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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팩트를 등불 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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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9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대화를 하고 있다. 대선을 불과 두 달 남짓 앞뒀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선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 비율이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으로 대선판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9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대화를 하고 있다. 대선을 불과 두 달 남짓 앞뒀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선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 비율이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으로 대선판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취임 후 불과 1년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엔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대선 핵심 공약을 담은 사회복지 예산안의 연내 통과가 무산됐다. 여야 의원이 50대 50으로 양분된 상원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들어 법안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이 나왔다. 재상정에만 두 달 이상 걸리니 대통령은 스타일을 왕창 구겼다. 우리 식으론 당정 엇박자다. 부동산 정책을 놓고 부딪히는 청와대와 민주당을 닮았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이 영 딴판이다. 바이든은 선거다운 선거를 치렀다. 게다가 우린 미국처럼 소신으로 부딪힌 게 아니다. 악성 표(票)퓰리즘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무능과 오만의 합작품이다. 처음부터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그런 실패를 앞장서 옹호한 사람이 여당의 이재명 대선후보고 세금 폭탄을 떠안긴 장본인이 민주당이다. 이 후보는 한때 종부세보다 훨씬 강한 ‘국토보유세’를 매기자는 공약을 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딴사람인 것처럼 입장을 뒤집고 민주당은 그걸 받아 세금 깎아주는 정반대 정책을 논의 중이다. 사과나 해명은 없다.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신들의 말을 깡그리 뒤엎었다. 심지어 ‘소급해서 깎아줄 수도 있다’고 한다.
 선거철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잡자면 마음에도 없는 이런저런 허풍이 나올 수 있다. 문 정부의 실패한 정책을 바꾸겠다는 거라면 더 말할 게 없다. 그래도 태도를 확 바꾼 과정엔 설명이 따라야 진정성이 생긴다. 무작정 '뒤로 돌아'를 놓고 자기들끼리 ‘언변의 귀재’ ‘사이다 발언’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식이면 언제 어떤 식으로 또 뒤집을지 아무도 모른다. 부동산만도 아니다. 역사 평가는 장소에 따라 다르고 기본소득이나 재난지원금 같은 나라 경제를 흔들 공약은 때에 따라 바뀐다. 매번 진심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야당도 거기서 거기다. 문 정부는 대놓고 우리 편이 아닌 쪽만을 적폐로 몰았다. 그런 ‘끼리끼리’에 맞선 엄정함이 윤석열 후보를 밀어 올린 힘이다.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입시 자료 의혹에 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그럼 자신의 아내 이력 논란에도 추상같아야 한다. 물론 영부인 뽑는 선거는 아니다. 또 이력이 총체적으로 가짜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그게 상식이다. 그게 안 되니 야당은 지금 콩가루다. 그래 놓곤 여야가 ‘범죄자 집안’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더라’ 식의 막장 경주로 혐오만 키운다. 누가 이긴들 정상적 국정 운영에 필요한 권위를 끌어낼 수 있겠나.
 도덕성과 효율성은 권력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은 최악이었다. 그럼 재앙적 정책을 걷어내겠다는 이 후보와 여당의 호소엔 박수가 쏟아져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갈까'라고 고개들을 갸우뚱한다. ‘적폐를 송두리째 뽑아내겠다’는 문 정부의 위선은 최악이었다. 그럼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으로 되돌리겠다는 야당 외침엔 기대가 넘쳐야 한다. 하지만 '내 편에게도 그럴까'라고 수군댄다. 다음 대통령은 미·중 패권 경쟁의 좁은 틈에서 활로를 만들고 최악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말발이 먹혀야 가능한 일들이다.
 특검이 그나마 나라와 국민의 에너지를 한쪽으로 모을 수 있는 돌파구다. 지금으로선 그게 실사구시다. 양쪽은 이미 “조건을 붙이지 말고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다 하자”고 했다. 그것도 한참 됐다. 말로만의 특검이 실제로 출범하면 진실에 한걸음 다가선다. 그러면 '진심'을 전할 수 있다. 석가세존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다. 진리를 등불 삼으라는 말씀이다. 유권자는 그렇게 살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더 머뭇거릴 어떤 이유가 왜 있을 수 있나. 과학적 데이터와 팩트 우선으로 돌아가야 이 지긋지긋한 억지 떼쓰기 전쟁을 끝장낼 것 아닌가.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악 비호감' 늪에 빠진 선거론 #이겨도 국민 에너지 결집 어려워 #특검으로 진실 밝혀야 말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