들은 ‘일반 물리학 및 실험1’과 ‘일반 화학 및 실험1’ 두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두 과목 모두 일주일 3시간 이론 수업 중 1시간은 고등학교 물리와 화학을 가르친다.

한양대 ERICA캠퍼스는 아예 입학 전부터 온라인 수업으로 고교 물리·화학을 가르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물리나 화학을 선택하지 않았거나 수능 등급이 3등급 이하인 학생이 대상이다. 이후 고교 수준의 시험을 치러 통과를 해야만 대학에서 본 전공을 수강할 수 있다.

수능에서 외면받은 물리…대학이 '과외'

한양대 전경. [중앙일보]

한양대 전경. [중앙일보]

이처럼 고교 수준의 '과외'를 해주는 대학은 한양대 뿐만이 아니다. 서울대 공대도 2019년도부터 고등학교에서 물리Ⅱ를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의 기본’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숙명여대 공대·이과대도 2018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입학 전 고교 수준의 수학과 물리·화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한승 한양대ERICA 부총장은 "이공계 학생들의 기초학문 부족은 모든 이공계 대학의 숙제"라며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이 고교 수준 물리나 화학 과외에 나서는 이유는 그만큼 이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이 적기 때문이다. 2022학년도 수능 과학탐구 과목별 응시자를 보면 물리Ⅱ 응시자는 3006명(전체 탐구영역 응시자의 0.7%)으로 가장 적다. 이어 화학Ⅱ도 3317명(0.8%)으로 두번째로 적은 과목이다. 과학탐구Ⅰ 과목만 놓고 봐도 물리Ⅰ(14.8%)은 생명과학Ⅰ(31.8%)이나 지구과학Ⅰ(32.2%) 응시자의 절반 수준이다.

한 고교 진학담당 교사는 “고교 교육과정은 깊이 있는 공부보다는 기본 원리와 활동 위주로 이뤄져 있는데 물리나 화학은 수능 문제 자체가 매우 어렵게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며 “안그래도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과목별 응시자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과목별 응시자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학와서 시간낭비…"전공 포기하는 학생도"

하지만 대학에서는 이공계에서 물리와 화학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결국 전공을 포기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화학공학과를 들어왔는데 화학이나 미적분을 아예 고등학교에서 접해보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며 “기초라도 알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데, 아예 접해보지도 않은 상태로 입학한 학생들은 전공 수업을 따라올 수가 없고 결국 전공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종우 숙명여대 공과대학장도 “고등학교 때 배워야 할 과목들을 다시 가르쳐줘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게 추가 학점으로까지 잡히니 본 전공 학점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결국 대학에서 이수해야 할 전공 학문은 적게 듣게 되고, 학생 개인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대식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현재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한 형태로만 대학 입시와 교육 제도, 방향이 바뀌고 있는데 정작 대학 입학 이후 어떻게 수업을 받고 졸업을 해서 어떤 인재가 될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것 같다"며 "고등학교 교육뿐 아니라 AI, 첨단산업 등 우리 사회 인재 양성을 위해서 교육 제도와 규제 등 전체 시스템이 모두 전면 재검토돼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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