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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내순례길을 걷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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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올해만큼은 성탄절의 의미를 새기며 차분히 지내는 것도 좋겠다. 충남 당진 버그내순례길의 중간지점인 합덕성당 마당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혔다. 환한 달이 성당을 비추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올해만큼은 성탄절의 의미를 새기며 차분히 지내는 것도 좋겠다. 충남 당진 버그내순례길의 중간지점인 합덕성당 마당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혔다. 환한 달이 성당을 비추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것 같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그러나 올해는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다. 전 세계를 뒤덮은 전염병의 위세가 매서운 데다 엄중한 방역 상황 때문에 가족, 친구와도 만나기 쉽지 않다. 이참에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순례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 충남 당진에 있다. 바로 버그내순례길이다. 나와 이웃의 안녕을 염원하며 걷기에 이만큼 좋은 길도 없을 테다.

유네스코 올해의 기념 인물

버그내순례길 곳곳에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

버그내순례길 곳곳에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

버그내는 삽교천 하류, 당진시 합덕읍·우강면 일대를 일컫는 옛 지명이다. 당진시가 13.3㎞에 이르는 버그내순례길을 조성한 건 2010년 즈음이다. 그러나 길 이름이 붙기 전에도 많은 순례객이 이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솔뫼성지가 있어서였다. 솔뫼. 소나무가 산처럼 많은 동네다. 여기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46)가 태어났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를 방문하면서 비신자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김 신부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믿었다. 4대에 걸쳐 11명이 순교했으니 솔뫼를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빗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김대건 신부 생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김대건 신부 생가.

솔뫼성지는 제법 넓다. 김 신부 생가 뒤편으로 솔숲이 있고, 야외 성당인 ‘솔뫼 아레나’와 올해 개장한 성당 겸 복합예술 공간 ‘기억과 희망’도 있다. 올해 솔뫼성지는 여러 행사로 분주했다. 김대건 신부가 탄생 200주년을 맞은 동시에 유네스코 기념 인물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여서는 아니었다. 유네스코는 “평등사상과 인간의 존엄,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솔숲 한편에 조성한 ‘비아돌로로사(고난의 길)’를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14장면을 재현한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조선 시대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처럼 고난을 겪었다. 그들도 예수를 떠올리며 모진 핍박을 견뎠을 테다.

조선 3대 저수지

합덕성당에 있는 아기 예수와 부모 조각. 요셉과 마리아가 한복을 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합덕성당에 있는 아기 예수와 부모 조각. 요셉과 마리아가 한복을 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솔뫼성지에서 김대건 신부의 일생을 살폈다면 본격적으로 걸을 때다. 길은 어렵지 않다. 코스 대부분이 평지이고 이정표도 잘 갖춰져 있다. 솔뫼성지 관광안내소에서 스탬프 북을 챙기거나 버그내순례길 스마트폰 앱(안드로이드)을 받으면 더 편하다. 완주 인증을 하면 기념 배지도 준다.

솔뫼성지에서 약 2㎞를 걸으면 합덕전통시장이 나온다. 과거 ‘버그내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온갖 물산이 이곳에 모였기에 늘 북적였다. 덕분에 천주교 전파의 교두보가 될 수 있었다. 이영화 당진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공개적으로 천주교를 믿을 수 없던 시절, 신자들은 시장에서 만나 교우를 나누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장터를 지나면 ‘합덕제’가 나온다. 조선 3대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제방만 남았다. 겨울에는 썰렁하지만 수변공원 주변으로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으로 물든다. 논길과 종교시설이 대부분인 순례길에서 가장 여유롭게 자연을 느끼며 걷기 좋은 구간이다.

합덕제 인근에 합덕성당이 있다. 빼어난 건축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섞인 독특한 건물이다. 1890년 예산군에 세워진 양촌성당이 합덕성당의 모태였다. 1899년 지금 장소로 이전했고, 1929년 재건됐다.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성당도 수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때 주임 신부인 페랭 신부가 공산당에게 체포돼 순교했다. 뒷마당에 페랭 신부 순교비가 있다.

사진 명소 이면의 역사

주인 없는 무덤에 세워둔 십자가.

주인 없는 무덤에 세워둔 십자가.

순례길 곳곳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을 지키다 희생당한 이들의 흔적도 많다. 합덕제에서 3㎞ 거리, 성동마을에 있는 우물터가 1792년 내포 출신 첫 순교자인 원시장과 원시보를 기리는 장소다. 사촌지간인 원시장과 원시보는 각각 1793년, 1799년 순교했다. 우물터 인근에는 주인 없는 무덤 46기가 있다. 6개 봉분에는 시신 32구가 함께 묻혀 있다. 1972년 이 자리에서 목 없는 시신 32구가 발굴됐는데 십자가 묵주가 함께 있었다.

버그내순례길 본 코스의 종점인 신리성지. 19세기 신도 400명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였다.

버그내순례길 본 코스의 종점인 신리성지. 19세기 신도 400명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였다.

무명 순교자 묘에서 1.8㎞를 걸으면 신리성지가 나온다. 잔디공원과 미술관이 어우러진 풍광이 근사해서 인증샷 명소로도 통하는데 이곳 역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19세기 중반 지금의 신리성지 일대는 조선 최대의 천주교 교우촌이었다. 성도 400명이 함께 신앙을 키웠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40여명이 순교했고 나머지 신도는 뿔뿔이 흩어졌다. 신리성지를 로마제국 시절 지하교회인 ‘카타콤’에 견주는 이유다.

버그내순례길

버그내순례길

이렇듯 버그내순례길에는 한국 천주교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지만 마냥 어렵게 볼일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종교를 떠나서 길을 걸으며 저마다의 값진 경험을 누리고 있다. 김동겸 신리성지 주임신부는 “누구든 순례길을 걸으며 평화를 누린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며 “나아가 신앙을 위해 희생한 이를 기억하며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언가 생각해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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