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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기자만 110명 털었다…檢 “비판 보도 기자 사찰 위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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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12월 23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기자들과 야당 정치인 등을 무차별 사찰했다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서울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CCTV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를 대상으로 공수처가 휴대전화 착·발신 통화내역을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난 것과 관련해선 현직 검찰간부가 “위법한 수사”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현재까지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신원정보)를 조회당한 것으로 확인된 기자들만 110명을 넘었다.

공수처는 110명 이상의 기자를 상대로 ‘통신자료’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자료란 통신서비스 가입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성명·주민등록번호 등)으로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란 착·발신 통화내역(상대방 전화번호)과 문자전송 일시, 통화시간, 발신기지국 위치 등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강수산나(사법연수원 30기)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는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공수처는 TV조선의 황제조사(이성윤 고검장 에스코트 조사 CCTV 영상) 보도 이후 주로 TV조선 기자들에 대해 통신자료 조회를, 고발사주 의혹 수사 과정에선 다수 매체 기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를 광범위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TV조선이 지난 4월 1일 이성윤 고검장 에스코트 조사 CCTV 영상 보도를 한 것과 관련해 공수처는 닷새 뒤 해당 CCTV를 관리하는 민간 건물 관리인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이를 두고 강 부장검사는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수사팀에서 CCTV 영상을 TV조선 기자에게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지니고 TV조선 기자들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분석했다. 공수처가 이 고검장 수사팀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잡고 내사(이후 수사로 전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TV조선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본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수처 사건이나 취재와도 무관한 일반인인 기자의 어머니와 동생 역시 통신자료 조회를 6번 당했기 때문이다.

강 부장검사는 이에 “민간 소유인 CCTV 영상은 공무상기밀이 아니고 공무상비밀누설죄를 구성할 수 없으므로 이를 빌미로 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는 적법한 수사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언유착’ 무죄 받은 이동재 전 기자도 통화내역 털렸나

TV조선 기자뿐만 아니라 ‘검언유착’ 의혹을 받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도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당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기자와 더불어 그의 일반인 지인도 한 차례씩 통신자료를 조회당했기 때문이다.

다수 매체 기자들에 대한 공수처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 정황과 관련해 강 부장검사는 “공수처는 누구의 어떤 범죄에 대한 입증을 위해 기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가 필요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최소한 111명의 기자를 상대로 210건의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 중앙일보만 보면 법조·정치·외교·경찰·경제정책·온라인이슈·논설 등 분야를 취재하는 20명을 대상으로 43건을 조회했다. 이 자체만으로 공수처는 “저인망식 혹은 마구잡이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TV조선 기자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등에 대해선 법원의 영장이 필요한 통신사실확인자료까지 조회한 정황이 드러나 언론 사찰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그동안 공수처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매체(중앙일보, TV조선, 조선일보 등) 기자들을 중심으로 통신자료·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한 점에선 언론 사찰 의혹을 더욱 키운다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비판했다.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수처 출범 후 기소 0건인데, 공소부는 왜 기자 통신조회?

또 공수처 공소부가 지난 11월 12일 경향신문 법조팀 한 기자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데 대해선 “황당하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공소부는 수사가 끝난 사건에 대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공소유지를 하는 부서인데,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이 0건이라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인 사건과 관련됐을 수 있지만 통신자료 조회는 주로 수사 초기에 한다는 점에서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기자뿐만 아니라 공수처에 비판 목소리를 이어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 소속 의원 7명과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집행부 3명 등도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타깃이었다. 2016년부터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관련 헌법소원을 대리 중인 양홍석 변호사(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도 조회당했다고 한다. 공수처에 당한 피해자를 모두 합하면 총 131명(236건)에 달한다.

정보공개청구조차 거부하는 등 공수처의 불성실한 해명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수처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적법하게 이뤄진 절차일 뿐 사찰은 어불성설”이라며 “적법하게 절차를 진행하였고, 개별 수사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드리기 어렵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가 “8월부터 10월까지 네 차례 통신자료 조회를 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데 대해 공수처는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및 공소의 제기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해당하여 비공개한다”라고 답했다.

반면 경찰은 같은 기자가 요구한 정보공개 청구에 상세한 경위를 밝혀 대조된다. 지난 2월 기자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서울경찰청은 “이모 전 법무차관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운전자폭행등) 등 사건 관련 수사의 일환으로 피혐의자에 대한 외압·간섭 행사 가능성 판단을 위해 통화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내사 착수일과 담당 수사부서(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1계 1팀), 담당 수사관, 결재자(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 등 사실도 공개했다.

“인권 수사기관 부르짖더니 경찰보다 못해”

공수처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검찰과 경찰에 모범이 되는 인권 수사기관이 되겠다며 탄생한 공수처가 마구잡이 수사를 하는 데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며 “기존 수사기관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기자 등에 대한 공수처의 사찰 의혹을 두고 이날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4개 단체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수사기관이 정당한 이유 없이 언론인과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수사권 남용이고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불법적 언론사찰을 즉각 중단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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