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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세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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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오래전 사무실 동료들과 ‘붕어빵 대 계란빵’을 주제로 유치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출출한 겨울 오후에 간식거리를 사면서다. “간식은 역시 달콤한 팥이 들어간 붕어빵이 최고”라는 의견과 “영양만점 계란 하나가 통으로 들어간 계란빵이 최고”라는 반론이 팽팽했다. 결국 그날 우린 ‘과식의 리더십’을 최우선으로 하는 부장 덕분에 붕어빵·계란빵을 모두 사와 배를 두둑이 채웠다.

몇백 원짜리 간식 갖고 벌이는 쩨쩨한 말싸움은 직장 생활의 쏠쏠한 추억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재미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서울 거리에서 붕어빵 파는 노점상 만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원료인 밀가루·팥 가격이 해마다 뛰면서 붕어빵 노점상들은 “서민 간식인 만큼 1000원에 2~3개라는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고, 차라리 영업을 접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붕어빵. [중앙포토]

붕어빵. [중앙포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집 근처 5~10분 거리에 붕어빵 파는 곳이 있다는 의미다. MZ세대에선 ‘가슴속3천원’ ‘붕세권’ 등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도 인기다. 접속하면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붕어빵 노점상을 알 수 있고, 심지어 사용자가 새로 발견한 노점상 위치를 직접 등록도 할 수 있다. ‘가슴속3천원’은 붕어빵뿐 아니라 호떡·문어빵·어묵·계란빵·떡볶이 등 다양한 종류의 간식 가게 위치도 알려준다.

손난로가 없던 시절 연인들의 주머니 속에서, 아버지의 퇴근길 가슴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눠줬던 붕어빵. 그 오동통 귀여운 자태가 점차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