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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대선 최대 부동층 2030 여성들의 리얼토크

중앙일보

입력

"여성 혐오 편승하는 이준석도 싫고 눈치 보는 민주당도 찍고 싶지 않다"

대선후보들 청년 공약에 ‘여성’ 없어, 이대남에만 구애하는 정치권에 소외감
민주당 손절해도 국민의힘에는 생래적 거부감…정의당으로 이동 추세 뚜렷

2018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집결한 여성들. 젊은 여성 유권자일수록 범죄로부터의 안전과 남녀의 질적 평등 같은 이슈에 민감하지만, 정치권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집결한 여성들. 젊은 여성 유권자일수록 범죄로부터의 안전과 남녀의 질적 평등 같은 이슈에 민감하지만, 정치권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연합뉴스

"유력 대선후보들은 우리는 버려두고 하나같이 2030 남성들 눈치 보는 공약만 내놓고 있다.” 대학원생 이주희(27)씨는 “20대 여성 표심이 거대 양당 체제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우리를 위한 공약은 명확하지 않거나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며 “양당은 우리가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고 반문했다.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지만,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20대(18~29세 795만 명, 전체 유권자의 18%)의 절반을 점유하는 ‘이대녀’(20대 여성)의 마음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20대 여성은 이번 선거판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라는 것이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의 일치된 견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30 여성들의 보편적 정서는 허탈감과 소외감으로 압축할 수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20대는 문재인 후보에게 47.6%, 30대는 56.9%의 압도적 지지를 보였다. 세대를 불문한 성별 득표율에서도 문 후보는 남성(39.1%)보다 여성(42%)에게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젊은 세대의 진보 성향을 고려해보면, 2030 여성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 탄생의 핵심 조력자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추이를 따라가 봐도 20대 여성은 호남, 40대 화이트칼라 계층과 더불어 문 정부와 민주당의 소위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탱하는 축으로 여겨졌다.

‘묻지마 지지’인 줄만 알았던 젊은 여성들의 표심에 균열이 간 것은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됐다. 20대 여성의 44%가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40.9%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다. 격차는 불과 3.1% 차이였다. 상당수 표가 진보 성향 군소정당 여성 후보에게로 흘러갔다. 30대 여성은 아예 박 후보(43.7%)보다 오 후보(50.6%)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청년 여성에 대한 이야기, 어디서도 나오지 않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30 남성의 지지를 얻는 반작용으로 2030 여성의 비토를 받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30 남성의 지지를 얻는 반작용으로 2030 여성의 비토를 받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그러나 4·7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정치권은 2030 여성보다 2030 남성의 변심에 더 주목했다. 워낙 드라마틱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다. 20대 남성은 무려 72.5%, 30대 남성은 63.8%에 달하는 몰표를 오 후보에게 줬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주장한 세대 포위론(2030 남성층과 50대 이상 세대의 연합으로 40대 지지층이 견고한 민주당의 확장성을 제어하는 선거 전략)은 야권의 정권 교체 필승 카드로 떠올랐다. 2030 여성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그들이 사실상 소외된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하자니 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팽배하다. 게다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과거 발언도 지지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들은 “20대 여성을 겨냥한 공약도 달리 없고, 다들 20대 남성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 같다”(24세 대학원생 김희정씨·가명), “20대 여성을 위한 공약이 없어 표가 분산되는 것인데, 정치인들은 표가 분산되는 현상만 본다”(25세 취업준비생 박미라씨·가명), “(유력 후보들이) 내가 누굴 뽑든 관심도 없는 것 같은 그 ‘무관심’이 어처구니없다”(19세 대학생 신혜지씨·가명) 등의 갈 곳 잃은 심정을 드러냈다.

2030 여성이 비슷한 또래 남성에 비해 더 상실감을 말하는 근원은 “청년이라는 표지에 ‘여성’은 빠져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 김연우(24·가명)씨는 “MZ세대라는 해괴한 단어로 10대부터 40대를 묶어 20대의 목소리를 흐려놓더니, 이제는 청년이라는 단어로 여성을 지운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조은재(32)씨도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치에서 ‘청년’ 문제는 남성이 기준인 남성 문제이고, 여성 문제는 ‘여성’ 문제”라며 “여성 정책이라고 나온 것도 보면 경력 단절이나 육아, 양육 문제다. 취업은 청년 여성에게도 똑같이 심각하고, 젠더랑은 상관없는 문제인데 청년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럴수록 청년 여성의 정치적 성향은 “현재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가 다수를 이뤘다. 김연우씨는 “그 어떤 후보도 20대 여성인 나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의지가 없어 보이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윤진아(24세 직장인·가명)씨 역시 “손바닥 뒤집듯(여성 정책에 관해) 의견을 바꿔버리니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결국 ‘이대녀’가 원하는 정책은 다시 말하면 ‘현재 20대 여성이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을 겪는가’와 닿는다. 강선미(24세 대학생·가명)씨는 “코로나19로 인해 20대 여성의 실직이 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었다. 최근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등 특정 성별이 주로 피해를 입는 범죄가 잦았다”며 “그렇지만 각 후보의 대선 공약을 보면, 20대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다고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잇따른 반(反)페미니즘적 메시지에 우려 섞인 불만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페미니즘 정책이 남성을 역차별했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이를 두고 황지윤(25세 직장인·가명)씨는 “여성 혐오 목소리가 가장 가시적으로 두드러지는 곳이 2030 남성 커뮤니티인데 이들의 목소리에 정치권력이 힘을 실어주면서 정작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 불평등, 젠더 문제는 보이지 않게 됐다고 느낀다”며 “결과적으로 정말 ‘이대남’이 결집할 힘을 가진 세력인지와 무관하게 그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 돼버린 듯하다”고 바라봤다.

