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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지컬 최정상 김문정 음악감독 "무대 밑 어둠 속에 찬란한 우주 있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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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음악감독 20년차 첫 에세이집을 낸 김문정 음악감독이 20일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를 찾았다. 조명 막대를 지휘봉 삼아 음악에 푹 빠져든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뮤지컬 음악감독 20년차 첫 에세이집을 낸 김문정 음악감독이 20일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를 찾았다. 조명 막대를 지휘봉 삼아 음악에 푹 빠져든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뮤지컬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김문정(50) 음악감독이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흐름출판)을 냈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지난 20년간 쉼 없이 도전해온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은 책이다. 20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 감독은 “항상 남의 이야기(작품)를 전하는 전달자였는데, 생경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첫 에세이 『이토록 찬란한 어둠』 출간

1997년 ‘명성황후’ 건반 연주자로 뮤지컬 정식 입문해 2001년 창작 뮤지컬 ‘둘리’로 음악감독 데뷔한 그다.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미스 사이공’ ‘맨 오브 라만차’ ‘영웅’ ‘서편제’ ‘웃는 남자’ ‘광화문 연가’ ‘내 마음의 풍금’, 지난달부터 공연 중인 ‘레베카’ 등 50편 넘는 뮤지컬에서 음악감독‧작곡가‧슈퍼바이저 등을 맡아 진두지휘하며 ‘뮤지컬계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이번 책은 한국 뮤지컬사의 무대 뒤 속살부터 실패의 경험, 부단한 노력까지 들춰냈다.
“K뮤지컬 저력은 빛나는 무대 위에만 있는 게 아니죠. 대학(한세대 공연예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꿈이 배우로만 편중된 경향이 안타까웠어요. 무대예술 다른 분야와의 어우러짐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화려한 무대도 결국 어둠에서 시작된다는 걸요.”

무대 아래 찬란한 '연주자들만의 우주'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 [사진 흐름출판]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 [사진 흐름출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나와 대중음악 세션으로 활동하던 그가 ‘명성왕후’ 당시 뮤지컬 음악에 흠뻑 빠진 곳도 바로 그 어둠 속 연주 공간 ‘오케스트라 피트’였다. 무대 아래 깊숙이 자리해 눈에 띄지 않는 공간. 사방에서 날린 먼지가 떨어지고, 연무 탓에 시야가 가려 후후 불며 연주하기 일쑤다. 유일하게 무대 위‧아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높이에서 지휘봉을 잡는 음악감독에게 관람에 방해되니 등을 꺾어달라는 객석 불만 사항이 접수되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그는 이 공간이 “연주자들만의 우주”라고 표현했다. “저도 지휘할 땐 마술봉을 쥔 느낌이죠. 개인 연습을 하다가도 지휘봉을 드는 순간 정말 고요해지거든요.”

책엔 동료 연주자를 너무 일찍 병으로 잃었던 아픔,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인데도 흥행에 실패해 제작자가 삶을 마감했던 기억 등도 고백했다. “맡은 바를 다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한다” “좋은 동료와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나면 그것이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등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그의 철학과 고민은 2005년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더 M.C.’를 꾸리고 이를 기반으로 기획사 역할을 더한 지금의 ‘더 피트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됐다.

올해 뮤지컬 음악가 육성 프로젝트 직접 시도

이번 책에는 김문정 음악감독이 그간 잘 드러내지 않은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담겼다. ‘둘리’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 이미 두 딸의 엄마였다. “억만금을 줘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는 그는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 아이들이 ‘엄마 대구 잘 다녀오세요. 꼭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쓴 편지를 봤다. 웃기기도 하고 짠하고 기특한데 본인들은 기억이 안 난다더라”고 돌이켰다. 어느덧 20년 전이 된 추억담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책에는 김문정 음악감독이 그간 잘 드러내지 않은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담겼다. ‘둘리’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 이미 두 딸의 엄마였다. “억만금을 줘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는 그는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 아이들이 ‘엄마 대구 잘 다녀오세요. 꼭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쓴 편지를 봤다. 웃기기도 하고 짠하고 기특한데 본인들은 기억이 안 난다더라”고 돌이켰다. 어느덧 20년 전이 된 추억담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금껏 K뮤지컬이 양적으로 팽대해왔다면 이젠 질적으로 하드웨어가 탄탄해져야 한다”는 그는 “창작 인재들을 포섭해야 한다. 매해 클래식 음악 전공 졸업생이 얼마나 많나. 전문성을 고수하되 마음과 시각을 열면 뮤지컬에도 기회가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이 시기에 무슨 예술이냐’는 얘기가 나오고 예술인이 직업군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다른 생계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을 지켜보며 그는 이런 결심을 프로젝트로 실현했다. 지난 9월 공모를 진행한 ‘더 피트 크리에이티브: 음악 창작진 양성 프로젝트’다. 신인 뮤지컬 음악가의 창작곡을 뽑아 멘토링과 관현악 연주를 지원했다. “첫 시도인데다 까다롭게 공모했는데도 수십명이 응모했다. 이런 기회가 활성화되면 좋겠다”면서 “한국은 뮤지컬 공연 편수보다 음악감독이 많지 않은데 인력풀이 넓어지면 퀄리티도 높아질 것”이라 내다봤다.

열정 과하면 꼰대로 보여…은퇴 고민하죠

자신을 최정상에 올려놓은 철칙으론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것”을 꼽았다. 날 선 비판에 거침없었던 완벽주의는 조금 누그러졌다고. “옛날엔 조금만 실수해도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했는데 지금은 틀릴 수 있지, 한다. 제가 달라졌다더라”면서 “실수가 반복되면 그 친구 실력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나름의 아픈 순간이 있지만 잠깐 실수는 배우도, 연주자도 프로의식이 있으면 본인이 더 자책하고 반성한다. 여유가 생기고 연주를 같이 즐긴다는 게 어떤건지 20년 차에 드디어 알았다”고 했다.
“같이해온 연주자들의 노후나 은퇴 후 생활도 고민하고 있어요. 저도 올해부터 은퇴 고민이 시작됐죠. 너무 오랫동안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열정이 과하면 꼰대로 보이잖아요. 주변에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라는데 그래 볼까. 슬슬 내려와야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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