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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내정설까지 나왔다…철도공단 ‘60억짜리 연구용역’ 시끌

중앙일보

입력

 [이슈분석] 

대전역에 있는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 사옥. 오른쪽이 공단이다. [출처 국가철도공단]

대전역에 있는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 사옥. 오른쪽이 공단이다. [출처 국가철도공단]

 준정부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이 발주한 60억짜리 연구용역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술개발이 아닌 정책연구용역은 통상 수천만원에서 많아야 수억원대인 걸 고려하면 60억원은 철도분야에선 극히 이례적인 규모라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최근 연구 방향과 계획, 연구진 구성 등이 공개되면서 학계와 철도업계 안팎에선 용역의 필요성과 실효성, 금액의 적정성을 두고 적지 않은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23일 국가철도공단(이하 공단)과 학계에 따르면 해당 용역은 두 차례 입찰 끝에 두 번 모두 단독 응찰한 서선덕 한양대 명예교수 중심의 연구팀이 따냈다. 형식적으로는 대한교통학회(이하 학회) 명의를 빌렸지만 실제로는 서 교수가 직접 꾸린 팀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용역은 김한영 공단 이사장이 올해 초 취임하면서부터 준비한 것으로 공단 내에 신설한 미래전략연구원의 양근율 원장이 관장했다. 국가 교통체계를 친환경 수단인 철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공단은 정부를 대신해 철도를 건설하고 관련 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애초 발주된 용역명은 '전환기의 국가교통체계 재정립 방안 연구'였지만 공단이 발주할 용역으로 맞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자 '전환기 철도중심의 교통체계 정립 방안'으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최근 연구진이 공단에 제출한 연구용역 착수보고 자료 내용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연구진은 이달 초 공단에 용역 착수보고를 한 데 이어 지난 20일 학회가 해당 용역의 진행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전문가들로 꾸린 관리위원회에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파주 운정과 화성 동탄을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철도차량의 실물모형(Mock-Up). [중앙일보]

파주 운정과 화성 동탄을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철도차량의 실물모형(Mock-Up). [중앙일보]

 정부가 밝힌 탄소중립 2050 목표를 달성하려면 교통체계를 도로 중심에서 친환경 수단인 철도로 바꿔야 하고 그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뒷받침할 정책과 신규 철도노선 구축 방안을 도출하는 게 용역의 목표라는 의미다.

 그러나 관리위원으로 해당 보고를 들은 A 교수는 "착수보고서가 너무 장황하게만 되어 있어 핵심을 모르겠다"며 "현재 어떤 문제가 있고 그래서 어떤 분야를 어떻게 연구하겠다는 건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B 교수도 "사실 연구하겠다는 내용이 새로운 게 없다. 이미 나와 있는 연구 결과들 외에 더 새롭게 나올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보고서 내용도 앞뒤가 안 맞는 게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연구의 용역비로는 너무 큰 액수인 것 같다"라고도 했다.

 공단이 이러한 수준의 착수보고를 별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인 걸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원로학자 위주로 꾸려진 연구진에 대한 걱정도 나왔다.

 C 교수는 "주요 연구진이 대부분 정년퇴임한 명예교수 등 원로이고, 학계에서 왕성하게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연구를 하려면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전해지면서 철도업계와 국토교통부 안팎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인 용역규모와 연이은 단독응찰을 두고도 말이 많지만 일부에선 용역관련 주요 인사들의 친분설을 근거로 사전 내정설 같은 음모론까지 언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도 탄소중립시대에 맞춰 철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정부도 탄소중립시대에 맞춰 철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는 또 "이미 정부에서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철도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상당부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비슷한 취지의 대규모 용역을 다시 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공단에 대한 감독권한을 가진 국토부에서도 해당 용역을 둘러싼 논란과 문제점을 다시 살펴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이 쓰는 돈은 사실상 공적인 자금이나 마찬가지여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토부 고위 관료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용역이라도 규모와 절차, 내용 등이 적절해야만 한다"며 "자칫 지금 거론되는 여러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분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제라도 공단과 학회 등이 다시 원점에서 연구용역 규모와 내용, 연구진 구성 등을 따져보고 적절한 수준으로 재정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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