앞으로 민주당 지지할 일 없을 것 같다?

민주당을 떠난 ‘이대녀’일부는 심상정(가운데) 정의당 대선후보를 대안으로 떠올리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을 떠난 ‘이대녀’일부는 심상정(가운데) 정의당 대선후보를 대안으로 떠올리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여론조사에서도 청년 여성 유권자의 흔들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리서치뷰가 12월 1일 발표한 여론조사(11월 27~30일 전국 남녀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에 따르면 20세 이하 여성층에서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른다는 응답은 19%로, 같은 연령대 남성(약 5%)의 약 4배에 달했다. 거대 양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47%로, 20대 남성층의 응답(81%)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해당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22%가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대목이다. 같은 연령대 남성의 지지율(1%)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20대 여성의 투표 성향이 부동층으로 돌아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2년 대선 이후의 역대 선거 결과 추이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이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도 20대 여성(63.6%)의 민주당 지지세가 20대 남성(47.7%)의 그것보다 확연히 높았다. 그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소극적 대처를 목도하며 젠더 인식 문제가 불거졌다. 20대 여성이 민주당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2021년 4월 선거 때 확인됐다. 당시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20대 여성층에서 44% 지지를 얻었는데, 이는 1년 전 4월 총선에서 확보한 민주당의 지역구 득표율(63.6%)보다 20%가량 떨어진 것이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고 말한 황지윤씨는 “여성, 약자 정책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명백히 여성 혐오 세력에 편승하는 이준석 대표의 정당은 찍고 싶지 않고, 뚜렷하게 여성 정책을 내세우지 않은 채 ‘눈치 보기’를 하는 민주당도 찍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희정씨도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지금은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그런 선언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현 상황이 보여주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이재명 후보는 아예 청년 남성들에게 ‘청년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미니즘을 여성에 의한 젠더 갈등이라 오도하기도 했다”며 “앞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단언했다.

민주당을 손절한 표심이 정의당으로 향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주희씨는 “현실적으로 심상정 후보가 당선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의 양당 체제에 저항하려 한다”고 말했다. 신혜지씨도 “여태껏 민주당을 뽑아왔던 이유는 그나마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다못해 얄팍한 아첨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지난해 보궐선거 때 20대 여성이 기타 정당을 많이 뽑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표심을 이해하고 선거 전략에 반영했어야 했다. 그러면 가능성은 민주당에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되려 국민의힘과 겹치는 전략으로 간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런 기류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서도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재명 캠프의 선거 타겟팅 자체가 잘못됐다’는 관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인사는 “20대 여성에게 민주당이 해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없다”며 “이재명 캠프는 부동산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 프레임은 민주당이 이길 수 없는 이슈”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대남만 보고 가는 선거 전략 위험하다”

이재명 캠프 선대위에서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20대 여성을 위한 정책과 공약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자칫 어느 한쪽을 우대하는 정책을 만들다가 오히려 역차별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장 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20대 여성은 취업과 승진 기회가 적고, 주요 보직으로 갈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설계를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원칙론을 밝혔다.

제1야당 국민의힘도 비슷한 포지셔닝이다. 장예찬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장은 “남녀를 떠나 약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며 “우리 사회에서 20대가 힘들고, 어떻게 보면 약자라고 할 수 있으니 모두를 아우르기 위한 정책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의당은 이 빈틈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장혜영 정의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2030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정의당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기본적인 여성 안전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결하려 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높아졌다고 본다. 불평등 시대에 청년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정책이 핵심적인 청년 정책이자 미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2030 여성은 응집력이 강했다. 2017 대선만 봐도 2030 여성(20대 79%, 30대 77%)의 투표율이 같은 연령대 남성(20대 73%, 30대 71%)보다 높았다. 2020 총선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의 투표율이 높았고, 특히 25~29세에서는 그 격차가 10.8%p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여론조사 전문가는 “현재 여야 주요 후보의 선거 캠페인이 ‘이대남’에 한정되는 것이 문제”라며 “남성보다 여성 부동층이 많은데, 현재의 지지층(이대남)만 보고 그쪽으로만 올인하는 것은 선거 전략상 유효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대녀’들이 정치에 바라는 바는 결국 ‘내 삶의 질’로 귀결된다. 김나연(26세 취업준비생·가명)씨는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사실 없다”며 “내가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강선미씨는 “(디지털) 성범죄, 불법 촬영, 데이트 폭력 등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안전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결혼과 육아, 성평등과 일자리 보장을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황지윤씨는 “남성들이 여성 전용공간, 사외이사 여성할당제 등으로 ‘허탈감’을 느낀다면 그에 앞서 정치권력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교제 살인, 여성을 사외이사로 고용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우씨는 “20대 여성의 정치적 올바름은 ‘뭘 그렇게까지’ 하는 부분도 예민하게 짚어내고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를 징징거린다고 치부하고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법과 제도 안에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을 봐달라”고 강조했다.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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